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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조 Mar 19. 2024

사후 세계와 남은 이들의 세계

사람이 보험이다.9

사후 세계와 남은 이들의 세계


배우 이선균이 사망했다. 사망 이후 언론은 앞다투어 망인이 사망한 장소와 차량을 보도했다. 망인의 마지막 연락과 유서의 내용, 발견된 정황, 그리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유를 짐작하여 전했고, 그의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인사들의 명단과 모습, 그들이 울고 있었는지 장지를 누가 따라갔는지 그의 배우자가 어떤 모습인지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그의 장례식이 끝난 후에는 정치권에서는 ‘수사 관련 공무원의 인권침해 방지법(이하 이선균 방지법)’을 국회사무처 법제실에 입안 의뢰했고, 인권연대가 야당과 함께 긴급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의 사망을 안타까워한 문화예술인연대회의(봉준호 감독, 가수 윤종신, 배우 김의성 등)는 성명을 내고 이선균 배우 사망과 같은 비극적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이선균 방지법’ 제정을 요구했다. 그리고 망인의 아내가 안타깝게도 큰 손해를 보고 150억짜리 건물을 정리했다는 출처가 어딘지, 정확한지 모르는 궁금하지 않았던 소식이 잠깐 돌다가 사라졌다.


이상이 필자가 망인의 사망 이후 그의 사망에 관하여 언론 및 매체에서 접한 내용이다. 이는 필자뿐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하는 누구나 검색만 하면 알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배우 이선균의 사후 이 세계의 일부분이다.


손해사정사가 볼 수 있는 사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 있다.


신체손해사정사인 필자는 보험금의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일을 한다. 신체손해사정사는 사람의 생로병사와 상해와 관련된 모든 보험금에 관여할 수 있다. 필자는 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사망보험금 청구에 관련하여 일을 할 때도 있다. 사망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가장 간단한 분류는 질병을 진단받고 사망하는 질병사망과 산재나 교통사고 등 사고로 인한 사고사가 있고 기타사망이 있다. 기타사망에는 이미 사망한 채로 발견되거나 범죄에 의한 사망이나 자살로 인한 경우가 포함되며 이를 두고 변사(變死)라 한다.


변사 사건 현장에는 경찰이 출동하여 현장 조사를 한다. 현장 조사는 사체가 사망한 상태의 사진과 사망한 사체의 주변 사진을 찍고 변사의 원인이 밝히는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현장을 보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사체는 수습하여 경찰 내 검시관이 검시하는 데 1차적으로 의복을 입은 상태에서 확인하고 사진을 찍고, 2차적으로는 사체의 의복을 완전히 탈의한 후 사체와 사체에 남은 상처나 흔적 등을 사진으로 남긴다. 이후 범죄에 의한 사망인 경우 부검을 하거나 사체를 보관하고, 범죄에 의한 사망이 아닌 사고나 자살이라고 판단이 되면 유가족이 부검을 원하지 않으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가족에게 인도한다. 배우자나 부모 등 가장 가까운 가족 중 한 명은 사체의 신원을 확인하고 나면 경찰서로 가서 유가족진술을 해야 하는데 유가족진술이 완료되어야만 장례를 치르러 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촬영된 사진과 유가족진술서 등은 변사사건사실확인원 등의 서류는 검찰에 25년간 보관된다. 그리고 그 서류는 망자의 사후 정리를 위하여 공공기관 등에 제출하기도 하고 죽음의 원인을 둘러싼 산재 처리 여부 등의 여러 분쟁의 자료로 쓰인다.


필자는 직업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유가족들과 함께 겪은 적도 있고, 이후 그 과정을 듣기도 하고, 서류로 접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엿본 사후세계를 이야기해 보자. 내가 가끔 듣는 유튜브 공포 채널이 있다. 이 채널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시청자들이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 지금 이야기할 내용의 주인공은 귀신이 보이지만, 무당이 아닌 기술직으로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를 철수라고 하겠다. 그는 기숙사 생활을 하던 때 그의 룸메이트는 매일 밤 강령술로 귀신을 불러내는 요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귀신이 보이는 철수는 그 귀신들 때문에 힘들어서 직장을 옮겼는데 새 직장에서 적응할 때쯤 전 직장 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룸메이트가 사망했는데 그의 아내가 철수를 꼭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룸메이트는 사실 말기암에 걸린 시한부였고, 이후 사후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오컬트영화나 다큐를 보면서 강령술을 연구하면서 여명을 보냈다. 사망하기 전에 아내에게 자신이 죽거든 귀신을 볼 수 있는 철수를 꼭 불러 자신의 영혼이 존재하는지를 물어보라고 했다고 한다. 철수는 그의 영혼을 진짜 만났다고 하는데 그는 그가 생전에 불러들인 잡귀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었고 아내에게 그가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그건 ‘죽음’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았고 어떤 과정으로 사망했느냐에 따라 어떤 죽음으로 명명되고 회자되고 기록된다. 그 과정을 남은 이들이 겪어내고 감당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남은 이들이 그 과정을 통해 죽은 자를 새로이 기억하고 죽은 자의 삶을 다시 정의 내리기도 한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죽음 저 너머 사후세계의 존재들조차도 삶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죽은 자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달라진다고 하지 않는가?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은 수정할 기회가 없는 순간의 박제다. 죽을 만큼 힘든가? 나도 자주 그렇다. 타인이 힘들어하는 순간의 적정성을 내가 논하고 싶지는 않다. 타인도 나에게 그러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내 마지막 모습이 나랑 단 한 번도 눈 맞춰 이야기한 적 없는 사람에 의해 사진 촬영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의 고통이 낯선 이에게 확인되는 건 원치 않는다. 불편한가? 불편해해라! 많이 불편해해라.


그러니 힘들지만 지금 웃으면서 V자를 그리며 셀카를 찍어라. 살아있는 그대의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는 이들과 지속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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