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찬 빗소리에 눈이 뜨였다.
집을 나설 때쯤 빗발이 좀 약해지면 좋을 텐데,
생각을 하며 출근 준비를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앉아 빗소리를 듣다가 오전 8시, 빗발이 조금 작아진 것 같아 재빠르게 집을 나섰다.
어, 어, 그런데, 이건 아닌데... 약해지는 듯하던 빗발이 다시 거세어졌다. 나는 재빨리 버스 정거장까지 갈 생각이었다.(운전을 못하는 나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걸어야 한다)
설마, 하는 사이에 옷이 다 젖었다. 우산이 소용이 없었다. 그냥 다 젖었다.
일단, 어느 빌라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을 치고 부서지는 빗방울을 보면 비가 얼마나 세차가 내리는지 알 수 있다. 이건 빗방울을 넘어 분수다. 몇 분, 아니 몇 초였을까, 그 사이에 순식간에 쏟아진 폭우로 도로에는 물이 차오르고 개울을 이루고 있었다. 그 물길을 샌들을 신고 자신 있게 걸어가는 이가 두 사람 정도. 갑자기 그들의 샌들이 부러워졌다. 눈앞에 남학생 한 명이 나타났다. 자신 있게 우산을 들고 침착하게 걸어가다 그 역시 주차장으로 피해 들어갔다.
운동화를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 오늘은 운동화가 아니야. 슬리퍼나 샌들을 신어야지)
내 발을 보니 자신 있게 신은 검은색 구두.
발이 젖는 게 싫어서 구두를 신고 나왔는데, 이건 정말 완전한 참패였다.
날씨가 더워도 나는 샌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맨발로 샌들을 신으면 땀이 차는 느낌이 싫고 또, 피부가 약하여 발갛게 부어오른다. 그래서 여름엔 면양말에 스니커나 여름용 슈즈를 선호한다. 그런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샌들을 신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폭우에 흠뻑 젖은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 오늘 같은 날은 정말 출근하기 싫다. 뭔가 핑계를 대고 집에서 쉬겠다고 할까?)
잠시, 마음의 갈등.
(아니야, 그래도 출근은 해야지)
스스로에게 되뇌며 이윽고 결심을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비는 퍼붓고 있었다. 우산으로 머리 하나 가리고는 집으로 뛰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욕실에 두고, 눈에 보이는 대로 대충 챙겨 입고, 작년에 인터넷으로 구입했지만 한 번도 입지 않았던 레인코트가 생각이 나서 꺼내어 입었다. 그리고, 최근 2,3년 동안 신지 않고 박스 안에 넣어두었던 샌들을 꺼내어 신고, 그야말로 무장을 하여 집을 나왔다.
눈앞에 포기한 듯 체념한 상태로 여학생이 우산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레인코트를 입고 샌들을 신은 나는 흔들림 없이 바로 버스 정거장까지 걸어갔다. 빗발은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 샌들을 신은 이들이 눈에 뜨인다. 슬리퍼를 신은 이들도 있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멋지게 신은 여성도 있었다.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화를 사면 몇 번을 신을까 싶어서 살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이런 폭우 앞에서는 말할 수 없이 그 장화가 부러웠다.
상황을 살피는 사이에 버스가 왔고 모두들 재빠르게 버스에 올랐다. 평소보다 사람이 많다. 우산을 들고 서 있을 자리가 마땅치 않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버스는 느렸다. 교통체증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니 사람들의 더운 체온으로 버스 안은 바로 후끈거렸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것 같은데 덥다. 빨리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지하철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사람, 사람...
멀찍이 떨어서 걷다가 지하철 한 대를 그냥 보내고 다음에 오는 지하철을 탔다. 올라탄 곳이 임산부 약자석이라 그런지 더웠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나왔을 어느 여성 분, 부지런히 부채질을 하는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저 예쁜 화장을 다시 고쳐야겠지...) 혼자서 생각하며 시선은 애써 다른 곳으로 돌렸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지상으로 나오니, 웬걸, 비가 그쳐있다. 비가 한차례 오고 갔는지 도로는 젖어있었지만 비는 이미 한참 전에 그쳤는지, 도로는 마른 도로가 비율적으로 더 많았다.
사람들은 손에 손에 우산을 들고 있었지만 서두르지도 않았다. 평온하게 걷고 있었다.
(이거, 완전 딴 세상이네. 나 혼자만 비를 맞았나?)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느 한 사람 비에 대하여, 폭우에 대하여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국지성 호우! 우리 동네만?)
아침에 나 혼자 쇼를 한 것 같아서 입이 막혔다.
잠시 꿈을 꾼 것 같은 느낌.....
인사만 하고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았다.
아무런 일 없는 듯이......
24년 7월 장마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