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합상표 복수 요부, 대법원 2024도8174 판결
화장품 브랜드명에 여러 단어를 길게 나열했는데, 그중 단 하나의 단어가 타인의 등록상표와 같다면 상표권침해가 될 수 있다. 대법원 2024도8174 판결이 그 답이다.
2018년, 한 화장품 회사가 '누디즘 NUDISM'이라는 상표를 립스틱·마스카라 등 화장품류(제03류)로 등록했다. 이후 2020년 2~3월, 다른 화장품 제조판매업 법인의 대표이사(피고인 1)가 11번가 등 오픈마켓에서 립스틱을 판매하면서 'CATALIC Narcisse Nudism Holic Matte Lipstick'이라는 이름을 광고에 사용했다.
피고인 법인이 사용한 상표는 단순히 단어 6개를 한 줄에 나열한 것이 아니었다. 광고에서 이 브랜드명은 4단의 행으로 분리되어 표시됐다. 첫 번째 행에 'Narcisse', 두 번째 행에 'Nudism Holic', 세 번째 행에 'Matte Lipstick', 네 번째 행에 'CATALIC'을 각각 배치했다. 각 줄이 독립된 블록처럼 보이는 방식이었다. 이 광고 표시 방식이 나중에 대법원 판단의 핵심 근거 중 하나가 됐다.
등록상표 권리자는 이를 발견하고 형사고소에 나섰다. 상표법 제230조는 상표권침해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235조 양벌규정은 법인에게도 3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민사 분쟁이 아닌 형사 사건이었다. 피고인 1(대표이사 개인)과 피고인 2(법인)가 모두 기소됐다.
1심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23노607)은 무죄로 뒤집었다. 항소심의 판단은 이랬다. 사용상표 전체인 'CATALIC Narcisse Nudism Holic Matte Lipstick' 중에서 요부(要部), 즉 소비자의 인상에 남는 핵심 부분은 'CATALIC' 하나뿐이다. 대문자로 강조 표기되어 있고 조어(만들어낸 단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항소심의 논거였다. 'CATALIC'을 등록상표 '누디즘 NUDISM'과 비교하면 외관·호칭·관념이 모두 다르니 유사하지 않다는 결론이었다. 결국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1심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2025. 11. 20. 이 판단을 정면으로 뒤집고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먼저 사용상표를 구성하는 6개 단어를 하나씩 분석했다.
CATALIC: 특별한 뜻 없는 조어. 화장품의 품질·효능을 직감하게 하지 않는다 → 식별력 있음
Narcisse: 프랑스어로 수선화, 또는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 화장품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가 아니다 → 식별력 있음
Nudism: 나체주의를 뜻하는 영어. 립스틱의 성질을 직감하게 하지 않는다 → 식별력 있음
Holic: 접미사(~중독자). 앞의 Nudism을 강조하는 기능에 그침 → 식별력 미약
Matte: 립스틱의 질감(광택 없음)을 직접 나타냄 → 식별력 없음
Lipstick: 상품 자체의 보통명칭 → 식별력 없음
결론은 명확했다. CATALIC, Narcisse, Nudism 세 부분이 각각 독립적인 식별력을 가지므로, 셋 모두 요부에 해당한다. 항소심처럼 CATALIC 하나만 요부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CATALIC' 부분이 대문자로 표기되어 있다는 등의 사정만으로는 'Narcisse' 부분이나 'Nudism' 부분이 있음에도 오직 'CATALIC' 부분만이 일반 수요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게 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대법원 2024도8174)
이 판결에서 가장 정교한 판단이 바로 'Nude'와 'Nudism'의 식별력 구분이다.
색조 화장품 분야에서 '누드(Nude)'는 피부색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색상을 뜻하는 기술적 표현으로 오래전부터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누드 립스틱', '누드 톤 파운데이션' 같은 표현이 그렇다. 이 경우 Nude는 상품의 성질을 직감하게 하므로 식별력이 낮다.
그런데 대법원은 Nudism은 별개의 단어라고 봤다. '나체주의'라는 의미의 영어로,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니고 일반 소비자가 그 의미를 쉽게 떠올리기 어려우며, 립스틱의 품질·효능·용도를 직감하게 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어근이 같더라도 파생어는 별도로 식별력을 따져야 한다는 뜻이다.
피고인 법인은 립스틱 광고에서 사용상표를 이렇게 표시했다.
1행: Narcisse
2행: Nudism Holic
3행: Matte Lipstick
4행: CATALIC
각 단어를 별도 행으로 분리했다는 사실이 대법원 판단에서 중요한 근거가 됐다. 각 구성 부분이 하나의 일체로서만 기능하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식별표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 광고 방식이 요부 판단에 영향을 미친 사례다.
대법원은 사용상표의 요부 중 하나인 'Nudism'을 등록상표 '누디즘 NUDISM'과 비교했다. 영문 철자가 동일하여 외관이 유사하고, 호칭이 모두 '누디즘'으로 동일하다. 지정·사용 상품도 같은 립스틱이다. 상표 유사 및 상품 동일로 상표권침해가 성립한다.
많은 기업이 "전체 브랜드명이 기존 상표와 다르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의 피고인도 그랬을 것이다. 대법원은 그 논리를 거부했다. 결합상표에 식별력 있는 단어가 여러 개 포함되면, 각각이 요부가 된다. 요부 중 하나라도 등록상표와 유사하면 침해가 성립한다.
브랜드명 출시 전, 전체 상표 검색뿐 아니라 구성 단어 하나하나에 대한 개별 상표 검색이 필수다.
항소심은 CATALIC이 대문자로 강조 표기되어 있다는 점을 요부 판단의 핵심 근거로 삼았다. 대법원은 그 논리를 배척했다. 상표 유사 판단에서는 외관뿐 아니라 호칭이 중요하며, 시각적 강조만으로 특정 부분만을 요부라고 단정할 수 없다. 디자인으로 요부를 조종하려는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오픈마켓 상품 페이지의 광고 문구, 상품명도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한다. 권리자가 이를 발견하면 형사고소가 가능하다. 이 사건처럼 대표이사 개인과 법인이 함께 기소될 수 있고, 법인은 최대 3억 원의 벌금 위험을 안게 된다. 화장품·뷰티처럼 브랜드 이미지가 매출에 직결되는 분야에서는 권리자가 형사적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브랜드 론칭 전 변리사에게 침해 리스크 검토를 의뢰하는 것이 그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이 제시한 또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다. 'Nude'가 색조 화장품에서 기술적 표현으로 식별력이 낮다고 해서, 'Nudism'까지 동일하게 볼 수 없다. 파생어, 합성어, 변형어는 원래 단어와 별개로 식별력을 평가받는다. 브랜드명을 구성할 때 "이 단어의 어근은 흔한 표현이니까"라는 가정은 위험하다. 반대로, 권리자 입장에서는 기술적 표현의 파생어라도 적극적으로 상표등록을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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