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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막삼 Dec 09. 2020

버는 족족 쓰는 게 나쁜가요?

잘 모으는 사람이 있으면 잘 쓰는 사람도 있는 법.


식탁에 앉아 책을 읽다가 의자가 너무 불편해서 집 근처 카페에서 앉아보고 브랜드까지 물어봤던 1인 소파를 검색했다. 쇼핑몰 상세 페이지에 소파와 같이 놓인 하이브로우 밀크박스가 예뻐서 알아보니 2단짜리가 6만 7천 원이라는데 생각보다 안 비싸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고 싶지만 비싸고 용도가 불분명한 아이템 1위였는데?


<나 혼자 산다>에서 몸뚱이는 하나인데 집은 왜 이렇게 크며, 옷과 신발은 뭐 이렇게 많이 사모았냐는 배우 유아인의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비우는 삶까지는 아니어도 덜 사는 삶을 살자 생각했는데 그 약빨이 다 떨어진 것 같다. 


나는 버는 만큼 쓰는 소비지향적 삶을 살고 있다. 직장생활 경력과 나이는 나의 통장 잔고와 비례하지 않는다. 저금, 저축, 투자와는 거리가 멀고, 화끈하게 쓰는 사람, 아낌없이 쓰는 사람, 돈을 참 맛깔나게 잘 쓰는 사람과는 아주 가깝다. 내가 그만 산다는 말을 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유행하는 그 아이템이 너희 집에 있니?'라고 묻기보다 '그거 써보니 어때?'라고 묻는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브런치에도 재테크와 관련된 아티클들이 정말 많은데 유심히 보면 얼마나 돈을 무지막지하게 쓰는지에 대한 글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잘 모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잘 쓰는 사람도 있을 텐데. 신예희 작가의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이 출판됐을 때 널 위한 책이라는 카톡을 몇 번이나 받았는지 모르겠다. 무수한 책 추천 카톡을 받을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미디어에서 외치고 있는 기조 있는 삶, 나만의 색깔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게 분명해. 그 색깔이 카드 색, 돈 색이라 그렇지.


30대에 강남 아파트를 샀다, 20대에 이미 1억을 모았다 이런 사람들의 글을 보고 고무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읽고서는 '우와 대단하다'에 그치는 사람도 있고, 긍정적인 케이스보다 저 사람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브런치 작가 이름이 '김막삼'인 내가 적절한 케이스가 되지 않을까? 


살 때는 화끈하게 반품은 소심하게

나는 인터넷 쇼핑의 달인이다. 달인이 별거인가. 쇼핑에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으면 쇼핑의 달인, 쇼달이지. 사는 것 하나는 남들이 인정한 달인이다. 마음에 드는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찾으면 흰검, 검흰, 남흰, 초흰 할 것 없이 한 번에 구매한다. 신발도 신어보고 너무 편하면 같은 모델 다른 색을 사기도 한다. 


대신 인터넷 쇼핑의 치명적인 단점은 상세페이지에 등장하는 늘씬한 모델이 나의 체형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 상대적으로 팔다리가 짧고 엉덩이가 큰 나의 체형은 인터넷에서 옷 건져내기가 쉽지 않은데 막 주문한 만큼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화끈하게 쇼핑했지만 사이즈가 애매하게 맞지 않거나 뭔가 핏이 엉성한 옷들은 자연스럽게 다시 봉투에 싸서 옷장에 넣는다. 응? 제품을 반품해야 하는 특출한 결함이 있지 않는 이상 입을 수 있는 정도의 실수는 용인하는 편이다. 다시 말해 반품을 거의 하지 않는 샘이다. 


반품하는 나 자신이 쪼잔해 보인다거나 그런 게 결코 아니라 나한테 쇼핑은 즐거움이고 행복인데 택배사로 돌려보내는 행위를 하는 것은 즐거움과 행복한 기억을 삭제하는 일과 엇비슷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입을 수 있을 거란 작은 소망과 믿음 같은 것들이 있다. 티셔츠 하나를 사려고 수십 개의 쇼핑몰을 돌아다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반품은 무엇보다 너무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 집엔 여전히 택이 붙은 옷들이 있고, 몇 개월 혹은 1년 이상 손을 대지 않는다면 다른 주인을 찾아주는 일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다. (이게 더 귀찮은 거 아닐까.. 아니야 눈감아..)


유행하면 갖고 싶은 게 인지상정

우리 집에 있는 저 물건이 뭔지라고 물어보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이 세계의 파괴를 막기 위해!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사랑과 진실, 어둠을 뿌리고 다니는 우리 집의 감초 귀염둥이 에어프라이어, 통돌이, 일리 커피머신, 스탠리 드립퍼, 고양이 원목 화장실, 캠핑 텐트! 


유행에 민감한 척 하지만 유행보다 남들이 쓰는 건 일단 갖고야 마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1인 가구에 고양이 한 마리를 얹어 1.5 가구 주제에 4인 가구 못지않게 주방 용품이 많은 편이다. 위에 열거했듯이 에어프라이어는 초창기에 너무 작은 사이즈를 구매해 더 큰 사이즈로 교체했고, 에어프라이어가 고기를 바삭하게 만들어주면 통돌이는 촉촉하게 만들어주니까 이건 다른 용도야 그럼 겟잇! 


몇 달 전부터 맛 들인 캠핑에 필요한 텐트부터 조리기구, 랜턴, 기타 잡동사니, 예뻐서 구매한 일리 커피머신, 머신은 캠핑 가서 쓸 수 없으니 손으로 내려먹는 스탠리 핸드 드립퍼 세트까지. 없는 것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로 유행하는 아이템들은 거의 구비하고 있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트렌드 맛집이 바로 우리 집이다. 


네이버페이와 로켓배송 만드신 분은 노벨평화상급

갤럭시 스마트폰 유저들이 아이폰의 감성을 몰라서 폰을 바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삼성 페이 없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삼성페이보다는 네이버페이없이는 사는 것이 조금 버거운 상태의 사람이다. 대부분 쇼핑몰 결제창에 간편 결제를 선택할 수 있고,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는 거의 디폴트 값이다. 신용카드 이용금액 달성보다 네이버페이 포인트 쌓는 것이 나한테는 더 값어치 있는, 간편 결제의 늪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중독자에 가깝다.


쿠팡의 로켓배송? 말해 뭐해. 이런 것이 혁신이다. 오늘 안에만 주문하면 내일 우리 집 앞에 택배가 온다니. 황홀한 경험이다. 내일 안에만 와준다면 인터넷 최저가보다 현저히 높은 가격임에도 주저없이 결제를 시도한다. 


어떤 모임에서 듣기를 소셜커머스 다른 기업들이 쿠팡을 요리조리 뜯어봤더니 특이점이 온 게 한 두 개가 아니라고 했다. 소비자들은 가격에 그렇게 민감하면서 쿠팡은 최저가가 아니더라도 구매한다.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장문의 리뷰와 다양한 제품 사진을 올린다. 사람들은 쿠팡의 빠르고 다양한 서비스에 매료되어 팬이 되었다. 정확히 57분 전에 전선정리 클립을 주문한 나도 팬클럽에 지분이 조금은 있는 것 같다. 자꾸자꾸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것도 사고 싶어 진다. 빨리빨리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구독 서비스는 내 통장을 구독한다

볼 것은 많지만 볼 것이 없는 넷플릭스와 해리포터 시리즈를 들고 나온 왓챠, 티빙과 웨이브, 벅스뮤직, 유튜브 프리미엄까지 완벽한 구독 경제의 노예는 누구인가? 정답! 김막삼입니다! 실제로 내가 구독하고 있는 서비스들이다. 한 달에 6-7만 원 정도의 지출을 차지하고 있는데 오늘 퍼블리까지 멤버십 결제를 했으니 금액이 더 늘어났다. 


물론 집에는 TV가 있다. 셋톱박스에 초록불 켜진지 꽤 오래되었지만. 일에 치여 살다 보니 본방을 챙겨볼 수 없는 상황들이 늘어났고, 처음엔 티빙과 웨이브, 음원 서비스 정도만 이용했었다. 실제로 지금도 저 3가지를 가장 많이 쓰고 있다. 넷플릭스와 왓챠는 친구들과 나눠 쓸 수 있도록 가장 비싼 요금제를 선택했다. 친구들은 재미있는 콘텐츠를 잘 찾아서 꼬박꼬박 챙겨보는 반면에 나는 무언가 보는 행위조차 일하는 것 같아서 넷플릭스에 접속한 지 꽤 오래되었다.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돈은 내가 내고 있는 샘. 울컥 화가 났지만 몇 천 원쯤이야 하는 생각에 다시 가라앉는다. 아마 찾아보면 더 많은 정기결제 건들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해충 방역 서비스도 한 달에 2만 원씩 내고 있다. 최근에는 무료 뉴스레터가 정말 잘 나와서 아침마다 이메일 확인하면서 공짜 구독 중인데 대학내일에서 발행하는 캐릿, NHN AD에서 출시한 오픈애즈 등 음악, 도서, 음식, 자아성찰 등 그 카테고리도 참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나는 정기결제 해지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수집에 가까운 구독하는 중.


그밖에도 김막삼 재질의 막 쓰는 돈지랄은 다양하다. 새벽에 쇼핑하는 바람에 양말 10개 세트를 10개 주문하지를 않나, 당장 해 먹을 것도 아니면서 로켓프레시를 들락거리면서 요리 재료를 쌓아두고 썩혀서 버리지를 않나, 화장품 욕심은 또 있어서 립스틱은 한 바구니를 모아 두고 정작 쓰는 것은 한 두 개뿐이다.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보면 나처럼 소비지향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데 그들과 견주었을 때 뒤지지 않는 편이다. 이렇게까지 써봤냐며 으시대는 대화를 나눌 때 잠깐 자부심이 생겼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아할 게 아니라서 코웃음이 나고, 등줄기에 오한이 들기도 한다. 


대신 나는 내 주제를 벗어난 소비를 하지는 않는다. 말도 안 되게 비싼 명품 가방을 몇십 개월 할부로 산다거나 수백만 원짜리를 캠핑 텐트를 산다거나. 주제를 벗어나 할부 인생에 들어선 순간 다 갚을 때까지 몇 달이고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버는 족족 쓰는 인생이 결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일을 하지 않을 순간을 대비해서 돈을 모으고는 있지만 오늘의 자질구레한 행복을 꾸역꾸역 참고 내일을 준비하고 싶지는 않다. 내 행복은 몇 천 원짜리 고양이 빗에서 오기도 하고, 몇 만 원짜리 가습기에서 오기도 한다. 오늘의 행복을 가랑이 찢어지게 즐기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그러니 오늘 밤도 나에게 어울리는 가디건을 찾아 떠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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