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무효심판, 사유 몇 개 주장해야 이길까?

더 많이 주장한 청구인이 가장 많이 졌습니다

by 여인재 변리사


"많이 주장하는 사람이 이긴다." 무효심판에 관한 가장 흔한 통념입니다. 그런데 소담이 특허심판원 심결문 696건을 분석해 보니, 데이터는 정반대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사유를 가장 많이 동원한 청구인의 승률이 가장 낮았고, 이긴 청구인들은 오히려 사유를 줄여 단 하나의 조합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많이 넣으면 유리하다"는 통념, 사실일까?

무효심판을 청구할 때 청구인은 흔히 한 가지 망설임에 부딪힙니다. 어떤 사유를 적어 넣을 것인가. 많은 변리사 사무실에서는 "안전하게 다 넣자"고 조언합니다. 진보성, 신규성, 기재불비 두 유형까지, 동원할 수 있는 사유를 모조리 던지면 그중 하나라도 받아들여지리라는 산탄총 전략입니다.

696건의 심결문은 이 전략에 단호한 답을 내놓습니다.

네 가지 주요 사유를 모두 동원한 청구인의 인용률은 36.4%에 그쳤습니다. 같은 696건 안에서 가장 높은 인용률을 기록한 조합은 단 두 가지 사유를 묶은 사건들이었고, 60.7%에 도달했습니다.

24%포인트 차이입니다. 가장 사유를 적게 주장한 청구인이 가장 많이 이긴 셈입니다.

가장 강한 조합은 무엇이었나?

60.7%를 기록한 조합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진보성에 기재불비 두 유형(명세서 기재불비와 청구범위 기재불비)을 함께 결합한 사건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관찰이 하나 더 가능합니다. 같은 기재불비라도 두 유형 중 하나만 골라 추가하면, 인용률이 도리어 가파르게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반드시 두 유형을 모두 묶어야 효과가 납니다.

이유는 명세서와 청구범위가 본질적으로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발명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명세서가 있다면, 그 명세서에서 출발한 청구범위 역시 자연스럽게 뒷받침이 약해집니다. 거꾸로 말하면, 둘 중 하나만 문제 삼고 다른 쪽은 가만히 두는 청구인은 심판관에게 "이 사람은 명세서 전체를 본 것이 맞을까"라는 의구심을 심어 줍니다. 절반만 펼친 카드가 오히려 청구인의 약점이 되는 것입니다.


사유는 많이 던질수록 유리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 묶을수록 유리하다 — 이것이 696건이 들려준 결론입니다.

상세 조합별 인용률 표(진보성 단독, 진보성+신규성, 기재불비 단독 추가 시 등)는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유를 늘릴수록 왜 오히려 진다?

이 역설은 심판관의 자리에 앉아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심판관에게 무효사유는 검토해야 할 청구인의 '주장 카드'입니다. 카드가 두 장이면 심판관은 각 카드의 근거와 증거를 깊이 들여다볼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카드가 다섯 장으로 늘어나면, 심판관도 각 카드를 빠르게 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어느 카드도 결정적으로 입증되지 못한 채 합의가 끝납니다. 사유를 많이 주장하면 증거와 논증의 밀도가 자동으로 옅어진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더해, 사유끼리 서로 충돌하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신규성과 진보성을 함께 주장하는 경우입니다. 신규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이 발명은 이미 알려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고, 진보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새롭긴 하지만 굳이 발명이라 할 만큼 어렵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두 주장은 한 사건에서 동시에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동시에 제기하면 심판관 입장에서는 "정작 청구인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인상이 남습니다.

마지막은 구술심리 시간의 한계입니다. 무효심판의 구술심리는 길지 않습니다. 사유가 늘어날수록 핵심 하나에 충분한 시간을 쏟지 못하고, 결정적 한 방을 펼칠 여유가 사라집니다.

기재불비 두 유형이 유일하게 함께 묶여 효과를 내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같은 결론(명세서 전체의 부실)을 양쪽에서 보강하는 카드입니다. 그래서 한 묶음으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청구해야 할까?

이상의 데이터를 정리하면 실무 원칙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먼저 진보성입니다. 696건 중 80% 이상이 진보성을 주장합니다. 진보성은 사실상 무효심판의 출발점이자 표준 사유이며, 단독으로도 평균 수준의 인용률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입니다. 진보성을 빼고 무효를 다투는 선택은 통계적으로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더 추가할 사유를 고민한다면, 가장 안정적인 카드는 기재불비 두 유형을 함께 묶어 추가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카드는 꺼내기 전에 한 가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대상 특허의 명세서가 정말 부실한지, 아니면 단지 트집을 잡으려 끌어들이는 것인지. 후자에 가깝다면 차라리 빼는 편이 낫습니다. 본래 결함이 없는 명세서에 기재불비를 무리하게 끌어들이면, 청구인이 다른 사유에서 쌓아 둔 신뢰까지 함께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특허권자(피청구인) 입장에서는 거꾸로 이 점을 방어 논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명세서 품질과 무관하게 기재불비를 무리하게 끌어들였다면, 그 사실 자체가 청구인의 산만함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반격 카드가 됩니다.

핵심은 한마디로 정리됩니다. "많이"가 아니라 "정확히"입니다. 무효심판은 산탄총을 잘 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표적을 정확히 노리는 저격수가 이기는 게임입니다.

다음에 무효심판 청구서를 펼쳐 본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적힌 사유 중 어느 하나라도 빼면 인용 가능성이 떨어질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유만 남겨야, 청구인의 메시지가 흐려지지 않습니다. 사유 한 줄을 줄이는 용기가, 696건의 데이터가 권하는 가장 안정적인 전략입니다.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이 글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이 있습니다.

무효사유 6가지 조합별 인용률 비교표 — 어떤 조합이 어느 정도 인용률을 기록했는지 전체 수치로 정리, 연도별 추세까지 포함


청구인과 피청구인 각각의 입장에서 위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 특히 특허권자가 상대방의 사유 과다 주장을 방어 논리로 전환하는 구체적 방법


위 분석의 한계와 주의사항 — 표본 규모의 통계적 한계,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 명세서 자체의 하자가 인용의 실질적 원인일 가능성


전문 분석 원문: https://sodamip.com/blog/2026/04/09/patent-invalidity-grounds-combination/?utm_source=brunch&utm_medium=cta&utm_campaign=s2_patent_invalidity


원본 데이터 대시보드: https://sodamip.com/trial-stats/patent/?utm_source=brunch&utm_medium=cta&utm_campaign=s2_patent_invalidity

여인재 변리사 | 특허사무소 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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