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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조 Dec 12. 2023

보험설계사가 보험금이라는 맨홀에 빠지는 과정

사람이 보험이다.5

보험설계사가 보험금이라는 맨홀에 빠지는 과정


이제 손해사정 136차월. 보험설계사로서 마감을 정확히 70차월을 했다. 손해사정회사의 문을 열었을 때, 새로운 일로 70차월을 채울 수 있을까 했었는데…… 곧 보험설계사 경력의 2배가 된다. 설계사 시절에 지점 인원이 150명에 이르는 큰 지점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일주일에 3건씩 끊기지 않고 꾸준하게 계약하는 선배님이 있었다. 전해 듣기로 그 선배님이 3W를 하게 된 계기가 친한 친구의 죽음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에이~ 죽은 뒤에 받는 돈~ 하던 주변 사람들이 장례식장에서부터 계약하기 시작했고 그 선배 본인도 종신보험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기게 된 것이다.


내가 일하던 시절의 보상은 그런 거였다. 어느 일 잘하는 선배의 전설 속에나 있는 거였다. 기껏해야 입원비, 소파수술비, 치질수술비 등 인원이 150명이나 되었고 영업실적 및 가동인원이 매우 훌륭했던 지점 전체에서 암진단금을 지급하는 사례는 한 달에 한 번도 되지 않아서 고객의 암진단금을 청구하는 사례는 정말 귀했다. 암진단서와 청구서를 들고 오는 선배를 정말 하늘이 선택한 요셉처럼 바라봤던 기억이 선하다.


지금은 어떠한가? 암진단금 지급이 있던 없던 앞다투어 암진단금 지급사례를 공부한다. 지점에서 보상사례를 강의해주겠다면서 손해사정사들이 줄을 서고 약관을 분석하는 교육과정이 경기가 어려운 가운데에도 매진이 되고, 마치 필수과정처럼 여겨지고 있다.


필자도 처음 손해사정을 시작하면서 약관을 알아야 한다고 외치고 다녔던 사람이다. 보험설계사를 하다가 손해사정을 해보니, 보험설계사들이 자신이 팔고 있는 상품이 곧 약관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지도 없이 그저 수동적으로 회사가 주는 상품정보만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보험설계사가 자신이 파는 상품을 알고 팔아야 하고 보상의 사각지대에 있는 고객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와 더불어 내가 변함없이 주장하는 다른 또 하나가 있는데 설계사가 약관을 알아야 함은 설계사 본연의 업무에 전문성을 더하고 깊이 있는 상품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목적이 변질되어 고객에게 판매하기 위해서는 보험금지급이라는 선물이 전제되어야만 하거나, 고객의 보험금지급 여부에 대해 담당설계사가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의 풍토이다. 또한 손해사정사의 무료강의를 가장한 영업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보험영업이 아니라 보상할 대상을 찾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경우도 많다.

보험설계사는 보험을 판매하는 사람이다. 좋은 상품, 고객에게 필요한 상품,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팔면 된다. 보험설계사가 판매한 상품의 보험금지급 여부는 보험설계사가 보험을 어떻게 팔았느냐가 영향을 미치는지는 계약전 알릴의무에 국한된다. 보험설계사는 보험금청구를 할 기회를 고객에게 파는 것이지 보험금을 줄지 말지를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설계사를 통해서 보험금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 보험설계사가 일반인보다 보험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험설계사가 고객의 보험가입부터 보험금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보험의 보상에 대해 설계사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고객은 훨씬 더 좋아졌지만 보험설계사에게 이 시장이 훨씬 더 가혹해졌다고 생각한다. 고객들은 아주 작은 사이즈의 청약을 했더라도 담당설계사에게 보험금청구부터 관련 업무를 자연스럽게 넘기고 설계사들은 기꺼이 고객들의 고충을 해결해주고자 한다. 영업인으로서 이러한 서비스를 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자연스럽다 못해 아주 당연한 일이 되었고 더 이상 서비스가 아닌 설계사의 필수 업무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고객은 이 서비스를 하는 설계사한테 고마움을 느끼기는커녕, 여러 군데 가입해놓고 편해 보이는 설계사한테 아주 작은 사이즈를 계약해놓고 보험금청구 심부름?은 다 떠넘겨도 싫은 내색 하면 안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보험설계사가 보험인으로서 전문인이 되고자, 고객에게 보험이 ‘하나 들어주세요’ 하며 파는 상품이 아니라 담당설계사의 전문성에 따라 보험의 혜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시작된 보험약관 공부였는데 어째, 보험설계사의 업무는 늘어나고 고객의 기준치는 올라가고 보험금이 부지급되면 보험설계사가 미안해지는 이상한 그림을 자주 보게 된다.


그래서 뭐? 공부하지 말라고? 요즘 고객들이 네이버며, 얼마나 빠삭하게 알아보고 연락하는데, 그런 거 몰라도 돼요. 하란 말인가. 아니, 아니, 안되지요. 무식한 보험설계사는 진정 고객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136차월 손해사정 업력 동안 경험하고 있다오. 그러니 공부는 하되, 보험이 아닌 보상에 편중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보험이 아닌 보상이 커져서 보험을 팔기 위해 보험금이 먼저 지급되고 나서야 보험설계사로서 어필할 수 있다거나, 고객이 청구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은 것을 자신의 과실로 가져다가 자책하고 영업을 하는데, 독이 되도록까지 고객의 보험금지급에 시간을 쓰는 보험설계사가 너무 많다.


보험설계사는 고객의 인생과 재무상태를 고민하여 적합한 상품을 권유하고 컨설팅하는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보험금에 대해 논할 일이 많으므로 보상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나, 보험금이라는 맨홀에 빠져서 보험상품 판매라는 출구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기 바란다.


보험금이 지급될 일이 없는 고객은 인수도 편하고 앞으로 보험금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은 고객이다. 보험금을 받도록 도와주느라 열심히 뛰어다녀도 고객이 당연한 일 아니냐, 한번 하면 멘탈이 와르르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다. 보험금이 부지급되는 사유는 보험사의 손해액 감소를 위한 경우도 있지만 고객이 고지의무 위반을 했거나 고객이 부도덕했던 경우도 있고,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데 보험금을 청구한 경우도 있다. 그 책임을 보험설계사가 어떻게든 가져와서 짊어지려 하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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