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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Sep 07. 2023

요리 빠진 요리사의 사진 촬영기

기록은 기어코 기억이 된다_회사


어느 날 회사는 복지의 일환으로 촬영 이벤트를 기획했다. 회사 특성상 연령대도 직급도 다양해 입사 연차가 길수록 사진은 예스럽게 앳된 모습이었고, 짧을수록 SNS급 빈번한 교체와 후보정에 빛나는 조직도 미남, 미녀들이 실체 없이 존재하곤 했는데,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못한 나는 조직도 사진만 믿었다가, 실물이 달라도 너무 달라 못 알아봤다는 팀장, 파트장님들의 면담 후기를 왕왕 들었고, 페이스오프 급 사진을 찍어 온 후배들 사이에서 눈치 없이 "이건 사기야" 했다가 "조요-옹"이란 말을 듣는 깍두기였다.

‘계절감이 느껴지지 않는 하얀 셔츠 권장' 나름의 유연한 지침과 함께 개별 일정에 맞는 촬영이 시작되었다. 종종 음모론자이길 즐기는 나는 "왜 때문에 복장을 맞추려 할까? 회사는 하얀 셔츠로 우릴 통일화해, 붕어빵처럼 찍어 내고 싶은 게 아닐까?" 가만 듣고 있던 동생이 "파트장님, 이 언니 또 이상한 말해요."를 함으로써 가뜩이나 싱거운 나의 음모론을 무력화시켰다. 반항은 아니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기에 촬영이 있던 날 검은색 셔츠를 골라 입었다. 셔츠라곤 하지만 단추 네 개가 목 주변부에 있어 티셔츠처럼 머리를 넣어 입어야 하는 나름 귀여운 옷이었는데, 후에 나는 이 셔츠가 불러일으킬 파장을 생각지 못하고, 나만의 드레스코드에 만족하고 있었다. 예약한 회의실에 도착했을 땐, 먼저 온 사람들이 사진가 선생님의 주문에 따라 이 자세, 저 자세로 분주했고, 오도카니 앉아 나의 미래가 될 그들의 현재를 보고 있자니,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요동치며 모든 소리가 아득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윽고 호명된 이름 앞에서 얼음이 되고 말았지만, 서둘러 땡처리를 해버린 작가 선생님의 손짓에, 의자에 앉자마자. 연이어 터지는 플래시와 '우르르 까꿍 여기 보세요~ 급 리액션'에 얼굴이 마비될 지경이었는데, 자꾸만 웃으란 강요 아닌 강요에 개미만 한 목소리로 "저어.. 선생님 제가 더... 덧니가 있쒀엉어흑흥." 선생님은 자기만 믿으라며 마치 치열 교정이라도 해줄 기세로 손으로는 '딱딱' 경쾌한 소리를 만들어 자꾸만 삐딱해지는 내 고개와 어깨를 오뚝이처럼 세웠고, 반짝반짝 쉴 새 없이 플래시를 터트리는 동시에 “여기 봐요”, “웃어요”, ”이러면 영원히 찍어요. “, “지금 좋아요.", "그거예요" 같은 말들로 내 혼과 입을 찢는 원 펀치 쓰리급 멀티태스킹을 선보였다.


돌아온 나를 향한 팀원들의 후기 요청에 "뭐랄까? 그때 나는 돌잔치 아기 같았어."를 남겼는데,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하나같이 키득키득 웃었지만, 그들은 내가 선택한 건물 회의실을 단결한 듯 고르지 않는 결연함을 보였다. 우리들은 차근차근 저마다의 에피소드를 간직한 채 촬영을 마쳤고, 후에 1~2차례 수정 사항을 적는 것으로 조직도 최종본 사진을 받을 수 있었는데, 각자 사진을 받고도 부끄러워 보여 주지 않고 이리저리 빼다가 사내 인트라넷에 조직도 사진이 걸리던 날, 서로의 사진을 보며 빵빵 터졌다.

낯빛 어두워 보이는 동료 (마치 다크서클을 그려 넣은 듯), 중국 부자처럼 보이는 동생 (얼굴에 누가 구두 광을 냈어?), 웃어서 밝아 보이는데 주름 주름진 상사의 얼굴 (너지? 내 주름 원인!), 호빵맨처럼 빈틈없이 얼굴 빵빵한 상사 (굴곡 없어, 치명적인 빵 그 자체), 덧니를 뽐내며 웃고 있는 일 등급 요리사 (검은 셔츠는 나를 명인으로 만들기에 손색없어 보였다.) 나는 그런 우리들이 각양각색 오합지졸 꾸러미 세트 같아 보였다.


분명 귀여웠던 셔츠는 45도 각도의 어머니들의 흔한 단체 사진의 포즈와 똑 단발머리 스타일을 만나 요리를 꽤 하는 인물처럼 보이게 했다. 붕어빵이 되든 말든 하얀색 셔츠를 입을 걸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 셔츠를 입고도 중국 부자가 된 동생을 보고 요리사인 내가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물론 그 가운데서도 서로가 서로를 못났다고 했지만, 우리의 그것은 도토리 키재기만큼 쓸모없는 시간 낭비였다. 사진이 맘에 안 들었던 동료들은 하나둘 다른 스튜디오 문을 두드렸고, 기운 빠지는 그 일을 또 할 수 없던 나는 끝내 요리사로 남기로 했는데, 언젠가 집에 놀러 온 조카가 조직도 데칼코마니 사원증을 보더니 이런 감상평을 남겼다. “와 이모 자본주의 미소 절엇!" (조카야 고맙다 날 요리사로 보지 않은 건 네가 처음이야!) 어쩌면 사진의 운명이란, 실제의 나보다 더 잘 나와야 나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 같다고 씁쓸하고 있을 법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회사는 우리를 붕어빵이 아닌 오징어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물론 음모론적으로) ʘ̥_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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