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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Jan 21. 2024

선생님 귤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연필과 편지 _ 뀨우울, 뀰, 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또 접니다. 책의 색감이 좋아서, 요리하기를 좋아해 선생님의 책 <오늘 이 계절을 사랑해!> 를 구매해 놓고, 때마다 선생님은 알 리 없는 편지를 쓰고 있자니 조금 머쓱해지지만, 제가 누굽니까? 여름 수박에 대해 쓸 때는 누군가 내 머리를 깨물어줬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며 편지글을 적어 내려갔고, 수박 11 Brix가 어쩌고 하며 난데없이 가이드 대로 과일을 골라도 꽝손인 저 같은 사람을 위한 '틀림없이 맛있는 수박, 일타 수박, 족집게 수박' 등등 다음 책에서 꼭 부탁드린다고 썼습니다.


육수 쏟는 여름에는 끈적하고 후끈한 열기와 미동 없는 바람 속 '딱복'을 그다음 여름에도 기억하고 싶다고 아직 오지 않은 24년 여름 딱복을 은근슬쩍 인생 먹킷리스트 반열에 올려두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썼지만, 저는 여름을 무척 싫어합니다. 만약 여름을 좋아하게 된다면, 딱복 때문이겠죠? 그리고 육식파인 제게 제철 과일이라는 신세계를 알려준 선생님 덕분이기도 할 겁니다.


선생님, 제가 좋아하는 제철 과일의 대명사는 귤입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귤을 사랑해 왔어요. 그 사랑은 너무나 순고한 것이라 배신한 적이 없었는데, 제주 남원읍을 여행하던 중 화장실이 급해 들어간 위미농협에서 낱개씩 포장해 팔던 한라봉을 맛본 이후로 코가 없는 애나, 코가 큰 애나 제 마음을 휘어잡는 실력이 카사노바를 만나봤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적절한 비유냐고 되묻진 말아 주세요. 저도... 난감하니까요. ⚆_⚆;


선생님 저는 겨울을 좋아합니다. 손에 닿으면 사르르 녹지만, 손바닥 위의 눈의 결에서 갖 쪄낸 감자의 포슬함이 느껴져서요. 어쩐지 입에 넣으면 감자맛이 날 것 같습니다. 하늘에서 감자가 하늘하늘 내려와 아니 뽀얀 것이 하늘하늘 내려와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드는 겨울 리미티드 눈을 귤만큼이나 좋아합니다. 빙판길을 아장아장 걷는 것도, 냉혈한인(지긋지긋한 수족냉증) 저의 손을 누구도 잡아 주지 않지만, 핫팩만큼은 저에게 온기를 나눠주니, 춥고 차갑다고 해서 겨울을 싫어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그 냉함 때문에 사람들은 따뜻한 것을 찾고, 따뜻해질 준비를 하지요. 지근거리에 속을 덥혀주는 먹거리는 또 어떤가요? 부드러운 팥소가 들어간 넓적한 눈뭉치 호빵, 핫팩급 뜨거운 기운을 급속 충전할 수 있는 어묵 국물, 붕세권이란 말과 어플까지 세력 확장을 해나가는 크기도 맛도 다양한 붕어빵까지. 이렇게 매력적인 겨울이라니, 기다리지 않을 수 없고 가는 것을 아쉬워할 수밖에요. 그중 제일은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 비스듬히 누워 손톱이 노랗게 질리도록 까먹는 귤인데요. 선생님 책에 제가 좋아하는 귤 이야기가 없어 오늘 편지글은 조금 많이 서운한 상태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독자가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시겠지만 이런 이상한 애가 진짜로 있습니다. 저는 본격적으로 요리책을 활용하기도 전에 '제철과일'에 대한 이야기로 벌써 네 번째 편지글을 적고 있는 겁니다. 차마… 브런치에 공개는 못했지만요…


저는 이번 겨울, 감기로 대차게 앓았습니다. 그때 저의 가까운 동지들로부터 맛있는 귤을 선물로 받았고, 행복에 겨워 엄지와 검지 그 둘의 손톱까지 희생시킴으로써 많은 양의 귤을 해치울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품종의 다양한 귤이 존재하지만 저는 타이벡 감귤을 제일 좋아합니다. 타이벡감귤은 타이벡이라는 하얀천으로 과수원의 바닥을 덮어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빛의 반사를 통해 더 잘 익도록 하는 재배법으로 생산한 귤을 말한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참으로 당도가 높습니다. 한라봉의 경우 열을 가하지 않은 하우스 한라봉을 사먹는데 신맛이 강한 편으로 후숙은 필수인데요. 저는 신맛 자체를 즐기는 편이라 오만상을 쓰면서도 후숙 없이 즐겨 먹고 있습니다. 그 여름날 수박 같은 귤이나 한라봉이 아니라면 신 맛은 정말이지 자신 있거든요. 올해도 귤과 한라봉을 몇 박스째 주문해 먹었고 먹기 좋게 자른 귤을 식품 건조기에 돌려 칩으로 아삭하게 만들어 먹었습니다. 역시 만감류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러니 선생님, 다음 책에는 제가 좋아하는 귤, 혹은 한라봉에 대해 적어주세요. 선생님이 언급하는 귤과 한라봉의 맛을 천천히 복기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다 또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꿈틀거리면 참지 않고 편지글을 써내려 가고 싶어요.


그전에 솜씨 좀 발휘해 보려고 굴 알 아히오와 매생이 오코노미야끼를 주말 메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이 샘솟을 것 같아 벌써부터 제 자신이 질리네요. ¯ࡇ¯ 휴- 그럼, 또다시 편지글을 적게 될 그날까지 건승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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