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현 May 16. 2022

가평 계곡살인사건


세상은 사망보험금 8억원을 편취할 목적으로 피보험자인 남편을 계곡에서 의도적으로 물에 빠뜨린 후 사망하도록 방치한 이은해에 대한 기사로 떠들썩하다. 이런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보험금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부채를 느끼게 된다. 본인의 잘못과 전혀 상관없는 일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사람 죽었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에요”다.



사람의 목숨과 돈은 당연히 비교 불가한 가치다. 그러나 사람의 사망에 대하여 금전적 가치가 발생하는 금융상품이 있다. 합법적이고 1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팔리는 상품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망보험금을 두고 ‘사람의 목숨값’으로 표현하는 것도 지양되어야 한다. 가치가 하락하면 수익이 발생하는 풋옵션을 두고 남이 망하기 바라는 나쁜 상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듯이 사람이 사망하면 수익이 발생하는 종신보험 등에 대하여 세상은 굳이 도덕적 색깔을 입히지 않아야 한다.



사망보험금이라는 금융소득에 대한 도덕의 가면을 쓴 왜곡된 시각과 ‘사람목숨값’이라는 폄하된 표현이 보험가입률 97%를 초과하는 보험왕국의 진정한 금융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 구체적인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망보험금을 획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험에 가입하고 사람을 해하는 행위는 분명한 범죄이고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보는 것 또한 결단코 짐승만도 못한 짓이다. 이은해 같은 범죄자는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당연히 보험금 수익을 획득할 자격도 박탈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일부이고 이런 사태에 대한 감정이 분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망보험금 수익자에 대한 편견으로 번지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이성적 선을 그어야 한다. 가평 계곡사건 같은 일부 악의적 보험범죄 사례로 인해 가장이 남은 가족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선물을 당연히 받아야 하는 가족들이 안 좋은 시선을 받거나 사망보험금을 획득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부끄러움을 갖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보험사기 사례가 일반인들 사이에 공유될수록 보험금 지급에 대하여 더욱 까다로워지고 가끔은 횡포로 보이는 보험사의 입증요구에 힘을 실어주게 되고 이는 악의적이지 않은 선량한 보험가입자 및 그 수익자들에게 피해를 넘어선 절망이 될 수 있다.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아야 할 악의적 수익자에게 지급되는 것을 막는 것이 보험의 영원한 숙제지만, 지급이 되어야 할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훨씬 더 많은 피해 사례는 피해로조차 인식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이며 피해자와 그 규모는 악의적 수익자의 사례와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보험사기라는 것이 보험금을 편취하기 위한 것은 아주 사소한 기망도 처벌이나 비난의 대상이 되는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보험사의 의도적 지연행위나 무리한 입증자료 요구는 해당하지 않는다.



보험사의 과실로 인하여 당연히 지급되어야 할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은 경우 보험사의 부지급처리를 신뢰한 채로 소멸시효가 지나게 되면 소비자는 그 권리를 영원히 잃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근원적 사유가 보험사와 소비자 간에 근원적인 정보 불균형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소비자에게 화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소비자가 주변에 쉽게 질문할 수 있는 손해사정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물어보고 확인해야 하는 내용인지조차 판단하기 쉽지 않다.



온 세상이 가평 계곡살인 사건으로 인하여 보험금 편취목적 살인이라는 보험금의 부작용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인면수심보다 못한 이러한 사건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지만 보험업계에서 보험사를 상대로 소비자측에서 보험금을 청구하는 업무를 하면서 보험사가 선량한 보험소비자까지 잠재적 이은해로 평가해버리게 되는 부작용이 더 걱정된다.



보험은 생로병사에 그 수익의 시점을 구분한다. 그러한 보험에 가입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한 보험에 가입한 후 발생한 우리의 의도치 않은 생로병사의 이벤트를 이유로 보험금을 받으려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아니, 가입과 보험금 획득은 당연하고 지혜로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보험금의 지급사유인 생로병사를 인간이 조작하려하는 것은 범죄이다.



생로병사를 조작하지 않은 보험의 가입자 및 수익자까지 불편하지 않도록 보험인들은 이은해 사건과 사망보험금이라는 것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손해사정사로서 말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약간의 추간판탈출증, 약간의 화해와 영원한 손실 ③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