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불비 판단이 심급마다 뒤집힌 이유
특허무효심판에서 기재불비가 인정되는지 여부는, 동일한 특허라도 어느 심급에서 판단받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25. 8. 28. 선고 2024후10108 판결은 특허심판원·특허법원·대법원이 각기 다른 결론을 내린 사례로, 명세서 기재요건의 판단 기준에 관한 실무적 시사점이 큰 사건입니다.
이 사건 특허(제1516353호)는 '신호 데이타베이스를 이용한 시뮬레이터'에 관한 발명입니다. 실제 구동장치(수충격설비, 가스설비 등)를 연결하지 않고도 콘트롤러의 제어 기능을 사전에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소프트웨어·하드웨어가 결합된 컴퓨터 관련 발명입니다.
시스템의 신호 흐름을 간단히 정리하면, 컴퓨터(10)가 가상의 파형신호를 생성 → 시뮬레이터(20)가 이를 입력값②으로 변환해 콘트롤러(30)에 전달 → 콘트롤러(30)가 예상 출력신호에 대응하는 조절값⑤를 시뮬레이터에 돌려보냄 → 시뮬레이터가 조절값⑤와 입력값②을 비교하여 콘트롤러의 정상 동작 여부를 검증하는 구조입니다.
쟁점은 바로 이 "조절값"의 기술적 의미와 "조절값이 입력값과 동일하도록 피드백 제어"한다는 구성이 명세서에 충분히 기재되어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특허심판원은 무효심판 청구를 기각하며 기재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핵심 논리는 세 가지였습니다.
(1) 조절값⑤은 콘트롤러에서 시뮬레이터로 전달되는 신호의 일종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명세서에 일부 미흡한 기재가 있더라도 동작원리를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3) 기술적 특징이 아닌 부분까지 상세하게 기재할 필요는 없다.
특허심판원은 '통상의 기술자가 과도한 실험이나 특수한 지식 없이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였습니다. 또한 진보성 판단에서도 "피드백 제어" 구성이 비교대상발명들로부터 도출될 수 없다며 진보성을 인정하였습니다.
특허법원은 특허심판원의 판단을 뒤집고 등록무효를 선고하였습니다. 특허법 제42조 제4항 제2호(청구범위 명확성)와 제3항 제1호(실시가능 요건)를 모두 위반하였다고 보았습니다.
"청구범위에 불명료한 기재가 포함되어 있어 통상의 기술자가 발명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고, 발명에 관한 설명이 통상의 기술자가 쉽게 실시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다."
특허법원은 "조절값"이라는 용어 자체의 정의가 명세서에서 불충분하고, "피드백 제어"의 구체적 방법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개별적으로 지적하며 기재불비를 인정하였습니다.
대법원은 특허법원에 "명세서 기재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하며 파기환송하였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판단 방법론: 종합적 고찰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발명에 관한 설명이나 도면 등의 기재와 출원 당시의 기술상식을 고려하여, 청구범위에 적혀 있는 사항으로부터 특허를 받고자 하는 발명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지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9다277751 판결 참조)
(2) 조절값의 기술적 의미
대법원은 조절값⑤을 "콘트롤러가 구동장치에 제어신호를 보냈을 때 그 구동장치가 출력할 것으로 예상되는 출력신호에 대응하는 전류값과 전압값"이라고 명확히 해석하였습니다. 콘트롤러가 "적절한 알고리즘 등을 통하여 미리 예상할 수 있고, 또 그 출력신호에 대응되는 전류값과 전압값을 적절한 방법으로 설정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3) 피드백 제어 구성의 의미
시뮬레이터(20)가 조절값⑤과 입력값②을 비교하여, 동일하면 콘트롤러의 정상 동작을 확인하고, 동일하지 않으면 이상 동작으로 확인한 후 두 값이 동일해지도록 피드백 제어를 수행하는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4) 결론
"통상의 기술자라면 이 사건 제1항 발명의 출원 당시 기술상식을 고려하여 기술적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실시하는 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세 심급의 판단 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특허법원은 "조절값"의 정의와 "피드백 제어"의 구체적 방법을 개별적으로 분리하여 각각 불충분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반면 대법원은 발명의 기술적 과제(콘트롤러의 정상 동작 검증)와 해결수단(신호 데이타베이스 기반 시뮬레이션 및 비교 검증), 명세서의 도면과 설명 전체를 종합하여 통상의 기술자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이 차이는 컴퓨터 관련 발명·BM발명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소프트웨어적 처리 과정이나 알고리즘은 개별 용어 단위로 분리하여 보면 불명확해 보이기 쉽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에도 발명의 기술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1) 기재불비 무효 공격 측: 개별 용어의 불명확성만을 지적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발명 전체의 맥락에서도 통상의 기술자가 해당 발명을 파악하거나 실시할 수 없다는 점까지 논증하여야 합니다.
(2) 특허권자 측: 개별 용어가 다소 불명확하더라도 발명 전체의 기술적 맥락과 출원 당시 기술상식을 종합하면 통상의 기술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3) 명세서 작성 단계: 모든 용어와 알고리즘을 빠짐없이 기재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발명의 기술적 과제와 해결수단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기재하되, 주요 용어는 발명 전체 맥락에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설명을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4) 심급별 불확실성: 이 사건처럼 특허심판원(부정) → 특허법원(인정) → 대법원(부정)으로 결론이 엇갈릴 수 있습니다. 중간 심급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었더라도 이후 반전 가능성을, 불리한 결과를 받았더라도 상급심 법리 적용의 변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또한 이 사건은 파기환송 판결이므로 환송심의 최종 결론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기재불비 판단의 쟁점, 컴퓨터 관련 발명의 명세서 전략, 심급별 전략 수립에 관하여 더 자세한 분석은 아래 원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특허무효심판 기재불비, 심급마다 결론이 달라진 이유 — 대법원 2024후10108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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