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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Apr 28. 2022

약간의 추간판탈출증, 약간의 화해와 영원한 손실 ③


개인보험의 장해 기준으로 한번 발생한 추간판탈출은 한시장해일 수가 없다고 지난 호에 맺음말을 했다. 그러나 보험사에서는 의료자문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개인보험의 기준을 무시하고 한시장해를 준용하기 시작했다. 피보험자가 ‘약간의 추간판탈출증 10%, 사고관여도 50%, 장해기간 : 영구’로 장해진단을 받아서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사는 노동능력상실률을 준용한 의료자문결과를 내민다. 내용은 ‘장해기간 : 한시장해 3년’. 이렇게 되면 보험금은 전혀 지급되지 않아야 한다.



개인보험의 장해분류표에서는 한시장해가 5년 미만인 경우는 장해로 인정하지 않고 5년 이상인 경우에는 청구금액의 20%를 지급하도록 되어있다. 그럼에도 보험사는 보험금을 부지급하지 않고 수익자에게 한시장해라는 흠결을 사유로 보험금을 삭감지급할 것이며 동의할 경우는 ‘사실확인서’ 등의 양식에 수익자 본인의 의사에 의하여 보험금 삭감에 동의하였다는 내용에 서명을 받은 후 청구금액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만 지급하고 있다.



보험사가 한시장해라는 의료자문결과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도 그걸 근거로 전액 부지급하지 않는 이유는 피보험자의 상태를 한시장해로 종결하게 되면 한시장해 기간이 종결된 이후에 재평가 받아서 같은 장해로 재청구를 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인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실제로 처음 보험사가 한시장해를 주장하기 시작하던 시절에는 한시장해 5년으로 일률적인 의료자문결과를 가지고 청구액의 20%만 지급을 하고 종결을 했다. 당시 20%만 지급받은 피보험자들은 보험사가 주장한 한시장해 기간 5년이 종료되면 장해평가를 다시 받을 수 있고 다시 영구장해를 진단받게 되면 이미 지급받은 최초 청구금액의 20%를 제한 금액을 추가 청구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 대해 고용손해사정사에게 5년에 한 번씩 조사 나오는 인건비가 더 나오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던지 여지를 남지 않도록 방법을 바꾸었다.



뿐만 아니라 ①편에서 설명했던 2005년 이전의 1급~6급으로 장해등급을 구분하던 장해분류표는 사고관여도라는 개념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 보험금의 지급 여부만 있을 뿐 삭감지급을 하는 사례가 없었으나 이 또한 한시장해라는 흠결을 사유로 청구액의 일부만 지급하는 것이 현재 통상의 관례가 되었다.



지금까지 ‘약간의 추간판탈출증(디스크)’에 대해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던 2012년에는 통상 5~6%로 처리된다는 상식이 현재 2~2.5%로 처리되는 것이 상식화된 과정을 이야기했다. 보험사가 작정을 했구나라고 느낀 후 정착이 되기까지 5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보험업계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지 절실히 느끼는 과정이었다.



보험사가 나쁘고 소비자는 약한 피해자라는 것이 아니다. 보험사는 무언가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면 전략을 짜고 그걸 지켜나갈 힘이 있다. 당분간 민원과 반발을 감수하더라도 참아나가면서 자신들이 새로이 만든 원칙이 상식이 될 때까지 버틴다. 그러나 소비자 개인은 그럴 이유도 힘도 없다. 그래서 보험시장은 보험사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가입한 보험금이 500만원인데 보험사에서 250만을 줄 테니 확인서를 쓰라든가, 소송을 하라고 하면 250만원 때문에 소송을 할 개인은 없다. 그리고 그럴 이유도 없다. 소송비용부터 시간적 소비까지 어떤 면에서든 승패를 떠나 무조건 손해인 싸움이다. 그 손해나는 싸움을 개인이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개인들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확인서를 쓰고 소송비용과 시간 대신 250만원은 포기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간혹 가입금액이 높아서 청구금액이 5000만원이고 포기해야 할 금액이 2500만원이라서 소송을 불사하고자 하는 수익자가 있더라도 그는 이미 누적된 수익자들의 사례 때문에 소송에서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미 확보된 2500만원과 소송비용과 시간은 물론, 패소비용의 손실을 두고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보험사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할 상황으로 수익자를 몰고 가는 것이다. 보험사도, 소비자도 다만 합리적일 뿐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의 시작과 주도가 보험사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흐름을 인지한다고 하여도 우리는 합리적인 개인에 지나지 않으므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조련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조련되어진 개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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