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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8시간 공부합니다

한국어 교실에서

by 안나





일본에서 10년 이상 한국어를 가르쳤다.

일본인은 시간을 잘 지키고 조용하다. 조용히 듣고 질문한 것에 대해 간단히 대답하고 가능한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전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모습과 비슷하다. 아주 수동적이다. 가끔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사람이 모이는 만큼 사정이 있고 에피소드가 있다.


한국드라마 붐은 이미 일본의 NHK에서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그즈음에 NHK에서 주말 늦은 시간에 방영해 주는 한국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는 이들, 특히, 이병헌, 최지우 주연의 <아름다운 날들>을 재미있게 봤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다 지상파에서 방영된 <겨울연가> 이후로 <주몽> <대장금> 등 한국드라마는 일본의 아줌마 세대를 강타했다. 그에 따라 한국어 공부한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늘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드라마를 보다가 한국어를 찾고, 다음에는 딸들이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듣다가 한국어를 찾았다.


어느 날, 여고생이 한국어 교실을 찾아왔는데 그녀의 가슴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이름표가 달려있어서, 나는 그녀가 재일교포인 줄 알았다.

그녀와 얘기를 나누다가 그녀의 가슴에 달린 이름표가 한국인 가수의 이름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 사이에 좋아하는 한국인 가수의 이름표를 달고 다니는 게 유행이라고 했다.(적지 않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꽤 풍채가 좋은 그녀를 만난 것은 초여름 무렵.

젊을 때 20여 년을 중국 관광가이드로 일했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었고 지금은 본인의 건강은 물론, 남편의 건강도 좋지 않아서 한국어를 공부하여 남편과 둘이서 자유롭게 한국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6개월 정도 개인교습을 원했고 6개월 동안 같이 공부를 했다. 중국어를 잘하시는 분이라 한국어도 다른 사람보다 빨리 늘었다. 한국어를 읽고 쓸 수 있게 되자 그녀는 한국어교실 기존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녀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

그녀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었고 그와 함께 그녀의 교과서도 점점 배가 불러져 갔다.

인터넷이나 다른 책자에서 관련된 내용을 찾아서 교과서에 붙여놓으니 교과서가 점점 두꺼워지는 것이다. 그녀의 두꺼워지는 교과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나왔다.


어느 날.

"당신은 하루에 몇 시간 한국어공부를 합니까?"

이런 회화 연습을 했는데,

기존의 멤버들은,

"일주일에 30분 합니다. 일주일에 1시간 합니다"로 매일 한국어 공부하는 사람은 없고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공부한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저는 하루에 8시간 공부합니다"였다.


와우!!

모두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는 듯 서로 얼굴만 바라보는 상황.

이야기를 들어 본즉,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한 후에 4시간,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4시간, 한국어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녀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식사 준비도 남편이 해주고 있었고 그녀는 식사를 하면 바로 공부를, 열공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목적이 분명했다. 하루빨리 한국어를 마스터하여 한국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열정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녀의 발음과 악센트였다.

중국어를 공부했던 그녀의 발음은 중국 유학생들의 발음과는 어딘가 다른, 그렇다고 일본인들의 한국어 발음과 또 다른 독특함이 있었다. 입으로 열심히 한국어 발음을 해보지만 그녀 자신, 자신의 발음과 악센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한국어 발음이 이상한 것은 중국어를 공부했기 때문이라며 중국어를 저주한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멤버들이 또 쓰러졌다.

그렇다고 저주까지나!?

"그렇다고 저주할 필요까지 있을까요?"

물었더니, 그렇다며 끝까지 우겨댔다.

하여간 독특한 분이었다.


일본사람들은 튀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튀는 것도 싫고 누군가 튀어나와 자기들이 비교당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런데, 그녀는 너무 튀는 거다.


교실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다른 멤버들이 나를 찾아왔다. 이 상태로는 그녀와 같이 공부할 수 없으니 그녀를 다른 반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해보았다.

공부하는 수준으로 보면 문화센터에서 공부하는 다른 분들과는 실력이 너무 차이가 나니 차라리 외국어 학교로 가셔서 한국어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시면 어떻겠냐고.

그랬더니 학교는 가기가 싫고 지금 이 교실에서 공부하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나는 그녀들과 그녀 사이에서 매우 곤란해졌다. 그녀에게 나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로 인해 교실은 완전히 두쪽으로 나뉘었고 결국 기존의 멤버들은 하나 둘 교실을 떠났다.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아서 교실을 닫기로 했다. 계속 교실을 유지해도 그녀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것이 뻔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사람들이 자기를 왕따를 시켜서 이렇게 됐다고 분해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말에는 동감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칭찬해 줄 일이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뭔가 하나가 부족했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이 없었다. 그녀의 말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손해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일은 이후에 어학교실을 이끌어가는데 좋은 경험이 되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이기에 그런 문제가 전혀 없을 수는 없다. 가끔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다. 관계성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대부분은 진심이 통한다. 통하지 않을 때는 딱 잘라버리지는 않고 조용히 멀리 돌아서 간다.


그 후, 그녀를 만난 적이 없다. 그녀가 계획대로 한국 여행은 했는지 모르겠다.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그녀의 열공은 도대체 따라갈 수 없기에 가끔씩 그녀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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