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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조 Mar 19. 2024

조호바루보다 더 먼 곳으로 떠날 때의 준비

사람이 보험이다.10

조호바루보다 더 먼 곳으로 떠날 때의 준비


한 달간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그냥 한 달 살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내 성격에 가만히 있는 시간 일주일이면 당장 짐싸서 돌아올 것 같아서 나 자신에게 어학연수라는 미션을 더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수업받고 기숙사에 돌아와 회사 일을 하고 저녁을 먹는 간단한 일상이지만 깨끗한 물을 먹는 일,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는 빨래 같은 한국에서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일들이 여기서는 모두 번거로운 과정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간단한 일상생활만으로도 하루가 꽉 찼다. 돌아가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짧디짧은 찰나의 시간 같이 느껴진다.


그 찰나의 시간을 위해 6개월을 준비했다. 조호바루라는 곳을 정하기까지의 시간까지 더한다면 1년여가 걸렸다.


어학원을 알아보고 숙소를 준비하는 건 그중 가장 쉽고 시간이 적게 걸리는 일이었다. 내가 한 달간 떠난다는 건 손해사정사로서, 회사 대표로서, 가정주부로서 내가 맡은 여러 역할들이 한 달간 공백이 생긴다는 걸 의미한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우선 가족의 동의, 사실상 통보에 가까웠지만 유혈사태 없이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여 준 남편한테 감사하고 엄마 다녀오면 이제 영어로 대화할 수 있냐며 좋아하던 아들한테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한 달 갖고 택도 없더라는 미안함을 느낀다. 회사, ‘꼭 가야 되는 거냐’는 아주 정중한 만류. 나한테 설득된 게 아니라 내가 확고해서 만류하기를 포기했다. 의뢰인들, 급한 것들은 회사 내의 다른 사정사에게 인계하고 꼭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보류 했다. 칼럼은 한 달 분 원고 미리 마감 등 내가 없는 동안 회사가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한 기획. 몇 개월간 회사며 나의 모든 개인 일정까지 이 조호바루를 위해 준비되고 짜였다.


그중 가장 부담스럽고 중요했던 건 돈이었다. 어학연수비와 체류비용은 사실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없는 동안 강남 한복판 사무실의 임대료, 관리비, 직원 월급, 4대 보험료, 세무기장료, 공기청정기 임대료, 법인카드 결제 등등.


그리고 내가 돌아온다고 바로 뿅하고 돈이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부재한 기간의 최소 한 배를 더한 기간 동안 매출이 부진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자금 또는 다른 기획. 돈. 돈. 돈이 가장 문제였다. 그리고 내가 돈 외에 준비했던 모든 것들도 결국은 돈이 도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한 장치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떠나기 3일 전까지도 채워야 할 금액을 만들지 못해서 떠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내가 내 자리에 없으면 돈이 가장 문제였다.


떠나기 전날 밤 12시까지 사무실 정리를 하고 짐을 싸서 극적으로 떠나는 것에 성공해서 비행기 안에서 들었던 생각이 한 달을 떠나기 위해 이 난리법석인데 우리가 만약 영원히 죽음이라는 여행을 떠나는 시기를 예정하고 있다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야 할까. 준비해야 할 것은 당연히 많고 준비하는 항목 하나, 하나의 깊이와 정도가 절대 소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떠나는 시기를 알 수 없다. 심지어 시한부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그때를 특정할 수 없기에 ‘그날이 오늘인 줄 알았으면 다른 오늘을 살았을 걸’ 하고 후회를 한다.


죽음은 아주 긴 시간과 아주 깊은 사려와 단단한 기반이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준비가 종신보험이다. 요즘 종신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보험설계사 수당 욕심에 놀아나는 것처럼 매도해서 납입기간 얼마 안 남은 종신보험을 해약 유도해서 손해보험의 생존 시 보험사고 위주의 보험으로 리모델링하는 사람도 많고, 종신보험의 일부 기능인 연금의 기능만 강조해서 판매하기도 한다. 심지어 보험사에서 아예 상품을 만들 때 저축성 기능을 강화한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 전략으로 삼기도 한다. 수많은 보험설계사들이 우리 사무실을 찾지만 종신보험의 가치를 설명하거나 토론하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 보험시장이 보험시장의 근간인 종신보험을 ‘종신보험’으로 판매하기를 꺼려한다.


하물며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떠나는 것이 이리 복잡하고 어려운데, 영원히 현재의 역할을 내려놓고 더 이상 그 역할의 빈자리에 대해 조언이나 소통조차 할 수 없는데 우리는 그 준비를 ‘죽으면 소용없다’라는 무책임한 말로 회피한다. ‘죽으면 소용없다’가 아니라 ‘죽으면 준비할 수 없다’가 팩트 아닌가? 죽어서 준비 안 한 걸 후회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으니 그저 책임을 죽음의 너머로 무심히 던져버리는 거 아닌가 말이다.


죽음, 편하지 않은 말이다. 죽음, 그래서 준비해야 한다.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나 아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덜 힘들도록. 제발 종신보험한테 ‘죽으면 소용없다’고 말하지 말아라. 종신보험은 애초에 ‘죽으면 소용 있어서’ 세상에 생긴 상품이고 현재도 누군가가 ‘죽은 후 소용이 되고 있어서’ 아직 팔리고 있는 상품이다. 종신보험은 ‘죽으면 소용이 있다’ 종신보험이 원래 그러려고 만든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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