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 대신 자기탐구서 3. 지원동기

아 나는 이제 뭘 해먹고 살아야하나

by 김막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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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이제 뭘 해먹고 살아야하나

자기소개서 속 지원동기를 이렇게 명확하게 표현한 짤이 또 있을까?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드립력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하는지 나이가 들수록(?) 무릎을 탁 치는 생각들이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센스넘치는 짤이나 댓글을 볼 때 친구들과 공유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저런 사람이 마케팅을 해야한다며 우린 글렀다고 고개를 가로저을 때가 요즘들어 늘어나고 있다.


지난 주말 예전 회사에서 함께 일한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소한 일로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친구라 잘 있냐는 카톡에 쎄한 느낌이 들어 단박에 만나자고 답장을 보냈다. 만남의 이유는 면담 신청. 면담의 주제는 마케터의 삶이라고 본인이 먼저 주제를 밝혔다.

최근 회사를 그만둔 이 친구는 마케팅 자체를 좋아하는 친구이고,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최근에는 GA나 SEO같은 전문 분야에 대해 공부하기도 하는 착실한(?) 친구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티키타카가 가능한 회의나 논의를 할 때 기쁨과 업의 보람을 느끼는 친구이기도 한데 직전 회사는 본인의 이런 성향을 채우기에는 모자란 회사였고, 쉬는 동안 본인의 앞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 고민을 하고 있는 입장으로 내 상황을 이 친구에게 오픈하고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생각했다.


사실 낯부끄러웠다. 면담이라는 말 자체가. 뭘 물어볼지 대충 예상은 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할지 보통 신경쓰이느게 아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 줄 정도로 잘 익은 사람이던가?

마케터로 더 성장하고 싶은 이 친구는 본인의 역량을 조금 더 키우고 싶어했고, 어떤 기술적인 면도 있을테지만 마케터가 응당 지녀야할 크리에이티브한 무언가를 발전시키고 싶어했다.


내가 주니어일 때는 어떤 회사에 누가 일을 잘 하고, 이 카피를 쓴 사람은 저 마케터인데 그런 외부 활동을 한다더라 이런 오픈된 정보가 없어서 알음알음 물어보거나 했었는데 요즘 시대 마케터들은 본인들의 일과 생활을 SNS에 업로드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분야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배달의 민족 출신 마케터들의 SNS 활동이 눈에 띄는데 책을 쓰기도 하고, 취미를 발전시켜 수업을 하기도 하고, 소속은 없지만 꾸준히 무언가 하고, 그 과정을 공유한다. 그들이 만난 사람들, 방문한 장소, 추천한 책, 먹었던 음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요즘 나는 굉장히 바쁘다. 면담 신청한 이 친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본인의 생활이 갑갑하다보니 요즘은 그런 SNS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왜 저렇게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을까? 왜 나는 저렇게 살지 못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번뜩이고 멋진 일을 하고 싶은 꿈과 이상은 저 위에 있는데 저들에 비해 나는 아이디어도 부족한 것 같고, 그런 방면으로 잘 맞는 친구도 없는 것 같고, 뭘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그래서 시작도 못하고 있다면? 나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막막해서 천천히 생각해봤다.


흔히들 인사이트를 얻는다고 표현하지 공부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얻다'라는 말은 옷을 얻었다와 같이 거저 주는 것을 받아가지다는 뜻이나 허락을 얻다, 집을 얻다 등 구하거나 찾아서 가지다는 뜻으로 많이 쓰는데 공통적으로 '가지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럼 우리도 마케팅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구하거나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드는 활동에 조금 더 집중해야겠다.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생각하는 것이 모두 다른데 여기서 우리는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이것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한 번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아 새로운 물건이구나' 생각만 하면 그냥 지나치는 물건밖에 되지 않는데 이 물건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면 더 유용하겠다는 한 단계 더 나아간 생각을 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리고 그 생각을 나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할 동료가 있다면 생각을 나누면 되고, 동료가 없다면 내 생각을 친구에게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인사이트를 얻기에 충분한 제반 활동이 될 것이다.


나는 잡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사람이라 생각해야할 때는 반드시 노트에 끄적거리거나 혼자서 중얼중얼 이야기를 하는데 본인만의 방식으로 한 뎁스(깊이) 더 들어간 아이데이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몇 줄 안되는 이야기를 세 시간이 넘도록 했던 것 같다. 결국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일을 잘 하고 싶어서이다.

일을 하려고 하는 이유가 단순히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돈을 벌려는 목적도 있지만 돈이 목적이었다면 사실 마케팅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멋지게 일을 해내고 싶고, 내가 하는 일에 내가 명분을 느끼고 뿌듯함을 느끼기 위해서 일을 잘 하고 싶다.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는 일을 더 잘 하고 싶다.


일을 잘 하고 싶다는 말이 지원동기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봤는데 그것만큼 명확하고, 솔직한 동기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냥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고 싶다는데? 너무 기특하지 않......나?

'잘'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영어 'good'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착하게, 좋게, 훌륭하게, 기쁘게, 재미있게, 괜찮게, 친절하게, 건강하게, 유용하게, 올바르게 일을 잘 하고 싶다.

이직의 많은 사유 중 일을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력서를 패스하고 만나서 물어봤으면 좋겠다. 왜 일을 더 잘 하고 싶은지. 그들이 일에 목마름을 느끼고, 허기를 느끼고 있다면 그 배고픔을 우리가 채워줬을 때 이 사람이 얼만큼 좋은 아웃풋을 낼 수 있을지 가늠해봤으면 좋겠다.

왜 우리 회사, 이 직무에 지원하게 됐나요? 일잘알이 되고 싶은데 아직 일이 고파서요.

우리 밥먹으면서 이야기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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