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O vs LEGOCHEMPHARMA — 식별력 손상 무효 판결
완구가 아닌 의약품 분야에 등록한 상표도 LEGO라는 이름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상품 분야가 전혀 달라도 저명상표의 '식별력'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으면 등록이 취소됩니다. 대법원 2020후11943 판결이 확인한 원칙입니다.
상표 실무에서 오해가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지정상품이 다르면 저명상표와 충돌해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LEGO는 완구 브랜드이니, 의약품 상표에 LEGO를 넣어도 소비자가 혼동할 리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는 두 가지 경우를 나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국내 또는 외국의 수요자들에게 현저하게 인식되어 있는 타인의 상품이나 영업과 혼동을 일으키게 하거나 그 식별력 또는 명성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는 상표"
'혼동'과 '식별력 손상'은 별개의 독립된 요건입니다. 혼동이 없어도 식별력 손상만으로 무효가 됩니다. 이 사건이 바로 그 경우였습니다.
소비자가 'LEGO'라는 단어를 보면 자동으로 덴마크 완구회사를 떠올립니다. 이것이 상표의 '단일한 출처 표시 기능'입니다. 그런데 LEGO가 포함된 다른 상표들이 의약품, 식품, 의류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면, 소비자는 더 이상 'LEGO'라는 단어에서 하나의 출처만을 연상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처럼 저명상표가 가지는 고유한 출처 표시 기능이 약해지는 것을 '희석화(dilution)' 또는 '식별력 손상'이라 부릅니다. 대법원은 이를 저명상표에 화체된 고객흡인력과 재산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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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구도는 간단합니다.
원고 레고 쥬리스 에이/에스는 1934년부터 LEGO 상표를 사용해온 덴마크 완구기업입니다. 국내에서도 1985년부터 30년 이상 영업하였고, 대법원 98후1877 판결에서 이미 저명성을 인정받은 브랜드입니다.
피고 주식회사 레고켐 바이오사이언스(현 리가켐 바이오사이언스)는 신약 연구개발 전문기업입니다. 피고는 자사의 합성기법인 'Lego chemistry'에서 사명을 따왔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허심판원(2018당4003, 2020. 2. 17.)은 레고 측의 무효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논거는 명확했습니다. 완구류와 의약품류 사이에는 경제적 견련성이 없으므로, 소비자가 출처를 혼동할 우려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판단 자체는 틀리지 않습니다. 완구와 의약품이 같은 출처에서 나온다고 오해하는 소비자는 없습니다. 문제는 청구인이 '혼동'만을 주장했고, '식별력 손상'을 별도로 다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특허법원은 심판원 단계에서 다루지 않은 '식별력 손상' 법리를 새롭게 적용하여 심결을 취소하였습니다. 대법원(2020후11943, 2023. 11. 16.)은 상고를 기각하면서 식별력 손상 판단의 구체적인 기준을 독자적으로 정립하였습니다.
"등록상표가 타인의 저명상표의 식별력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는 상표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① 등록상표와 저명상표의 동일·유사 정도, ② 저명상표의 인지도와 식별력의 정도, ③ 등록상표 출원인이 연상 작용을 의도하였는지 여부, ④ 등록상표와 저명상표 사이에 실제 연상 작용이 발생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은 이 4가지 기준을 실제 사실관계에 적용하였습니다.
LEGOCHEMPHARMA에서 CHEM은 Chemistry·Chemical의 약칭, PHARMA는 Pharmacy·Pharmaceutical의 약칭입니다. 두 부분 모두 의약품이라는 지정상품의 성질·용도를 기술하는 표현이므로 식별력이 없거나 미미합니다. 결국 요부는 LEGO입니다. 선사용상표와 외관, 호칭이 동일하므로 양 상표는 유사합니다.
LEGO·레고는 1934년부터 전 세계에서, 1985년부터 국내에서 30년 이상 사용되었고, 2014년 기준 국내 매출만 1,558억 원에 달합니다. 저명성은 이미 선례로 확립되어 있습니다.
피고는 'Lego chemistry'가 의약합성기법을 의미하는 일반적 학술용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해당 용어가 학술적으로 확립된 일반용어라고 단정할 수 없고, 무엇보다 피고가 저명상표인 LEGO를 포함하는 명칭을 반드시 선택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LEGO' 부분이 수요자에게 인상을 심어주거나 기억·연상을 유발하므로, 실제 연상 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판결은 상표 출원 실무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1) 상품류가 달라도 저명상표 포함 상표는 위험합니다. 완구류와 의약품류처럼 전혀 다른 상품 분야라도 식별력 손상을 이유로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지정상품이 다르니 괜찮다'는 판단은 저명상표에 관해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2) 기술적 표현을 더해도 저명상표 부분이 남습니다. CHEM이나 PHARMA처럼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을 결합해도, 해당 부분의 식별력이 부정되어 저명상표 부분만이 요부로 추출됩니다. 오히려 기술적 표현을 지정상품과 연결하면 식별력 부정이 더 쉬워집니다.
(3) 학술용어·업계관행 항변은 엄격하게 심사됩니다. 해당 용어가 업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확립된 표현임을 증명하고, 그 표현을 반드시 사용해야 할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음을 함께 입증해야 합니다. 특히 저명상표의 식별력이 강할수록 이 입증 부담은 가중됩니다.
(4) 심판원에서 기각되어도 소송은 별개입니다. 이 사건은 심판원에서 기각되었으나 특허법원에서 뒤집혔습니다. 저명상표 보유자라면 심판원 기각에 좌절하지 않고 특허법원까지 적극적으로 다툴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상표를 등록받은 측도, 심판원 승리가 최종 결론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5) 실제 파급력 — 사명 변경까지. 피고 레고켐 바이오사이언스는 이 사건 패소 이후 2024년 3월 주주총회에서 사명을 '리가켐 바이오사이언스'로 변경하였습니다. 코스닥 상장기업이 상표 분쟁 패소로 인해 사명까지 바꾼 사례는, 저명상표 분쟁이 단순한 상표권 문제를 넘어 기업의 브랜드 정체성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유명 브랜드 이름이 포함된 상표를 출원할 때는 상품 분야가 달라도 반드시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 후단(식별력 손상)까지 검토해야 합니다. 출원 전 저명상표 조사에서 이 점을 빠뜨리면, 등록 후 수년이 지나 무효가 확정되고 사명까지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이 판결의 전문 분석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문 분석 보기 → 유명 브랜드 이름 넣은 상표등록, 무효될 수 있다 (LEGO vs 레고켐 사건)
여인재 변리사 | 특허사무소 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