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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Sep 08. 2023

고요함을 배우고 한가로움을 훔치는 요즘

기록은 기어코 기억이 된다_새김질


그때 나는 신사동에서 망원까지 흘러 흘러 오랫동안 배웠던 캘리그래피를 그만둔 직후였다. 쓰다만 종이를 찢고, 붓을 던지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몰두했던 것을 한순간에 놓아버리니 머리는 자유를 외쳤지만, 일상은 맹숭맹숭해졌고 손이 심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좀이 쑤셔왔을 때 유와 함께 종로구 어느 오피스텔에 있다는 선생님을 찾아가 전각이라고도 불리는 새김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한 일이지, 캘리그래피를 전시할 때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전각을 글씨 사이에 지그시 눌러 작품에 마침표를 찍더니, 글씨를 그만두고 나서야 다시 쓰일 리 없는 새김질을 시작하였다는 것이 물색없는 내 인생과 닮아 있는 것만 같아 종종 씁쓸해지곤 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펼치고 또 펼쳐봐도 낯설기가 이를 데 없는 한자들이 나를 향해 정색할 때마다 조각도를 내려두고 소주나 한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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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 4번 출구 나지막한 운현궁 돌담길을 타박타박 걸어 운현초등학교를 끼고 샛길 골목으로부터 오 분 정도만 걸으면 11층짜리 **오피스텔 801호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자를 찾기 위해 부수를 기록하고 사전을 찾는 어려운 일을 했다. 하나의 전각이 완성되려면 子法(자법)이라 불리는 글을 찾고, 설계 구도를 잡는 章法(장법)으로 방향 잡는데 이때 한자를 거의 그리다시피 옮겨 적었다. 완성된 디자인을 스캔, 레이저 토너로 출력한 종이로 뽑아 전사 잉크로 새김질할 돌에 입히면 되는데 다소 번거로워 보여도 실전에 맞닥뜨려 刀法(도법)에 이르면 눈치 없는 곰손이 날카로운 조각도에 과몰입해, 전에 없던 수전증이란 불청객까지 불러들여 대환장 스크래치 파티가 열린다. 힘 조절 실패로 손을 다쳐 피가 나는 것보다 사포로 문질러 그때까지 했던 모든 새김질을 흔적도 없이 갈아엎고 돌을 다듬는 治石(치석)을 반복하다 보면 신을 기만한 죄로 계속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렸던 시시포스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시시포스 나쁘기라도 했지. 나는 왜 여기서 이런 고생을 돈을 주고 하는 것인지 나를 볶아치는 것이 나의 운명인 것 같아 께름칙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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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같이 흐르던 네 시간의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통인시장 반대편에 있는 적선 술집에 들러 마늘종과 당근을 넣어 둘둘만 돼지고기 야채 말이를 매콤한 특제소스에 찍어 먹고 곁들여 나온 부추무침이나 포항에서 당일 새벽에 도착했다던 골뱅이 데침에 따뜻한 정종을 잔술로 마시거나 취하기 싫은 날에는 클라우드 맥주를 마셨는데, 우리가 비운 클라우드가 네 병이 넘어갈 즈음에는 언제나처럼 유가 "사장님 클라리넷 한 병 더요"를 너무 당당히 외치는 바람에 처음 몇 번은 웃다가 나중에는 "클라우드" 하고 말할 때의 취기 없이 정신 맑은 첫 잔이 어색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맥주를 마셔도 너무 많이 마셨기에 취하지 않은 채 적선 술집 문턱을 나선 적이 없을 정도로 술을 좋아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정말 취하고 싶지 않았던 날에는 누하동에 바르셀로나에서 이름도 낯선 에일 맥주를 마셨고 가벼운 야채 스틱이나,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감바스 오일에 치아바타를 찍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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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부족하지만, 성실히 통통한 단풍잎을, 우영우도 나도 좋아하는 돌고래를, 눈이 찢어진 하마와 어리숙해 보이는 펭귄과 다리가 긴 개를, 스크래치 많은 지금의 대한민국과 내 이름과 얼굴을, 조금 더 실력이 늘었을 때는 연필 스탠드와 명함꽂이, 캔들 홀더를 子法(자법), 章法(장법), 刀法(도법), 治石(치석)을 반복하며 한자와 한글을 새겨 남겼다. 경기 외곽 시화는 진달래, 시목은 소나무, 시조는 까치인 소도시에 살며 주말이 되면 계속해 서울의 중심부에 닿기를 원했던 그 시절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가 좋아하던 경복궁, 누하동 단골 술집들도, 크고 작은 커피숍과 밥집마저 하나같이 문을 닫았고, 은둔 고수처럼 지낼 것 같던 전각 선생님도 이사를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뭐다 좋아하던 동네는 골목 어귀부터 낯선 냄새를 풍기고, 너무나 가까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진 유와, 발악하던 정서의 가장자리에서 나를 든든히 받쳐주던 모든 것들이 아스라이 사라지고 동경하던 서울 아닌, 내 집 방 안에 홀로 남아 가사 없이 고요한 연주곡에 글을 쓰는 지금의 내가 조금은 쓸쓸해져서 다 식은 커피를 홀짝이다 찾아낸 習靜偸閑(습정투한) 무른돌에 상형 한자로 새겨 넣었던 그 뜻은 '고요함을 배우고 한가로움을 훔친다.' 아마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때를 돌아보며 글을 쓰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고요히. 나와 나누는 나의 시간이 많아진 날들에 등불이 되어주겠다는 의미로도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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