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이제 뭘 해먹고 살아야하나
아 나는 이제 뭘 해먹고 살아야하나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 중 대다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일테고, 미래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요즘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이다. '어떻게'에는 많은 의미가 있는데 최근의 나는 '어떤 일을 하며'에 조금더 초점이 맞춰져있다. 또래 친구들끼리 만나면 한다는 소리가 누구는 취미활동하다가 최근에 직업으로 삼았다더라, 걔는 학원다녀서 기술배우더니 직종을 완전 바꿨다더라와 같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일에 대한 방식들이다. '꼭 회사가 아니어도 돈벌 수 있는 방법은 많아'로 귀결되며 모임을 파하는데 그래서 뭘 해야한다는건지 사실 서른이 훌쩍 넘도록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고민은 단순히 '돈을 버는' 개념을 넘어서 앞으로 내가 할 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고민이므로 내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주-욱 써보고,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면 다음 스텝에 대한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
입사를 위해 기업에 제출하는 자기소개서처럼 11년차 경력직이 써내려가는 자기탐구서 정도로 명명해두면 좋을 것 같다.
A. 대학에서 광고와 홍보를 전공하고, 당시에 각광받기 시작한 바이럴 마케팅을 경험할 수 있는 취업포털사이트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말이 좋아 바이럴 마케팅이지 당일 등록된 새로운 채용공고를 가입은 되었지만 허락받지 않은 네이버, 다음 카페 게시판에 퍼다나르고, 제휴를 맺은 간호조무사나 전기기사 등의 특수한 직종 커뮤니티에 공고를 뿌려주는 일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트래킹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내가 올린 채용공고 포스팅을 보고 몇 명이 들어왔는지 실제 입사지원을 했는지 알 길도 없었다. 하루에, 일주일에 몇 개의 포스팅을 했는지가 성과척도의 기준이었다. 자유분방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꽤나 꼰대스러운 문화가 많았던 회사라 정직원 제안을 받았지만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거절했다. 100명이 넘는 인턴 중 네다섯 명에게만 돌아가는 기회였는데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인턴 퇴사 후 2개월동안 거의 매일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면접을 본 곳은 단 3곳 뿐이었다.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또 고쳤다. 그래도 연락이 없자 인턴으로 일했던 회사에서 정직원 제의를 거절해서 내 지원서를 일부러 누락시킨건 아닌가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일조량이 제로에 가까운 고시텔이 나를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면접을 본 곳에서도 최종 합격전화는 오지 않았다. 본가로 내려가서 부모님 일을 도왔다. 그간 자유로운 유흥생활을 즐기며 살다가 부모님 품으로 다시 돌아가니 여간 답답한게 아니었다. 나는 서울체질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이 생각에 면함은 없다. 정직원을 거절했던 채용사이트에서 지역을 '서울'로만 검색해서 일자리를 알아봤다. 그러다 얻어걸렸다. 영화마케팅. 매력적인 단어의 조합이었다. 2군데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했고, 공교롭게도 2곳 모두 연락이 왔으나 면접 날짜와 시간이 겹쳤다. 일정을 바꿀 수는 없다고 했고 한 번 더 물어봤다간 면접 전부터 이상한 애로 찍힐 것 같았다. 2곳 중 해리포터, 트랜스포머 마케팅을 담당했다고 하는 회사를 선택했다. 내가 재미있게 봤으므로. 면접에 붙고,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영화 온라인 마케팅 대행사. 만들어진 영화가 개봉한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일을 하는 곳. 그 중에서 온라인 파트를 담당하는 회사라 포털사이트에 걸리는 광고나 SNS, 이벤트, 프로모션같은 것들을 대행한다. 한국 영화를 담당하게 되면 엔딩크레딧 거의 마지막에 이름이 나오기도 한다. 일은 쉽지 않았다. 영화는 쏟아질 듯 많았고, 인원은 늘 부족했고, 온라인의 중요성이 점점 상승하는 시기여서 페이스북이다 뭐다 할 일이 점점 늘었고, 광고주들의 야속한 요청과 요구도 늘었다. 야근의 연속이었다.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냥 시간 남으면 가장 유행하는 영화를 보는 나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게 영화를 좋아하는거지 별거겠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인 척 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지금껏 밥벌어먹고 살 수 있는 기술들을 배운 고마운 회사이기도 하다. 사실 배웠다라기 보다는 대행사 특성 상 알려주는 사람은 없고, 어깨너머로 보고 따라하거나 눈치껏 때려맞추는 일이 더 많았는데 그러면서 나만의 노하우도 채득하고, 남에게 알려줄 정도로 쬐끔은 성장한 것 같다. 4년 7개월. 어영부영 일을 하다보니 과장까지 진급했고, 5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원을 제출했다. 4년 7개월 중 눈치보던 인턴 시절 2-3주를 제외하고는 저녁 7시 전에 퇴근한 날을 손에 꼽을 수도 있다. 그정도로 업무강도가 강했고, 개인의 시간은 없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의 양은 더 많아졌다. 그래서 농담삼아 야근하는 팀장님들을 보며 '보라 저것이 너의 미래다. 그러니 벗어나자'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영화일을 한다는게 힘들었지만 재밌기도 했다. 녹록치 않은 서울생활에 정붙일 사람이 없었는데 그 시절 나에겐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내 깊이였고, 사무실이 있던 압구정이 나라는 사람의 너비였다.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몸은 그렇지 않았다. 새벽내내 잠들지 못하는 시간이 점점 늘었고, 몸과 마음이 병들었다.
퇴사 후 정확히 1년 1개월 15일을 놀았다. 요즘 뭐하고 사니? 놀고 먹어. 정확히 그랬다. 놀면 뭐하니? 뭐하긴 신나지! 신나게 놀고 먹었다. 통장 잔고는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다음달 카드값을 감당하려면 일을 구해야 했다. 닥치는대로 입사지원서를 냈다. 7년 전이나 저때나 대책없는건 여전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몇 군데 회사에서 면접을 봤고, 가장 자유로운 분위기인 회사를 선택했다. 생긴지 몇 년 되지 않은 부동산 관련 스타트업 마케팅팀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오래 걸리진 않았다. 평균 연령이 어렸고, 특히나 마케팅팀 팀원들은 나보다 어렸고, 경력도 짧았기 때문에 언니누나 대접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면접 때 면접관인 팀장이 날뛰는 망아지들의 고삐를 붙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정확했다. 그치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도 그 망아지 대열에 합류해 초원을 날뛰었다. 소주병을 들고 말이다. 일은 새로웠다. 대행사에서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다가 직접 우리의 서비스를 마케팅하는 일은 신기하기도 했고, 자신감 넘쳤던 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기도 했다. 4년 7개월은 모든 스킬을 연마하기에는 짧았구나 뼈저리게 느꼈다. 전 직장과는 다르게 칼퇴가 보장된 곳이었는데 나는 항상 자발적으로 야근을 했다. 모자라서 더 공부해야했고, 다른 사람에 비해 업무량이 더 많기도 했다. TVCF를 만드는 일부터 오프라인 행사, 굿즈 등 말만 들었던 마케팅의 세계에 푹 절여졌다. 그 당시 대행사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광고주뽕이 생겨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속으로 '으이구 너희도 광고주 입장이 돼봐라. 그렇게 말할 수 있나' 재수없는 생각도 많이 했었드랬다. 그렇게 마케팅의 세계에 절여지다 못해 녹아버려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도 무시하고 있었다. 피부를 잘 고친다는 한의원에서 나쁜 균이 온몸과 피에 퍼져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한 달 약값으로 75만원을 결제했을 때 알았다. 너 아픈거였어. 이제 통장도 같이 아플거야.
돼지고기 김치찌개 점심은 풀때기 샐러드로 바꼈고, 철저한 동료들의 감시 속에서 샐러드에 드레싱조차 다 뿌리지 못했다. 고오맙다 녀석들아. 나을만하면 도졌고, 팀원들은 항상 나를 배려해줬고, 나의 화를 돋구는 사람이 생기면 가서 무찔러주거나 옆에 와서 신랄하게 욕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몸은 나아지질 않았고,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물론 병마때문만은 아니었다. 스타트업의 자유분방함이라는 미명아래 서로에게 내뱉는 날카로운 말, 다양한 형태의 월급루팡들, 회사의 비전과 나의 비전이 다르다는 지점을 채감했을 때 더이상의 체류는 의미없다는 판단도 있었다. 때마침 전 직장에서 모셨던 2명의 리더들이 독립해 회사를 차린다고 창립멤버로 오지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영화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 대행사는 가지않겠다 다짐했건만 이 곳에 또 왔다. 달라진게 있다면 내가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이 성장했다는 것. 시야가 넓어졌고, 다양한 관점이 생겼고, 살짝 넓어진 인맥이 도움이 되었다. 입사할 때 유일한 조건으로 내걸었던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게 해달라는 나의 말에 대표님은 흔쾌히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영화 마케팅은 광고를 제외하고는 데이터와 거리가 먼 업계인데 그럴싸한 퍼포먼스 마케팅은 아니지만 우리가 만든 마이크로 사이트에 접속한 사용자들을 Google Analytics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몇 개의 이미지와 링크, 스크립트를 넣으면 사이트를 만들 수 있도록 CMS를 개발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이 업계는 일에 대한 결정을 주관적인 해설과 개인의 판단,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것이 틀렸다기 보다는 세상에는 무수한 변수가 있고, 트렌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니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으로 결정의 타당성과 논리성을 만들어서 이건 어떠니, 저건 어떠니 하는 모호한 결단력으로부터 벗어나는데에 목표를 두었다. 마케팅 세계는 날이 갈수록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숫자놀음의 중요성이 높아지는데 영화만 그 세계를 피해가고 있었다. 그 넓은 세계에 가장 먼저 눈뜨고 행동하는 회사에 내가 다닌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회사의 비전과 나의 비전이 같은 선상에 있다는 그 느낌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동안 일을 하며 새롭게 만들어내는 활동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유명 아이돌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담당했을 땐 팬덤의 화력을 사회공헌적인 활동에 쏟아부을 수 있도록 네이버 해피빈과 조우해 청소년 문화지원 캠페인을 런칭했다. 팬들이 콩을 저금통에 기부하고, 기부자 중 일부를 추첨해 무대인사에 초대하거나 배우의 소장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덧붙였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물론 해당 영화와 배우의 이름으로 기부한 금액 역시 상당했다. 이 캠페인은 해피빈에서 진행한 캠페인성 영화 프로모션의 첫 사례였고 이 후 다양한 영화들이 좋은 취지의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영화를 홍보하는데 물꼬를 터주기도 했다.
이정재의 역대급 등장씬으로 화제가 된 <관상>이라는 영화를 담당했을 때는 네이버에서 막 서비스하기 시작한 홈페이지 제작 서비스 'modoo'와 협업해 영화/연출 카테고리를 위한 템플릿 개발을 제안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해 많은 영화들이 무료로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발판을 만들기도 했다.
O2O 플랫폼 스타트업에서는 다양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던 중이었는데 커머스 운영 메인 담당자가 되어 경험해보지 못한 쇼핑몰이라는 세계에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물론 나의 퇴사와 동시에 지금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서비스이기도 하지만 커머스 시장이 얼마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있는지 그 속에서 마케팅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몸소 부딪히며 느껴본 소중하지만 아찔하고 아픈 경험이었다.
자기소개서에서 성장과정이라 함은 단순히 '나는 이런 유년시절,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가 아닌 일련의 사건을 통해 '어떤 것을 배웠고 그로 인해 이렇게 성장했습니다'를 직무와 연관지어 표현하는 항목이라고 한다. 그런 의도에서 나의 성장과정 서술은 인사담당자 입장에서는 일관되지 않은 업직종과 스트레스에 취약한 병약함(?)이라는 이유로 몇 줄 읽고 다음 서류로 넘겨버릴만큼 고루한 내용이지 않았나 싶지만 자기탐구서를 쓰는 나의 입장에서는 꽤나 맘에 드는 서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의 일을 돌아보면서 어떤 업무를 좋아했고, 어떤 일을 했을 때 성취감이 들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일을 잘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더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나를 다그치고 채찍질해 몸과 마음에 병을 만들기도 했다. 일을 좋아하는 것만큼 나를 아껴주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 또한 필요했는데 그걸 잘 몰랐던 것 같다. 광고학개론 시간에는 그런 걸 알려준 사람이 없었으니까. 이렇게 또 나와 부딪히며 배운다. 나를 잘 알아가기 위해서 오늘도 나를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