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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May 19. 2016

오월의 중턱에서
사랑이 나를 드나들 때 "봄날은 간다"

[영화 봄날은 간다] 사랑이 찾아오고 끝나는 과정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개봉 / 2001년 09월 28일

배우 / 유지태(이상우)

         이영애(한은수)

감독 / 허진호



#사랑이 피어나는 순간

- 은수(이영애)

라면 먹고 갈래요?
(...)
자고 갈래요?


은수(이영애)보다 먼저 깬 상우(유지태).

은수 옆에 나란히 누워 그녀를 가만히 바라본다.


이내 그녀가 깬다.

그리고 그녀는 웃는다.


단 하룻밤, 두 사람 간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사랑이,

찾아왔다.





#사랑이 지는 순간

- 은수
와서 라면이나 끓여~

- 상우
은수씨, 내가 라면으로 보여?
말조심해~

 


- 은수
우리 헤어지자.

- 상우
내가 잘할게

- 은수
헤어져.

- 상우
너 나 사랑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그래 헤어지자.

 



장작가의

요거트라디오


 

# Part 1.0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이 시작되는 것은 

쌍방의 합의하에 이뤄지는데

사랑이 끝나는 것은 왜,

두 사람 모두의 동의 없이 이뤄지는 것일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사랑은

계절이 변하듯

사랑도 그렇게 변한다.


상우는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순정파 캐릭터다.

그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 비록 할아버지가 생전에 바람을 피웠대도 - 

기차역에서 늘 기다리는 할머니를 이해했었다.

그에겐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니까.

 

상우 고모는 그런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두고 이런 말씀을 하신다.

 

생전에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 예쁘다고

데리고 다니면서 옷도 사주고

화장품도 많이 사주고

사진도 찍어주셨다고 했다.

 

그럼 왜 바람피웠느냐고 상우는 묻는다. 

- 그는 정말이지 궁금했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단다.

 

상우는 고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 상우는 은수와 사랑을 하면서

사랑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은수의 "라면 먹고 갈래요?" 라는 말로 시작된 사랑은

"내가 라면으로 보여?" 라는 말로 변질되었다.

상우는 점차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고,

급기야 답답함에 화를 내게 된다.


 

#극중 초반, 상우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극중 후반, 상우는 할머니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

 

아마 상우는 할머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할머니, 사랑은 변해요. 
변하더라구요... 그러니 그만하세요.

 

사랑이 찾아오고 끝나는 과정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그렇게 아파하다가도

다시 찾아온 사랑에

처음 맞는 사랑처럼 그것에 속아 넘어가고 다시 아파한다. 

끝없는 굴레에 빠진 바보 같은 우리는 이 미칠 것 같은 사랑에 아파하고 운다.


(...)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 봄날은 간다 by. 김윤아


꽃이 피고 지는 것과 우리네 사랑이야기는 유사하다.

분홍빛 봄날, 화려하고도 생기 넘치는 꽃이 사방으로 만발한다.

때에 따라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불기도 한다.

무색하게도 한때 바삭바삭하던 꽃은 시간이란 벽 앞에서 

꽃잎은 누레지고 쭈글쭈글 생기를 잃어간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는 마음 한구석이 애달프다.

아마도 그런 허무함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 Part 2.0

 

사랑을 유지하려는 자와

사랑을 종료시키고 싶은 자.

이 두 사람의 합의점은 어디쯤일까?

 

상우가 이별에 대처하는 방식은 남녀 성별을 떠나

사랑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쪽의 행위와 비슷하다.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우는

은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설득 아닌 집착과 같은 행태를 보이게 된다.

- 사실, 사랑은 '설득'한다고 돌아올 수 없는 유일한, 타협 불가능한 것이다. - 

 

그런 모습에 은수는 상우를 더욱 멀리하려 하고

더 빠르게 감정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살아가면서 사랑이 일부일뿐인 은수에게 

사랑이 삶의 전부였던 상우는 버거운 대상이 아니었을까.


나의 어린날 사랑을 돌아본다.

'상우의 사랑'을 했던 나는 상대를 지독하게도 괴롭혔는데,

그때의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우겨댔다. - 물론 그것을 인정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나는 그때의 사랑을 '이기적인 사랑'이라 부른다.

저만 아프고, 사랑하고, 애절한 사랑.

상대의 마음은 아랑곳 않고 나의 감정만 중요한 상태.


지금의 나는 '은수의 사랑'을 하고 있다.

사랑이 전부이던 때는 어느새 지나가고, 적당히 영악해진 상태.

내 것을 지켜가며 사랑을 할 줄 알게 된 경지에 이른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상우와 같은 남자를 소개시켜준다 하면

소스라치며 도망가리라, 감히 장담한다.

- 지금 은수가 되고 보니 과거 나의 사랑에 힘들어했을, 그때의 은수에게 한없이 미안해지기도 했다. -


상우도 언젠가 깨닫지 않을까.

사랑이 변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고, 그 한 번의 사랑이 끝이 아님을,

전부일 것 같았던 사랑이 진정 '전부'가 아니었음을.

그 날이 오면 이별에도 담담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별에 대처하는 현명한 자세는 무엇일까.

'현명한 이별'이 애당초 가능하긴 한 것인가.


은수의 사랑이든 상우의 사랑이든,

모두에게 있어 이별의 합의점을 찾기란 어렵고 낯설기만 한 존재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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