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작가 May 10. 2016

이야기의 결말,
결국 선을 넘어버렸다

[감성 에세이] 긴 시간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피하려고 애썼다.
그 사람 옆에 있는 나는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지난 4년간 그 사람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긴 시간의 노력이 보란 듯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뒤돌아보니 얼마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상대에게 늘 사랑을 구걸했다.
마음이 가난한 시절, 무엇이 그리 부족했는지 밀려오는 불안을 이길 수 없었다.
상대를 끊임없이 몰아세웠다.
좁은 틈에 갇힌 당신은 답답해했고, 나는 그 앞에 보초 서듯 서서
당신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방어했더랬다.
건강하지 못한 사랑이었다. 슬픈 사실은 나도, 당신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빠져나갈 출구가 어딘지 모른다는 것, 그것이었다.

자기 객관화가 덜되어있는 사람은 통제되지 않는 폭주기관차 같다고 생각된다.
그 사람이 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기에 남을 쉽게 비난하고 헐뜯었다.
그 비아냥들이 내 모습이라는 건 차마 보지 못한 채.


… 너는 왜 맨날 너만, 너만, 너만!! 왜 너만 힘들어.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음성이다.

전화기 너머 속 당신은 나에게 울부짖듯 말을 뱉어냈다.
당신에게 사랑을 애걸복걸하던 당시 나는 언제나 피해자였고, 당신은 가해자였다.
지금 보니 당신이 더 아팠음을, 여기저기 부서졌음을 깨달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여자였다.

TV 뉴스 속 범죄자를 본다.
타인의 삶을 엉망진창 만든 장본인은 이렇게 말한다.

- 나도 아팠어요. 힘들었어요.

지금 내가 딱 그꼴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 아프다고 상대를 다치게 할 수는 없는 건데, 그럴 권리가 나에게 없었는데 말이다.

이것이 당신으로부터 도망 다닌 지난 4년간 제자리걸음을 했던 이유다.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그 사랑이 잘못된 원인을 모른 채
멀리 벗어나려고만 했기에 큰 소득이 없었다.

이 정도면 멀어졌겠지. 괜찮아졌겠지. 당신으로부터 벗어난 것이겠지.
하다가도 당신을 맞닥뜨리면 그 순간뿐이었구나, 를 인정해야 했다.
틈틈이 당신을 보면서, 나는 역시나 당신이 좋았다.
당신이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상관없이 나는 편안했다.
어느 정도 물러서서 상대를 바라보니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았다.
그러니 더더욱, 당신에게로 거리를 함부로 좁힐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만 무심히 흘렀다. 1년, 2년, 그리고 4년.

세월이 흐르면서 모난 돌이 파도에 깎이듯 나는 조금씩 다듬어져 갔다.
그리고 깨닫는다. 사랑에 어린 나는 상대를 이해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당신을 사랑한 탓이라고 말했지만,
지난 나를 돌아보면 나의 행동은 잔인했다.
나의 어리석은 행동에도 곁에 있어준 당신이 고맙기도 했다.
당신은 착한 사람이었다. 선한 사람이라 상처를 줄 수 없었던 걸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고.

관계라는 게 한 사람만의 의지로 이어지지 않는다.
쌍방의 합의로 이뤄지는 탓에 상대에게도 내가 쉽지 않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당신도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었음을 알고 있었다.

어린 날 우리가 만나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쳐왔다.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겠냐만은 우리는 더욱 남달랐다.
아침에 눈을 뜬 후, 밤에 눈 감을 때까지 만나는 단짝 친구.
서로의 눈빛만 봐도, 말의 높낮이를 구별하여 서로의 기분이 파악되는 사람.
지나온 삶에서 그 사람을 제외하고서는 도저히 설명 불가한 사람.
서로의 인생에서 한 순간에 각자를 지우는 건 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서로 사랑하고 있는데, 두 사람만 모르는 것 같구나.


지난 세월, 상대로부터 도망 다니면서도 종종 상대를 만났다.
그때마다 사그라들지 않는 마음을 알면서도 솔직해져야 하는 순간에는 늘 회피했다.
거기엔 자존심도 있었을 것이고, 상처받을지 모른단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당신과 나는 흐르는 시간만큼 생각의 양이 많아졌고, 결정적 순간에 연거푸 고개를 저어댔다.
이쯤 되면 거의 사형선고받은 관계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선을 넘어버렸다.
지난날 나의 잘못을, 회한들을 고백한 탓이었을까.
그것이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한 것일까.
그럼 그 사람은 나의 이런 말들을 기다려온 것일까.
아무렴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결론은 우리가 4년 동안 외면해오던 것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생각 많은 당신이, 겁이 많은 내가 낸 그날의 용기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간의 기나긴 공백을 메우듯 따뜻함으로 모든 것을 녹여냈다.

그 시간들을 되짚어 본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하면 되는지, 어떤 생각들을 해야 할지.
일상을 살아내면서도 머릿속 한가운데 당신이 있었다.
짧지 않았던 공백, 그리도 피하려 했던 관계.
앞으로가 겁이 나면서도 이제야 깨닫게 된 내가 원망이 들기도 한다.
결국은 당신이었다. 이곳에 서서 우리를 생각한다.




@YogurtRadi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