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작가 Mar 08. 2017

익명의 편지

[감성에세이] '이유없는' 사랑을 건네준 당신에게 보내는, 비겁한 편지

분명 알고 있었다.
너의 손을 놓는 순간 후회할 것임을.

매 순간 너의 '이유 없는' 그 사랑이 무척이나 부러웠었다.
나도 너를 '그만큼' 사랑했으면 좋겠어,라고 수없이 되뇌었다.
나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수 세월이 흐른 후 우연히 만난 옛 연인에게 익숙한 말을 들었다.
'예전에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네가 나는 참, 부러웠었어.'

그랬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을 반추해보면 네가 내게 준 '이유 없음'이란 얼마나 큰 것인지,
그땐 알면서도 모른 척했었다.
아니, 모른 척했어야만 했다.
인간이란 참으로 이기적이어서 내가 그 정도의 사랑을 하지 않으면
그건 순식간에 사랑이 아닌, 부담으로 뒤바뀐다는 것을.
고마움, 감동이 아닌 부담, 회피 혹은 남용. 
나는 너를 만나는 그때야 알았다.
그리고 너를 통해 예전의 옛 연인 또한 이해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너를 생각한다.
'그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은 
어쩌면 나의 오판이 아닐까.

방 한 쪽에 둔 가구를 오랜 세월 뒤 치워버렸다.
애물단지 같았던 가구가 사라지자
바닥에 진한 흔적이 남았다.
아무리 닦아내도 그 흔적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애물단지라고 여겼는데, 방에서 어느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나보다.
마음속 흔적도 이와 같지 않을까.

무엇보다 나 스스로도 나를 아끼지 않았던 시절, 
나보다도 나를, 그리도 소중히 대해준 사람이기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니까.

이 편지를 직접 건네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만큼 나는 너에게 미안함만 남아있다.

내가 너의 손을 놓을지언정
죽었다 깨나도 너는 내 손을 놓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영악했던 나는,
너에게 하지 말아야 했던 비수를 수없이 꽂았으니까.
지금 너에게 고맙단 말도 못하고 미안하단 말도 이렇게 비겁하게 한다.

이 글을 읽을지 모르겠으나
너는 알겠지, 이 글의 주인공이 너라는 걸.
정말이지, 진심으로 네가 행복했음 좋겠다.
그리고 고맙고 미안하다.



@YogurtRadio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과 허기짐 그리고 타이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