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 디자인도 보호받는다

대법원이 밝힌 '대체 형상 존재 여부' 기준

by 여인재 변리사

기능과 관련된 형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디자인 유사 판단에서 그 중요도를 낮출 수는 없다. 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후1710 판결은, 동일한 기능을 달성할 수 있는 대체 형상이 존재하는 경우 해당 형상은 기능에 불가결하지 않으므로 유사 판단에서 정당한 비중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기준을 명확히 하였다.


사건 배경 — 화물차량용 공구함의 등록무효 다툼

주식회사 대륜캐리어테크는 경쟁사가 보유한 '화물차량용 공구함' 등록디자인이 선행디자인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하였다. 심판과 특허법원(2016허2010)에서 모두 등록무효 판단이 내려지자, 등록디자인권자는 "공통 형상은 기능적 형상이므로 유사 판단에서 중요도를 낮춰야 한다"며 대법원까지 다투었다.

양 디자인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명확하였다. 좌측 상부 직육면체 절개홈, 전면 여닫이문의 좌측 상부 45도 절삭, 몸체 상단 우측 경사면, 우측면 반구형 요입홈, 배면 하향 경사면, 배면 중앙 수직 요입홈 — 이 여섯 가지 구조적 특징이 완전히 일치하였다. 차이는 몸체부 및 여닫이문 표면의 무늬가 한쪽은 양각, 다른 한쪽은 음각으로 형성된 점뿐이었다.

---

대법원의 판단 — 두 개념의 엄격한 구별

'기능 관련 형상'과 '기능 불가결 형상'은 다르다

대법원은 기존 법리를 먼저 확인하였다. 양 디자인의 공통 부분이 물품의 기능을 확보하는 데에 불가결한 형상인 경우에는 중요도를 낮게 평가해야 하므로, 그 부분이 유사하다는 사정만으로 전체 디자인이 유사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결정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물품의 기능을 확보할 수 있는 선택 가능한 대체 형상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물품의 기능을 확보하는 데에 불가결한 형상이 아니므로, 이 경우 단순히 기능과 관련된 형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디자인의 유사 여부 판단에 있어서 그 중요도를 낮게 평가하여서는 아니 된다."

— 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후1710 판결


기능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과 기능 확보에 '불가결'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 구별이 사건의 승패를 갈랐다.


참신한 공통 형상 — 수요자가 주목하는 지배적 특징

대법원은 양 디자인의 공통 부분이 "종래 화물차량용 공구함 디자인에서는 흔히 찾아보기 어려운 참신한 형상"이라고 판단하였다. 참신한 형상일수록 수요자의 주의를 끌기 쉬운 지배적 특징으로 작용하며, 유사 판단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양각과 음각이라는 무늬의 차이는 이러한 지배적 특징의 유사성을 상쇄할 정도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두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심미감이 유사하여 무효라는 판단이 확정되었다.

registered_design_등록디자인.png
prior_design_선행디자인.png
등록디자인과, 확인대상디자인


산업용 제품에도 심미감 기반 판단이 그대로 적용된다

피고는 화물차량에 장착 후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주장하였다.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산업용 공구함이라 하더라도 거래 시 수요자는 물품 전체의 외관에 의한 심미감을 고려하여 거래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실무 시사점 — 디자인 분쟁에서 달라지는 공격·방어 전략

(1) 기능적 형상 항변은 '대체 형상 부존재'까지 입증해야 한다

기능적 형상이라는 주장만으로는 유사 판단의 중요도를 낮출 수 없다. 해당 형상 외에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다른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입증 부담은 기능적 형상이라고 주장하는 측이 진다.

실무적으로, 대체 형상의 부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제품 설계 과정에서 검토한 대안 형상의 기술적 한계, 관련 기술 문헌, 동종 업계의 실제 제품 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여야 설득력을 갖출 수 있다. 반대로, 디자인권자 측에서는 공통 형상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 사례를 선제적으로 제출함으로써, 해당 형상이 기능 불가결이 아님을 드러낼 수 있다. 공격과 방어 모두에서 대체 형상의 존재 여부는 핵심 쟁점이 된다.


(2) 공통 형상의 '참신성' 입증이 승패를 가른다

공통 형상이 종래 디자인에서 흔한 형상이라면 — 설령 기능 불가결이 아니더라도 — 수요자의 주의를 끌기 어려운 부분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반대로 참신한 형상일수록 수요자가 주목하는 지배적 특징으로 인정되어 유사 판단에서 비중이 커진다.

따라서 분쟁 초기에 공통 형상이 선행 디자인에서 얼마나 흔히 사용된 형상인지를 조사하는 것이 전략의 출발점이 된다. 공통 형상의 선행 사례가 많다면 "이미 공지된 흔한 형상이므로 수요자의 주의를 끌기 어렵다"고 주장할 수 있고, 선행 사례가 희소하다면 "참신한 형상이므로 지배적 특징에 해당한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이 조사 결과가 전략의 방향을 결정한다.

(3) 디자인 등록 전 선행조사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본 사건의 등록디자인은 선행디자인과 6가지 구조적 특징을 공유하면서 여닫이문 표면 무늬에서만 달랐다. 대법원은 이 정도의 차이는 지배적 특징의 유사성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외관 전체가 다른 선행디자인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는 안전한 등록이 보장되지 않는다.

출원 전 선행디자인 조사 시에는, 공통될 수 있는 형상이 지배적 특징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차이점만으로 상이한 심미감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심미감의 차이가 무늬 위치·양식의 미세한 변형에 그친다면, 등록 이후 분쟁에서 불리한 결과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4) 디자인보호법 제34조와의 법리적 일관성

디자인보호법 제34조 제4호는 기능 불가결 형상만으로 된 디자인은 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독점적 디자인권이 기능적 형상을 독점하는 결과를 막기 위한 것이다.

본 판결은 등록 후 유사 판단에서의 중요도 평가도 동일한 기준 — 대체 형상의 존재 여부 — 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등록 단계와 분쟁 단계 모두에서 일관된 법리가 작동한다는 점에서 실무적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다. 출원 단계에서 대체 형상이 존재함을 인식한 상태로 등록을 받았다면, 이후 분쟁에서 기능 불가결 항변을 펼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관련 판결 전문은 대법원 종합법률정보(glaw.scourt.go.kr)에서 사건번호 2016후1710으로 직접 조회할 수 있다.

---

디자인 권리범위 분쟁에서 기능적 형상 항변이 왜 실패하는지, 그리고 어떤 입증 전략이 필요한지에 대한 전체 분석은 아래 원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능 관련 디자인도 보호받는다 — 대법원이 제시한 '대체 형상 존재 여부' 기준의 실무적 의미

작가의 이전글비슷한 식품용기, 왜 침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