어쨌든 일도 삶의 일부잖아요.
업로딩을 쉬었던 오랜 기간 동안 브랜딩에 관련한 저만의 이야기를 많이 준비해 두었는데 선뜻 보여드리기엔 조금씩 미진한 부분들이 있어서 차마 등록은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수정-보완하고 있어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수정-보완이라는 게 끝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일인지라.. 명확하게 다음 이야기를 언제 들려드릴 수 있을지는 약속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금 팍팍하지만 괜찮아>를 구독해주시는 4분(?)께 죄송하단 말씀 먼저 드려요.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흔한 인사말이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진심이 깃든 안부를 듣는 것도, 건네는 일도 드문 세상인 것같아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들의 안부를 묻고 싶어요.
잘 지내고 계시죠? 모두들 잘 지내고 계시길 바라요.
그간 저는 끊임없는 업무의 굴레에 빠져 살아왔어요. 갑작스럽게 환경과 과업이 바뀌면서 유지해왔던 많은 부분들에 변화를 넘어선 변혁을 가져와야 했던지라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많은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래서인지 집과 회사 외에는 그 어디에도 발을 내딛기가 어려워지더라고요. 아무래도 회사일 때문에 피곤하고 힘든 것도 있었을뿐더러 일에 대한 제 나름의 남다른 열의 때문에 지금은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모든 일에는 때가 있어!'라는 보수적인 무의식에 갇혀 산 느낌이랄까요. 정말 땅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느낌입니다.
여전히 주위에선 일에 대한 지금의 열정을 잃지 말라고 독려를 하지만 요즘은 그게 과연 맞는 일인가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꿈이 원대한 편이에요. 제게 꿈은 단순한 직종이나 위치가 아닌 '이루고 싶은 소망'의 일부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낯간지러울 수도 있지만 제 꿈은 '제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일,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나무 그늘에서 그들과 행복을 노래하며 사는 일.'입니다. 너무 시적인 표현이죠? 하지만 제 나름의 경험이 빚어낸 가장 나답고, 건강한 꿈이라 생각해서 여전히 이 꿈을 품에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제넘게 단언하건대 이 믿음은 끝까지 안고 살아갈 것 같아요.
제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단연 '능력'이었어요. 이미 앞선 글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저는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정말로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제 나름의 남다른 열정이 필요했어요. 물론 그것이 생존본능의 일부라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정말 열심히 달려 온 것같아요. 그래서 때론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때에 따라 필요치 않는 헌신까지 감수해 나아가며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저는 제 나름의 경쟁력 중 일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열심히 땅만 보며 전력질주를 하다가 문득 '하늘'의 존재를 잊고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아, 삶에는 늘 질 좋은 쉼표가 필요한 법인데 왜 난 그걸 잊고 달려왔지. 자괴감과 후회가 밀려오더군요. 그리고 멈춰 선 지금, 꽤나 수척해진 제 마음을 보고 안타까운 감정이 차올랐습니다. 마치 원치도 않는 삶을 살아 온 사람을 마주한 기분이었어요.
좋지 않은 결과의 근원이 무엇이었을까 고민한 끝에 결국 이 모든 원인은 제 스스로에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회사도 제게 너무 잘해주고, 사람들도 너무 좋은지라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겠다는 이상적인 약속을 핑계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마음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찰나이긴 했지만 너무나도 강렬했어요. 지금은 여느 때와 다르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제 삶을 다시 관철해 볼 필요가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조금의 과장을 보태자면 공들여 쌓아 온 나의 세상이 무너진 기분이었어요. 열심히 살고 있다는 핑계로 소중한 것들을 배척해가며 나의 게으름을 합리화시킨 비열했던 나날들.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이기심으로 얻은 게 과연 무엇인지. 자문에 대한 답은 침묵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잃어버린 것이 정말 많더라고요. 분명히 얻은 것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제가 달려온 세월이 참으로 어리석게 느껴졌습니다. 조금 더 지혜롭게 행동할 걸, 조금 더 숨을 고르며 달려볼 걸. 후회는 남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더라고요. 그 물을 주워 담는 건 저를 비롯한 제 주위의 많은 가치에 누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수척해진 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일이란 건 분명 삶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그 믿음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어요. 다만 일이란 혹은 업이란 건강한 삶을 위한 하나의 구성이 되어야지, 삶을 이끄는 주체로 보는 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인 것 같아요. 저는 어리숙한 생각과 자세 때문에 제 자신도 잃고, 소중한 가치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테지만 잠시 동안은 이렇게 힘든 제 자신을 내버려 둘 생각이에요. 무언가를 더 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자꾸만 가라앉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하지만 이 무책임한 한마디를 잘못 해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하지 말라는 건, 일을 제 삶의 전부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인즉슨, 가끔씩 나 자신도 돌이켜 보고, 주위 사람들도 보살피고, 마음을 건강하게 챙길 수 있는 쉼표 정도는 찍어가며 살아가자는 의미입니다. 물론 일을 할 땐 열과 성의를 다 해야죠.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일 또한 건강한 삶을 운영하기 위해 공을 들여야 하는 가치니깐요.
너무 칼같이 업무와 일상을 차별하기보단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며 건강한 삶을 모색하는 시간을 꼭 가져보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토록 왜 열심히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문에 자문을 거듭하다 보시면 지금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떠오를지도 몰라요. 이런 진부하고 시시한 시간이 결국 우리를 좀 더 건강한 삶에 닿을 수 있게 도와주는 중요한 첫걸음이 되어주리라 생각됩니다.
어리석게도 제 스스로조차 지켜내지 못했으면서 훈수를 뒀네요. 사실 제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쓴소리이기도 합니다. 다만 제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을 통해 제가 아닌 누군가가 또 다른 작은 지혜를 얻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비록 일과 삶의 균형을 찾지 못하시는, 그리고 저와 같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께 명쾌한 답을 드리진 못했지만 이 글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셨길 소망하겠습니다.
다음엔 더 좋은 글로 찾아뵐 수 있도록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볼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잘들 지내시죠?
모두들 잘 지내시길 바라고, 빠른 시일 내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