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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누 Aug 07. 2020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기에

고양이 분양 숍 사장님이 카톡을 보냈다. "이 친구예요." 사진도 같이 보냈다. 사진에는 새끼 고양이 4마리가 있었다. 새끼 고양이들은 서로 다른 꽃 모양 목줄을 맸는데, 우리가 데려올 아이는 빨간 꽃을 달고 있었다. 털이 넓게 퍼지고 눈빛이 당당한 게 장군감이라 생각했다. 사장님이 카톡을 또 보냈다. "아, 여자아이예요."


둘째 고양이 이름은 이미 지었다. 우리가 성남시 구미동에 살던 때라서 '구미'라 지었다. '요미'와 라임도 맞았다. 구미가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하며 우리는 작은 방을 치웠다. 요미와 구미가 적응할 때까지 구미가 격리될 방이었다. 작은 방에는 화장실과 사료, 물, 구미가 몸을 숨길 숨숨집을 두었다. 숨숨집 위로 이불을 덮어 캄캄하게 해 놓았다. 발판을 누르면 쥐 인형이 튀어나오는 장난감도 놓았다. 중국산 가정용 홈 카메라를 설치했고 블라인드를 쳐서 조도도 낮췄다. 방이 어두워서 홈 카메라로 안 보일까 걱정했는데, 스마트폰에 연결해 보니 밝게 잘 나왔다.


[안녕, 구미야.]


사장님께 연락이 왔다. "왔어요, 구미!" 반가움에 달려가서 본 구미는 사진과 좀 달랐다. 사장님이 잘못 데려온 줄 알았다. 사진 속 구미는 털이 푸짐하고 살집도 통통했다. 실제로 본 구미는 사진보다 말랐다. 그리고 훨씬, 정말로, 믿기지 않을 만큼, 판타스틱하게, 신비로울 정도로, 더 예뻤다. 보면 볼수록 작은 몸뚱이가 오물거리는 게 신기했다.


구미는 작은 방에 내려놓자마자 숨숨집으로 들어갔다. "새끼라 그런지 에너지가 넘쳐요."라는 사장님 말과 다르게 구미는 숨숨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장님 만나기 전에 에너지를 다 썼을까? 그래서 방전되었나?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들만 있으니 더 그렇겠지. 어두컴컴한 숨숨집에서 웅크리며 경계하고 있을 구미 모습이 상상되었다. 슬슬 일어나려는 참에 구미가 얼굴을 내밀었다. "안녕?" 하고 인사했는데 목이 잠겼는지 목소리가 걸걸했다. 구미가 다시 숨숨집에 숨었다.


[참깨발랄 구미]


상품이었던 구미는 우리에게 왔다. 아니, 우리가 선택했다고 해야 할까. 사실 이래도 되는가 싶었다. 남들도 그러니까 뭐 어때, 라는 심정도 있었다. 인기 있는 고양이 품종이라서 우리 같은 사람이 많을수록 원치 않는 임신을 하거나, 임신만 반복하는 고양이들이 더 생길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맞다. 예뻐서 데려온 욕심이 무겁게 마음을 누르고 있다. 다행히 요미나 구미는 고양이 농장이나 무분별한 브리딩 출신은 아니다. 동물보호법을 준수하고 계신 사장님 통해서 분양받았다. 엄마 고양이에게 사회화 교육을 잘 받은 건강한 아이들이다.


고양이와 살기 전에는 길고양이를 봐도 감흥이 없었다. 요새는 길고양이를 보면 걸음을 멈춘다.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 관심을 끌기 일쑤다. 비 오는 날이면 더 그랬다. 차 밑에서 비를 피하는 고양이가 안쓰러워 우리집에서 몸 보전하다가 비 그치면 내보내고 싶었다. 오지랖이다. 길고양이가 인간과 친밀하면 독이 될지 모른다. 마음이 시꺼먼 인간에게 화를 당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면 길고양이에게 시선을 주다가도 아니야, 하고 돌아서고 만다. 먼 미래에는 길고양이 종과 집고양이 종이 나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동적인 아이들]


이런 우울한 생각은 집에 오면 말끔히 사라진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다. 생후 7개월 된 구미는 요미와 레슬링하며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다. "캬웅!" 요미가 성난 소리를 냈다. 구미 관심을 돌려야 했다. 장난감 창고 서랍을 드르륵 열었다. 구미 귀가 쫑긋 섰다. 구미가 좋아하는 물고기 인형이 달린 낚싯대를 꺼냈다. 구미 눈이 반짝였다. 낚시대를 흔들자 물고기 인형이 파닥파닥 움직였다. 물고기 인형이 '살아있는 듯' 이라고 표현하고 싶었지만, 터진 실밥 너머로 삐져나온 솜이 생각을 막았다. 낚시대를 크게 흔들자 물고기 인형이 따라 움직였다. 구미가 몸을 한껏 웅크렸다가 잽싸게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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