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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Jul 07. 2016

비가 내린다.
세상이 멈췄다.

[감성 에세이] 세상 전체가 일시정지가 된 것이다. 오로지 비만 내린다.

비 오는 날이 좋다.
이유는 비가 머금고 있는 특유의 감성 때문이다. 혹자는 비가 우리를 간혹 우울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래 이어지는 글을 읽고 나면 생각이 바뀔 것임을 확신한다.


그 감성이란 비가 내리는 순간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상상해보라. 비가 내리기 전, 낮게 깔린 채 빠르게 이동하는 구름들과 시원한 바람. 네 시에 오기로 한 어린 왕자 덕분에 세 시부터 설렐 거라던 여우처럼, 풍족한 마음이란 흙을 적시기 전부터 시작된다. 가지각색으로 뽐내던 색깔들이 한마음으로 색을 맞춘다. 프레임 없는 흑백 사진을 보고 있는 것 같달까. 덕분에 붕 뜨던 마음들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사방팔방 어디로 흐르는지 모를 마음 쫓느라 정신없던 나 또한, 덩달아 빗줄기에 휴식을 갖는다. 책 읽기 좋은 날이다.

곧게 뻗은 물줄기는 또 어떤가. 빗줄기란 당최 구부러질 줄 모른다. 오직 한 곳을 향해서 돌진하는 빗줄기를 보니, 갈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마음 또한 위로받는다. 사실 압권은 소리다. 비 내리는 날, 우리의 오감을 가장 강력하게 자극하는 것은 단연 청각이다.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아 케케묵은 것들이 소리만으로 구정물이 씻겨 내려간다. 눈을 감아도 코를 막아도 절로 하얘지는 마음들이 느껴진다. 이는 기계 세차할 때 차 안에서 느끼는 압도적인 물줄기 소리와도 유사하다. 혹은 폭포나 파도와 같은. - 그래서 나는 세차 시 반드시 차 안에 남아 있는다 -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소리는 우리에게 여전한 힘을 발휘한다. 그 소리가 우리를 에워싼 듯, 편안한 표정으로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비 내리는 어느 흔한 오후 / 독일


창밖을 내다보자. 비 오는 날엔 거리에 사람들이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다. 그 많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세상 전체가 일시정지가 된 것이다. 오로지 비만 내린다. 어쩌면 우리가 비 내리는 날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란, 이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에 치여 피곤한 우리를 잠시나마 쉬게 하는 것. 어느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순간 주변은 텅 비어버렸다. 만일 이 광경이 두렵지 않다면, 그건 언젠가 일시정지가 풀릴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비는 영원하지 않다. 가끔씩 찾아오기에 이것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도무지 멈출 기미 없이 줄기차게 내린다면, 우리는 이러한 소중함을 느낄 수도 없을뿐더러 이 존재가 성가시기만 할 것이다.

비가 개고 난 후, 광명을 찾은 듯 하늘에 빛이 돈다. 세상이 환해지고 다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만물이 깨어난다. 빛을 되찾은 것들은 이전보다 더 또렷하게 매력을 발산한다. 생명수를 머금은 모든 것들은 생기가 돌고 각개의 향기가 더욱 진해진다.


Meant To Be_Squirrel Nut Zi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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