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와달이
별 이는 별 이를 꼭 닮은 엄마와 별이, 이마에 회색 줄이 있는 형아, 진한 카오스 형아 (성별은 미확실) 네 가족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구조되었다. 구조되고 임보를 하다 나와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됐고 별 이를 만난 지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동안 별이 사진을 늘 찍어오며 온라인에 함부로 기재할 수 없었던 건 언젠가 아주 나중에 별 이와 이별하게 될 때 이 추억을 되돌아보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미뤄왔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별 이의 지난 사진을 보면 단 한 장도 내 감정이 기억이 나지 않는 그날의 사진은 없으니 - 더 늦기 전에 기록해 두 자.
그렇게 별 이를 만났다.
흰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한마디에 2시간 만에 정신을 차려보니 고양이 사료와 화장실을 사고 있었다.
친구가 소개해준 임보자님을 통해 받은 사진엔 푸른 눈을 가진 “하양이” 가 있었다. 금방 떠나게 될 아이들의 이름을 임보자님은 특징으로 지어주신다 했다.
가족이 되던 날
함안에서 2시경 이동보호자님의 차를 타고 인천을 오는 별이었지만 서울까지 이동시켜야 할 동물들이 꽉 찬 관계로 우리 집에 도착한 건 9시 반경이었다.
2개월도 안된 아기가 오후 1시부터 이동장에 실려 10시간 가까이를 이동하고 밖에 있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좋아도 싫어도 이제 인생이란 한 배를 탄 사이
고양이를 첨 키워보는 나는 설렘 반 걱정반으로 퇴근 후 친구들과 모여 셋이서 별 이를 기다렸다. 팔 한쪽도 안되는 담요에 쌓여진 별 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이렇게 작은 솜뭉치가 생명이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작고 가벼웠다.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 이는 정말 순하게 내 품에 안겨 집으로 들어왔다.
배고팠는지 미리 준비해 둔 화장실을 이용하고 사료를 금세 먹고 별 이는 한동안 침대 밑에서 나오질 않았다.
먼저 올 때까지 모른체해 주세요
임보자님의 부탁이었다. 아이가 놀랠 테니 궁금하면 먼저 다가올 거니 그때까진 신경 쓰지 말고 내버려 두라 했다. 2~30분여를 구경만 하던 별 이는 슬금슬금 나와 이모들과 잠깐씩 놀다 셋 중 내 발에 얼굴을 기대고 잠이 들었다.
친구들은 이 집 주인을 본능적으로 아는 거라 했지.
이렇게 나의 감시받는 집사의 생활이 시작된다.
이튿날 출근 준비를 하는데, 내가 잘 땐 맘 편히 돌아다니고 쉬더니 내가 눈뜨고 돌아다니니 곧장 경계태세다. 아직 나를 이방인으로 생각하고 있나 보다. 티비 뒤에 숨어 안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나를 훔쳐보고 있다.
기나긴 겨울을 함께 나는 제2의 별이 인생 시작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 별 이는 점점 내 곁에 오기도 하고 애기애기함을 한껏 뿜뿜하기 시작한다. 아주 아기 때는 그야말로 그루밍도 잘 모르고 눈곱도 땔 줄 몰라 종일 눈곱이 그득 껴 있었다. 오자마자 결막염까지 걸리는 바람에 3주 동안 별 이는 택시를 타고 병원을 기웃거려야 했다.
일주일이 됐는데도 가끔 나를 경계할 때마다 참 뭔지 모를 서운함이 벌써 든다. ㅎㅎ
오라 해도 저렇게 나를 대놓고 찬밥 신세로 만들어 줌.
그래도 우리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 이때까지만 해도 별 이는 무릎 냥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밥 먹을 때도 무릎, 추워도 무릎, 티브이를 봐도 무릎 무릎 무릎
별 이도 이럴 때가 있었다.
안겨서 자는거 좋아하고.
처음 병원 가던 날, 이동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품에 안고 갔다.
불안함에 발톱을 세우고 모자 뒤로 올라가 숨느라 내 목은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다.
별 이는 오자마자 예방접종, 귀 진드기, 결막염으로 한동안 귀찮게 병원을 꽤 다녔는데
그때마다 병원에선 순하디 순한 양이 되어서는 의사선생님이 발톱을 깎아도 귀 청소를 해도 주사를 놔도
나 죽었소 ~ 하고 있으니 3명의 선생님이 번갈아 가며 " 얘 참 착하네요" "애가 참 순하네요"를 연발하셨다.
집에 와 지랄묘로 변하는 모습을 한번쯤들 보셔야 하거나,
내 손등의 잔챙이 상처들을 보셔야 그런 소리 쏙 들어가지 싶었다.
본격 냥린이가 되어가는 둿발팡팡의 시대가 오고,
깨물기도 날로 늘어나고
처음 장난감을 접하던 날
별 이에게 처음 사준 장난감은 빨간 앵무새였다.
매일 밤 퇴근해 처음 한 시간, 10시 드라마 시작할 때 한 시간 정도 2시간여를 놀아줬다.
별 이는 그래서 매일 나만 바라보고 나만 기다리고 노는 것도 혼자 노는 법을 모른다.
처음 1주일 간은 저 앵무새만 제 자리에서 왔다 갔다 해도 미친 듯이
펄쩍 뛸 정도로 잘 놀았지만 익숙한 장난감에 쉽게 질려버리는
별이를 발견하곤 약 한 달 후쯤 나는 좌절하기 시작했다.
이모가 사준 스크래쳐는 너덜너덜해져 걸레 조각이 될 때까지 별 이의 편안한 쉼터였다.
사냥과 경계, 그리고 겁이 많은 별이의 본능
장난감 놀이를 하며 사냥을 배우더니 나름 카리스마를 분출하시 시작하는데.
왜 때문인지 사냥할 때 귀엽다.
매일이 상처투성이 던 손
통통했지만 나름 피부색이 밝아 뿌듯했던 나의 손이 별 이가 오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저 때까지만 해도 나 어쩌나 내 손 평생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지만 7개월까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냥린이.
지랄 묘였던 시기였던 것이었다. ㅎㅎㅎ
처음 집에서 삼겹살을 먹던 날
별 이가 처음 보는 표정을 했다.
길거리에서 엄마가 주워다 주는 사람 음식을 맛봤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찡 해왔다.
한동안 안절부절못하며 눈으로 먹고 입맛을 다시는데 어찌나 안쓰러운지
그래도 안된다며 너를 위해 이건 줄 수 없어라고 눈을 마주치며 100번을 얘기해도
"그딴 소리 개나줘냥!" 라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_=
화분키우는 삶을 포기
잘 키웠던 건 아니지만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눈으로 보는 녹음에 행복을 느끼던 나였는데
별이는 초록 식물을 보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앞발을 휘적이며 그녀석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잎으로 자꾸 씹어 뱉어서 잎은 가냘퍼지기 시작했고
내가 외출한 사이 아끼는 화분을 두어개 깨먹고 나서야
별이와 화분은 공동삶을 살수 없음을 인정하고 식물들을 베란다로 피신시켜 줬는데
눈에서 안보이니 쉬이 물을 줄수 없게되어
그들도 점점 매말라 갔다 (=_=)
결국 나는 집에서 식물키우는 삶을 점점 포기하게 된다.
개구진 나의 첫 고양이
주말 청소 좀 할라치면 놀자고 졸졸 따라다녀 청소를 방해하며 냥린이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청소기를 돌리면 깜짝깜짝 놀라서 도망갔다가도 끄고 걸레질을 하면
그게 장난감 놀이인 줄 알고 다시 뛰어와 걸레 위에 올라타곤 했다.
처음 병원을 다녀온 날
임보처에서 처음 올라오던 날 별 이의 발톱 길이는 최대치였다. 정말 길거리에서 당장 주워온 냥이처럼 태어나고 한 번도 깎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병원 방문 첫날 손톱 깎기에 오랜 길거리와 임보 생활 덕분에 별이 귀에 그득 하던 진드기와 청소. 주사까지. 첨 겪어 보는 상황에 별 이는 집에 오자마자 그야말로 “떡실신” 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흔들어 깨워도 깨워도 별 이는 정말 나 몰라라 하고 세상 깊은 잠이 들었다. 심지어 이 고양이가 사람마냥 드르렁드르렁 코까지 고네 ;;
반려동물을 행복하게 키운다는 것 - 그 고민의 시작
언젠가부터 놀아주지 않으면 별 이는 금세 시무룩하고 우울해했다. 달이를 만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멍하니 하늘을 보는 날이 많아지고 집에 와 저녁을 먹고 있어도 주말에 좀 쉬어도 냥린이 별 이에겐 에너지 소비를 하는 일이 줄어들어 우울해했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하고 엄마미는 저녁에 오고. 나는 이때쯤 내가 1인 가정에서 고양이를 키운다는 이름으로 "학대"를 하고 있지 않나 라는 깊은 생각에 빠져 꽤 많은 심리적 부담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별이는 여전히 깨발랄했고 정석대로 나이에 맞는 지랄묘의 특징을 순서대로 내게 잘, 아주 자알 보여주며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면 다시오지 않을 아깽이 시절을 나는 눈뜬 장님 마냥 처음 고양이를 키우며 어리버리 보내고 있었다. ㅎ
앵무새 아닌 장난감을 첨 접하던 날
앵무새가 아닌 라운드 스크래쳐를 주던 날, 별 이는 30분 동안 저 안에 들어간 공을 가지고 놀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화장실만 가도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며 울며불며 하던 별이었는데 처음으로 화장실을 가도 울지 않던 날이었다. 쉴새없이 동그라미 스크래쳐를 가지고 놀더니 30분 후 만족스럽고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 찍는 날 향해 맘껏 찍으라며 기다려준다. 세상 모델 냥이 따로 없구나 했다. 이제야 별이의 에너지가 조금 소모되었나 보다. :)
저녁을 먹을 때 별 이는 늘 내 무릎에 와서 잠이 들곤 했는데, 가끔 눈가 입가를 마사지해 주면 세상 편하게 내 손에 얼굴을 맡겨두고 본인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때는 이 마사지를 커서도 계속 해 줄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어른이 된 별이는 애기때보다 더 예민하게. 본인 몸 만지는걸 싫어한다.
이제 슬슬 집이 익숙해
드디어 집사와의 1인 집 살 이가 실감이 나는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음을 알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 별 이는 슬슬 집안 여기저기를 뒤지며 본인만의 공간을 다져나갔다. 내가 외출을 하는날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한다는 나만의 착각을 가지며 나도 이제 별이가 내게 익숙한 존재가 되어가기 시작한것 같다.
이빨질이 너무 심해, 몇 개월간 손등이 남아날 일이 없었다. 아기 때 안된다고 가르쳐야 한다길래 너무 세게 물면 혼 내키곤 했는데 이때 별 이는 정말 최고의 냥린이 시절이라 혼을 내면 두더지처럼 빠른 스피드로 도망가서 날 저렇게 쳐다보곤 했다.
일주일도 지났는데 한 달이 되었을 무렵인데 아직도 별 이는 나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제 내 옆에도 오고 내 옆에서 잠도 자니까 무작정 아무런 생각 없이 이리 오라던 나의 부름에 별 이는 놀라서 한걸음 도망친 뒤 저곳에서 나를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 아직도 멀었구나"
고양이는 참 신기하고 쉽지않은 동물이다.
별이는 날이갈수록 나에게 의지하고 나와 놀아달라하고 나만바라봤다. 그도 그럴것이 이 곳에 원래있던 형아들도 없고 혼자 하루죙일 모르는 차를 타고와 모르는 사람집에 와 보니 보이는거라곤 나와 자기뿐이니.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넘넘 반가워하는 별이. 무릎과 다리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오늘도 너는 하루 종일 나만 기다렸구나. ㅠ.ㅠ
나를 엄마로 생각하는걸까?
그렇게 별 이와의 새로운 삶이 익숙해지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별 이가 내가 입은 수면잠옷 소매에 달라붙어 쭙쭙 거린다. 첨 당하는 일이라 너무 놀랐다. 얘 모지? 얘 날 엄마로 생각하나????
고양이들이 엄마젖을 빨 때 "꾹꾹이"를 하고, 젖 먹던 기억으로 "쭙쭙이" 를 한다는 걸 고다를 통해 알게 되었다. 별 이는 쭙줍이와 꾹꾹이를 동시에 했다. 쭙쭙이 할 때 외에 꾹꾹이만 하는 건 1년이 지난 지금도 딱 1~2번 잠깐뿐이었다. 이때부터 별 이는 매일 퇴근하고 집에 가면 1~2시간 동안 쭙쭙이를 했다. 자기 전에도 1시간 자면서도 하고, 일어나서도 별 이는 긴 시간 동안 쭙쭙이를 했다.그걸 보는 나의 마음은 뭔지 모를 뭉클함과 미안함, 그리고 짠함이 섞여 맘이 복잡해졌다.
(달이를 만나게 된 두 번째 계기)
1년이 지난 지금도 별 이는 매일 아침 5시~6시 사이 나에게 와서 쭙쭙이를 한다. 겨울이건 여름이건 나는 저 수면잠옷을 준비해두고 잠결에 별 이가 침대로 올라와 베개를 깔고 앉아서 " 뭐 해 나왔잖아 엄마, 빨리 손을 내밀라"라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으면 주섬주섬 잠옷을 입고 내어준다. =_= 가끔은 혼자 조용히 베개로 올라와 골골송을 부르고 있다. 잠결에 어디 귓가에서 골골송이 맴돌면 어김없이 별 이가 다가와 있는 것이다. 그 소리도 못 듣고 내가 못 일어나는 날엔 앞발을 그냥 움직이는 척 조용히 얼굴에 갖다 댄다. 어디선가 뜨뜻한 느낌이 들어 깨보면 별 이가 입맛을 다시며 날 쳐다보고 있다. 5센티미터 거리에서.
그칠줄 모르는 쭙쭙이.
네이버에 사진이 50장 밖에 올라가지 않아 오늘은 여기까지 -
그렇게 나에겐 온 하양이는 "별" 이가 되었다. 지난 몇 개월의 기록에도 이렇게 많은 사진이 남겨져 있다. 1년 사이 별 이는 내게 너무 깊게 다가온 가족이 되어있었다.
그 누구에게서 받을수 없었던 <위로> 라는걸 내게 준 고양이
생각해보면 뒤돌아 본 인생에 내가 아프고 힘들 때 나에게 위로를 준 사람이 누가 있지?라고 했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뒤에서 묵묵히 나를 응원해 주는 고마운 분들 몇 빼곤 나는 "위로"라는 걸 받아본 적이 있는가 -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에게 고민 상담, 연애상담을 하려 찾아오는 이는 많았지만, 위로를 받으려 온 사람은 위로를 받는 것만 알뿐 주는 방법은 잘 모른다.
특별히 아픈 곳이 없는데도 너무 춥고 으슬으슬 거려 꼼짝 못하던 작년 어느 날, 별 이는 갑자기 내게 와 팔을 올려달라 앞발을 긁어댔고 겨우겨우 팔을 들어줬더니 틈을 비집고 들어와 함께 잠을 청했다. 방금 전까지 으슬으슬하고 침대로 걸어갈 기운이 없어 바닥에 베개 하나 비고 누워있던 나였는데, 따뜻한 기운으로 둘이서 그렇게 1시간을 잤더랬다.
가장 길고 추웠고 몸이 약했던 그 1년을 옆에서 체온을 나누며 지켜준 별 이에게 처음으로 "위로"라는 걸 받아봤다 생각했다. 이 작은 고양이게 미쳐있다 말들도 많았지만 내 선에서 무리하지 않는 방법으로 나는 별 이를 잘 키워가고 있다. 그게 새로운 누군갈 만나도 별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만나지 않겠다 다짐 먹은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 사진엔 더 많은 별 이의 폭풍 성장기와 달이 이야기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