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이제 뭘 해먹고 살아야하나
첫 번째 성장과정에 대해 글을 쓰면서 2010년부터 시작된 나의 회사생활이 글 몇 줄로 적혀진다는게 새삼 서글펐다. 나도 역사가 있는 사람인데. 그리고 혹시 제목만 보고 자기소개서 작성 꿀팁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사서 걱정하는 버릇은 고칠 수 없나보다. 두 번째 챕터는 이런 나의 성향을 정리해보면서 나라는 사람을 좀더 알아가보려고 한다.
A. 최근 SNS에서 MBTI 테스트가 유행이었다. 대학에서 여성전문강의를 들을 때 처음 이 테스트를 해봤었는데 ENFP 였던가 아무튼 굉장히 외향적이고 감성적인 유형이 나왔었다. 최근에 진행한 테스트 결과는 INFJ.
성격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하지만 앞자리가 바뀔 줄이야. 풀이를 읽어보니 ENFP보다는 INFJ가 나랑 더 비슷한 것 같긴하다. 전 세계에 1%만 있다는 가장 드문 유형이라고 하니 뭔가 특별해보이고 좋다.
각자의 성격유형 풀이를 읽어보면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나를 겨냥한 표현도 있고, 나랑은 거리가 먼 이야기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수많은 풀이 중 가장 어불성설인 내용은 시간 관리를 잘 한다는 말이었다. 5분만, 10분만을 입에 달고 살았던 시절도 있었고, 늦잠때문에 명절열차를 놓친 적이 한 두번이 아닌 내가 시간 관리를 잘한다고? 풉하고 웃었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풀이는 이러하다.
인간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들은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지키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따뜻하고 친절하며, 간단하고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쾌한 예술가들이다.
친구를 만나는 편안한 자리나 모르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어색한 자리에서 나는 대화를 주도하기 보다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소재거리를 던지는 편에 속한다. 지난 주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행하는 드라마같은 가벼운 소재부터 함께 있는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주제를 던진다. 마가 뜨는 그 순간을 잘 견디지 못하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즐거운 자리에서 누구 하나 소외되는 모습을 지켜보는게 나는 그렇게 고통스럽더라. 그리고 원래가 세상만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다양한 화두를 던지는 일이 어렵거나 부담스럽지는 않다. 이렇게만 쓰고보면 나는 굉장히 외향적인 사람같은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한만큼 나 자신의 가치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밖에서 쏟아부은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다. 보통 가만히 누워서 이것저것 생각하거나 책을 읽거나 혼자 음식을 해먹고 나머지 시간은 고양이 배를 쓰다듬으며 보낸다. 집에서 노트북을 여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는 혼자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었다.
INFJ 유형은 '변호사'와 가까운 성격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명확한 목표 중 하나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꼽는다. 단순히 사람을 구하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고 상대방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그로 인해 나 자신의 성장을 느끼는 타입이다. 회사 후배들에게 '한 번 제대로 배워두면 어디서든 써먹을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 대화에는 이제 옛말이 되어버린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항상 새로운 길을 열어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배움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잔소리적 사운드바이트가 담겨있는데 그냥 잔소리로만 듣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많다. (꼰대 레벨 테스트 5점 만점 나온 나란 사람)
자기소개서 대신 자기탐구서 1. 성장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일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것보다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었는데 사실 거의 대부분의 회사가 이런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앉혀놓고 A부터 Z까지 다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받아먹을 것은 충분히 받아먹고, 뽑아먹을 것도 충분히 뽑아먹어서 각자의 방법대로 습득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의 경우 배움의 순간들이 순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알려줄 짬이 되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자 여러번 다짐했었다. 모르는 것에서 오는 허탈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알려주지 않아도 혼자서 척척 해내는 녀석을 보면 대단하지만 알려준 것을 요목조목 다방면으로 활용하는 녀석을 보면 대단을 넘어 대견스럽다.
일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성장의 4할은 노력이고, 3할은 칭찬이고, 나머지 3할은 대견스러운 녀석들의 성장으로부터 오는 뿌듯함이라고 생각한다. 뿌듯함은 양분이 되어 나라는 사람의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이 곳에 뿌리내린 나의 나무를 또 한 번 성장시킨다. 어찌보면 이상적인 사람일 수도 있고 이런 내 모습이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고, 이상과 현실을 타협해야할 때 지치고, 그럴 때 남들보다 실망감이 더 크다.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 관리가 필연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인구의 1%가, 우리 사회의 빛이 되어줄 수 있다. 명확한 이상을 가진 사람들, 다른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는 목적을 가진 꿈꾸는 사람. 이 모두의 빛이 되어줄 수 있다.
그냥 재미삼아 했던 MBTI 테스트가 꽤나 심도깊은 이야기로 이어졌다. 오래전에 나온 테스트라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부분도 많겠지만 풀이를 꼼꼼히 읽다보니 INFJ 성격유형이 마케터, 기획자의 기본소양과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에 대한 관찰과 배려. 지우개연필, 돋보기 손톱깎이와 같은 기발한 발명품도 따뜻한 배려에서 출발한 것처럼 좋은 아이디어도 상대방을 관찰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도움을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에서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MBTI 결과는 태어나길 ENFP였던 내가 마케팅이라는 일을 하면서 INFJ로 변화한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