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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Apr 23. 2016

행원리에서 비자림까지,
오늘 하루 내가 만난 사람들

[여행 에세이] 발이 아파도 걷는다. 25킬로미터를 걸으며 만난 사람들.

#3월 22일 화요일 / 더할 나위 없이 맑음

뒷마당 평상에 앉아 사과 한쪽과 우유 말은 시리얼을 먹었다.

제주도는 어제와 다른 듯 같은 제주도였고, 나는 기분이 좋았다.

바람이 맑고 하늘은 푸르다. @YogurtRadio




#행원리부터 삼만리

@제주도 구좌읍 행원리, 내가 머무는 곳


책 한 권, 스마트폰, 선글라스 그리고 카메라.


떠날 채비를 마치고 문을 나섰다.
서울에서 본 같은 빛깔의 하늘인데 웬일인지, 제주도의 하늘은 남다르다.
아마 눈에 걸리는 높은 건물들이 없어서일까.

<행원리>는 월정리와 한동리 사이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사람이 편리해지고자 지명을 나눠놓았지만, 풍경을 보면 이 모든 게 소용이 없어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초록과 파랑 빛의 향연이다.

속도에 따라 볼 수 있는 것들은 정해져 있다.
빠른 걸 탈수록 같은 시간 내 많은 것을 볼 수는 있겠지만 어쩌면 깊이는 없을지도 모른다.
자전거, 스쿠터 혹은 그보다 빠른 버스나 차.

자동차 - - - - - - - -
도보    ㅡㅡㅡㅡㅡㅡㅡㅡ

여행 후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여행 다닌 시간을 기억해본다.
몸이 힘든 여행일수록 기억에 남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도보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달 후,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듬성듬성 박힌 기억이 아니라 곧은 선들로 이어진 알록달록 바탕이었음 좋겠다.

@<김녕 미로공원> 입구에서 만난 고양이들.


관광지가 유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해서, 뛰어난 자연경관 때문에, 하다못해 드라마/영화 촬영지였기 때문에.
다들 이렇게 하나같이 명분이 있다.

한 걸음 앞으로 옮길 때마다, 길목을 바꿀 때마다 느낀다.
빛나는 명분은 없지만 세상엔 더 빛나는 여행지가 많다는 것을.
이곳이 어디냐 묻는다면, '비자림으로 향하는 어떤 길'이라고 밖에 말 못 한다.

그래도 이름 모를 길목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제주도 어느 이름 모를 곳, 개나리가 피었다.





#할머니와 정류장 인터뷰

굽이굽이, 작은 고개를 넘고 꽃길을 지난다.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 상덕천 삼거리, <상덕천 정거장>

걷다 걷다 잠시 정류장에 앉았다.
10분에 차 한 대 지나갈까 말까 한 조용한 마을이다.
해는 뜨겁고 바람은 차가웠다.
어느 정도 쉴지는 나도 모른다. 볕을 피하니 바람이 한결 좋다.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가 멀리서 걸어오신다.
곱게 입으신 걸 보니 읍내로 나가시나 보다. 분명하다, 할머니도 여자니까.

할머니는 나를 '육지 사람'이라고 불렀다.

침묵 속에 입을 먼저 뗀 건 할머니였다. 지난날 동네 아버님에게 듣던 제주도 방언. 언제 들어도 익숙지 않다. 귀엽기도 하고. 첫 음절과 끝음절 사이로 줄넘기를 하듯 소리가 부드럽게 넘어간다. 

왜 이곳에서 버스를 타냐고 물었다. 타지 사람들이 늘상 나에게 묻는 첫 질문이다. 그렇담 나는 늘 그렇듯 처음 대답하는 양 말했다. 

- 여행 중이에요, 걷다가 여기서 쉬고 있어요- 

늘어진 주름살에 가려졌던 눈이었나 보다. 내 대답에 할머니는 놀라신 듯 나를 보며 두 눈이 커지셨다. 여자 혼자 겁이 없다며, 그리곤 언제 돌아가냐 물었다. 할머니는 자꾸 내가 할머니를 놀라게 할만한 질문만 거듭하신다. 근데 어쩐지, 난감하다기보다 할머니의 놀란 표정을 또 볼 수 있을 것 같아 신이 났다.

- 한 달 뒤에 돌아갑니다.

역시나 또, 할머니는 고개를 나에게 휙 돌리시며 두 눈을 땡그랗게 뜨셨다. "뭐라고오-?"
그렇게 우린 30분이 넘게 상덕천 정류장에서 대화를 나눴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올해까지 여든 해 인생을 사신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노년의 인생에서 주된 대화 소재는 단연 자식 이야기다. 

아들 둘, 딸 하나. 큰 아들은 프랑스 2년 유학 후, 서울대학교 교수를 하고 계시고 작은 아들은 LG에서 근무한다. 작은 딸은 분당으로 시집갔다. 세상 말로 하자면 자식 농사 하나는 잘 지어서 뿌듯하다는 할머니, 기쁨의 표정이 어쩐지 개운치 않았다. 


나중에 결혼하거든 부모 곁에 살아. 
부모 자주 뵙고, 같이 밥도 먹고. 그거만큼 큰 효도도 없어.


이스타 항공이 무엇인지, 티켓 예매를 일찍 할수록 값이 싸다는 것도 아시지만
자식을 쉽게 만날 수 없었다. 자식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는 가족이 그리웠다. 말을 맺은 할머니를 가만히 본다. 기미와 주름살로 누가 봐도 할머니 손이지만, 여전히 고우셨다. 

- 그간 고생 많으셨겠어요.

이 말이 할머니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할머니는 자신의 두 손을 어쩌지 못하고 괜히 쥐었다 폈다 하셨다. 나는 왜, 그 모습에서 가슴이 울렁거렸는지 모를 일이다.

관광지가 아닌 곳이기에 이곳에서 타지 사람을 마주칠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 탓에 지금의 인연이 소중할지도 모른다. 

읍내로 나가는 버스가 도착했고, 할머니는 손 한 번 흔드시곤 버스에 오르셨다.




#말 한 마디의 힘

제주도 비자림 숲


오늘의 목적지, 비자림에 도착했다.
눈에 보이지 않던 바람도, 이곳에선 눈에 선하다.

주변의 비자나무를 보면서도 내 눈을 끈 건, 다른 여행객들이었다.
친한 사람들과 혹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장난을 치고 웃고 떠든다.
그 모습에 괜히 행복해졌다. 내가 혼자 왔기 때문에 생긴 부러움은 절대, 아니다. 

내 앞에 뛰어가는 꼬마와 할머니가 보인다.
꼬마는 비자나무에 걸어놓은 번호를 소리 내어 읽었고, 

할머니는 자기가 먼저 읽지 못했다며 괜히 아쉬워했다. 

꼬마는 신이 나서 옆 나무 번호도 큰 소리로 읽었다. 할머니는 또 다른 나무로 뛰어가는 시늉을 하셨다. 

이에 질세라 꼬마가 그걸 가로채 읽었고, 할머니는 좋아하셨다. 

꼬마는 성취감에 기분이 좋았고 더 열심히 이리저리 뛰었다. 

애초에 할머니는 이 게임에 의미가 없었다. 꼬마의 웃음이 보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지금 이런 모습들이 나의 눈에 보이듯, 꼬마도 크면 알게 되겠지. 

할머니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셨는지.

저녁때가 다 되어 이만 돌아나가야 할 것 같았다.
때마침 갈림길이다. 나가는 곳과 천년 비자나무를 볼 수 있는 곳.

- 여기까지만 보고 가세요. 100미터만 가면 엄청 큰 나무를 볼 수 있어요.

솔깃. 그래 100미터라는데, 엄청 크다는데 보고 가야지. 가서 보니 크다는 말로는 도무지 이 나무를 다 안을 수 없을 만큼 컸다. 어떤 각도로도 카메라 안에 다 담기지 않아 낑낑댔다. 결국 이내 포기하고 눈에 담는 걸로 족하기로 했다.


- 아가씨, 우리 사진 좀 찍어주면 좋겠는데요.


알록달록 등산복으로 곱게 치장하신 어머니 아홉 분의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결에 스마트폰을 받아 들고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었다. 뭐지, 이 묘한 기분 나쁨은.. 아가씨라 불러서? 아니다. 아가씨 맞잖아? 표정이 기분 나빴나? 나를 부린다고 생각해서일까? 

자길 따라오라며 이쪽에서 찍어달란다. 이왕 찍는 거 또 잘 찍어야 성에 찬다. 소심한 건지 어쩐 건지 어떤 반항도 못한다, 나란 사람은. 두 번 찍고 스마트폰을 돌려드리곤 확인차 잠시 주변에 머물렀다. 2초 뒤 터져나올 반응은 생각지도 못한 채.

어머니들은 동시에 방청객 호응을 해주셨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어머 너무 잘 찍었다.' '예술이다.' '얘 나도 보내줘.' '사진사 양반이 찍어서 그런가 뭔가 다르네.' 아홉 분의 어머니께서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더니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 정말 고마워요.

이런 말 듣자고 한 건 아닌데, 아까 기분이 나빴었나 싶게 수줍어하며 고개를 연신 숙여댔다. 비록 나는 '사진사 양반'은 아니었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찬사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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