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막삼 Aug 27. 2020

우리 집에서 재택근무하지 않을래?

언택트, 재택근무, 휴직 그리고 외로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코로나 바이러스로 우리의 일상은 멈췄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거의 없어졌고, 코로나가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 계획했던 여행을 부랴부랴 취소했다. 퇴근 후 동료들과 마시는 맥주 한 잔이, 주말에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들이 그리워졌다.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에 돌입했고, 이미 시스템화 되어 있는 회사들은 사실상 앞으로 계속 재택근무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몇몇 회사들은 향후 몇 년 안에 모든 직원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광화문 집회 발 코로나 확산세가 쉬이 꺾이지 않고, 기나긴 장마와 어마어마한 태풍이 우리의 생활을 더욱 폐쇄적이고 비대면화시키고 있다. (분노)


나는 올초부터 재택과 출근을 반복하다 개인 사정으로 7월 말부터 휴직 중인데 오늘로 한 달을 채웠다. 한 달의 휴직기간 동안 서울을 벗어난 적은 단 한 번.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내려간 일이 전부다. 그마저도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라 잠잠하던 고향집에 누가 될까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괜찮다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몸뚱이를 나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되었고, 지금은 3단계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되어버렸다. 


바이러스의 불안함때문에 약속도 잡지 않고, 최대한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다니는 필라테스 스튜디오는 다행히 개인 레슨이라 시작 전후로 기구를 미친 듯이 소독하고 있고, 자주 가던 동네 카페도 이제는 음료를 마실 때를 제외하고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그마저도 이제는 갈 수 없게 되었다. 모두가 서로를 불안해하니까. 회사마저 가지 않는 나는 셀프 자가격리 상태에 돌입당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일 외에는 현관문을 여는 일이 도통 없다. 


코로나 블루 초기 증상인가요..


지난 주말은 오랜만에 비가 오지 않고, 하늘까지 푸르른 실로 오랜만에 좋은 날씨였다.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다 보니 날짜 개념도 없어지고, 더 이상 책을 읽고 싶지도 않고, 글이 써지지도 않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일도 소원해졌다. 우울했다. 이런 게 코로나 블루인건가? 단톡방에서 놀러 가고 싶다, 카페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다 충동적으로 동네 카페로 뛰어갔다. 걸어서 5-6분 정도 거리에 사는 친한 친구(이바니 빅크토르=입이 크다고해서 붙인 별명. a.k.a 빅톨, 빅토르)네 부부와 함께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햇빛을 쬐는데 뒷목이 뜨거워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도 너무 행복했다. 이렇게나 작고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네. 물론 커피를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는 착용했지만..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는데 함께 커피를 찌끄렸던 빅토르네 회사도 사회적인 분위기가 재택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건물 내 확진자가 방문하게 되면서 재택근무를 시행하게 되었다. 잠깐씩 컴퓨터를 하던 용도로 썼던 빅토르네 집 책상은 장시간 앉아서 일하기엔 온몸을 뻐근하게 만들었고, 우리 집에는 서너 명이 함께 일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테이블이 있기에 아플 바에야 괜찮다면 우리 집에서 업무를 봐도 된다고 했더니 다음 날 아침부터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우리 집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뒷모습 출연은 괜찮겠지..? 키도 큰 빅토르.jpg


사람 한 명과 고양이 한 마리가 있던 집에 사람 한 명이 추가되었을 뿐인데 공기가 달랐다. 아침에 눈을 뜨면 타닥타닥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 내가 그녀를 맞이하거나 그러진 않는다.. 자고 있으니까) 그 소리가 어찌나 정겹던지 손수 끓인 보리차를 한 잔 따라주거나 ABC주스를 건네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아 뭔가 상큼하고 활기차.


업무를 보는 친구 뒤에서 나는 고양이를 쓰다듬고, 고양이 밥을 차려주고, 멍 때리며 한참을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책을 읽거나 브런치에 어떤 글을 쓸지 끄적이다가 11시가 넘으면 점심밥 생각을 한다. 자고로 남의 집에 왔으면 집주인의 식사대접은 필수다. 내가 해준 음식을 누구보다 맛있게 먹어주는 녀석이라 어떤 걸 해먹 일지 고민이 많다. 엄마들이 아침하고 나면 점심 반찬 생각한다더니 내가 지금 그 꼴이네. 아 뭔가 상큼하고 활기차. 우리 집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라니. 생기가 도는 것 같다. 


혼자 있을 때도 꽤 잘 차려먹는 편인데 누군가 한 명 더 있다고 생각하니 더 신경 쓰게 된다. 좀 더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야 할 것 같고, 씻기도 자주 씻고, 목이 배꼽까지 늘어난 티셔츠보다는 좀 더 단정한 티셔츠를 입고, 여기저기 닦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점심은 건강하고 든든하게 먹이자고 다짐했다. 




서걱서걱 칼질을 하고 있으면 슬쩍 주방으로 나와서 오늘은 뭘 하려나 기웃기웃거리는 모습이 꽤나 아빠 같고 귀엽다. 옆에 서서 음식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게 느껴지면 괜히 의식해서 맛소금을 네 번 털어 넣을 걸 두 번만 털고 만다. 건강하게 먹이자고 다짐했지만 건강보다 '든든'에 초점을 둬본다. 땀 흘려가며 이것저것 만들어서 대령하면 빅토르는 맛있게 먹어치운다. 그리고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남편에게 사진을 보낸다. 뿌듯하다. 사진을 전송하고 경쾌하게 핸드폰을 내려놓고 너를 어떻게 먹어줄까 하는 표정으로 젓가락을 요리조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왜 엄마들이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것에 그렇게 신경 쓰는지 알 것만 같다. 그리고 설거지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릇을 싹싹 비우면 그게 또 그렇게 뿌듯하다. 같이 설거지를 하고 나면 점심 일과가 끝난다. 오늘도 잘 해결했구나. 내 소임을 다했어.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대표 집순이로 혼자 집에 있는걸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집에 있으며 지겨웠던 적이 거의 없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충분히 많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온다. 비록 샤오미 미밴드에 오늘의 걸음이 500보가 안 넘을 때도 부지기수지만 집에서 편하게 있는 시간이 나한테는 정말 소중하다. 왜 이렇게까지 집순이가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평일 내내 업무에 시달리다 못해 찌들어 살면서 (야근은 무슨 거의 철야급) 내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었다. 그래서 새벽에 퇴근을 해도 오늘 하고 싶었던 일 하나는 꼭 하고 자야 뭔가 직성이 풀렸달까? 그래서 집에 있는 시간이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집은 휴식이니까.


둘 다 참 좋은 팔자구나..


그런데 집순이도 자발적일 때 비로소 행복하다고 바이러스와 날씨 때문에 강제적으로 집에 갇혀있으려니 정말 죽을 맛이다. 너무나 우울했다. 책을 한 권 다 읽어도 하루는 지나가지 않고, 고양이는 계속 쓰다듬어라 만져라 밥 줘라 뛰어라 장난감 흔들어라를 반복하며 보챈다. 몸과 마음이 푹푹 꺼지니 고영희님에게 쏟는 시간도 줄어드는 것 같다. 그래도 녀석의 밥을 챙기고, 쓰다듬으며 '너는 참 좋은 팔자구나'란 말을 한다. 하루가 너무 길다. 아무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햇빛을 쬐지 못해서 그런지 몸은 더욱 약해지는 것 같았다. 일주일에 두 번이나 가는 병원에서는 격한 운동은 안되지만 매일 어느 정도의 산책은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코로나 때문에.. 라며 말끝을 흐린다. 나는 면역력이 약한 환자니까.


강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힘들게 이뤄낸 체중감량에도 제동이 걸렸다. 평소에도 그렇게 활발하게 움직이는 타입은 아니지만 집 앞에 있는 하천길 따라 러닝도 하고, 더 활동적인 운동을 해보려던 찰나에 집에만 있다 보니 확찐자가 될 것 같아서 일부러라도 움직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친구 녀석이 우리 집으로 출근하는 것이 그나마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누워있으면 눕지 마라 잔소리하고, 방에 틀어박혀 조용히 있으면 뭐하냐 찾아온다. 사람이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일이 얼마나 의지되는 행위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당연한 것은 없었다. 우리가 누렸던 사람들과의 일상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매일 반복되어 지루하다 생각했었지만 생각해보면 매일이 똑같지는 않았다. 그 지루함이 그립다.


재택근무 인원이 늘어가고, 사회가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편리한 시스템을 만들수록 어쩌면 우리는 생활의 소중함을 더 잊어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가정에서의 시간이 늘어나는 것과 가정의 화목이 비례하지 않는 것처럼 언택트, 비대면, 개인화 이런 단어들이 익숙해지는 것이 나는 사실 좀 두렵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집에서 계속 재택 할래? 내가 잘해줄게. 오늘 저녁밥은 소바 마끼야. 네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우리의 경험은 소중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먹는 것에 항상 진심인 편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