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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Apr 22. 2016

내일이 없을 것처럼,
오늘을 사는 제주 행원리 부부

[여행 에세이] 인도에서 제주로, 집주인 부부가 돌아왔다. 인터뷰 I

#3월 29일 화요일 / 바람이 부는 흐린 날

제주도는 제주도였다. 바람 없이는 이곳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집 빈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고, 그 소리는 마치 귀신 소리 같았다.
창밖으론 모든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날보다 풍차는 빠르게 움직였고, 집들도 휘청이는 듯 보였다. 혼자 그 모든 소리를 듣고 있는 게 무서웠지만, 나는 무서워할 수 없었다. 곧 집주인 부부가 돌아온다.@YogurtRadio




제가 민박집 손님 같네요. :)


지난밤 그녀가 돌아왔다. 밤이라곤 했지만 이제 막 땅거미가 내려앉은 그 시각, 어스레한 빛이 남아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그간의 여행 흔적을 보여주듯 온몸이 새까맣게 그을려있었다. 자기 집에 들어오면서 대문을 두들기는 모양새는 분명,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오자마자 분주하게 짐을 나르더니, 또다시 사라졌다. 4개월 만에 집에 오는 거라면서 오늘은 제주에 계신 부모님 댁에서 자고 온다 말했다.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4개월 만에 오다니. 예상보다 훨씬 비범한 부부인 것이 분명하다.


내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새벽 풍경. 버스 기다리시는 동네 할망들.


주인 여자가 돌아오니 책상이 생겼다. 가장 좋아하는 색, 빨강이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아침이다. 새벽 6시 즈음에 늘 들려오던 소리, 창문 밖 정류장에서 수다 떠는 어머니들 소리. 오늘은 그 외에 하나 더 추가되었다. 서울에선 이런 바람 소리를 8월쯤, 들어봤음직한 소리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날씨.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말아야겠다.

을씨년스러운 바람 소리 덕이었을까. 꿈자리도 뒤숭숭했다. 어수선한 아침, 이젠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주인 부부가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이들은 오자마자 분주했고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였다. 마침 제주 MBC 라디오에서는 <정오의 희망곡> 시그널이 울려 퍼졌다. 이를 '노동요'라 말하는 걸 보니 그녀는 전형적인 주부였다. 주인 여자는 내가 어디에 있건 상관없이 말을 걸었다. 자리를 옮기려다가도 그녀가 말 건네는 소리에 다시 곁으로 돌아갔다. 그 짓을 몇 번 반복하다가 하릴없이 옆에 계속 있기로 했다.




저희는 김녕 해수욕장에서 텐트 치고 한 달 넘게 살았어요.

차 한 잔 마시겠냐 물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주인 부부가 마음에 들어 이 집을 계약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빨리 알아가고 싶었다. 일주일 넘게 혼자 앉았던 코타츠에 세 명의 발을 모아 넣고 앉았다. 이들은 행원리에 이사 온 때는 2014년, 그전에는 김녕 해변에서 한 달을 야영하고 살았다. 야영이라고? 알면 알수록 충격적인 부부. 그 흔적인 것인지 이들 방에는 침대 대신 텐트가 있었다. 어쩌면 이들에게 일상 자체가 여행이 아닐까.

두 부부는 어떻게 만났을까 궁금해졌다. 인도에서 만났다는 두 부부. 스쿠버 다이빙 강사와 학생의 만남. "넌 선생이고 난 제자야!"라고 시대 지난 개그를 선보였지만 행복해 보였다. 말 그대로 현재를 사는 사람들. 남자는 이름이 '루피'였고 여자의 이름은 '파이샤'였다. 인도 화폐로 100파이샤가 1루피였다. 애정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아주 부럽고 예쁘고 난리가 났다.
가치관이 맞는 짝을 만난다는 건 정말이지 행운이다. 생활양식이야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은 맞춰가면 되는 것이었다. 삶을 여행하듯 살아가는 부부는 나의 꿈이자 로망이었다. 나의 이런 꿈을 상대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속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입 밖으로 절로 나와버렸다. "정말 복 받으신 거예요."

앞으로 이 부부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나를 자극하는 흥미로운 커플이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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