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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Jan 19. 2021

서민이 천대하는 서민금융 ‘보험’


다음 달에 내가 속해 있는 모임에서 강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정을 한 달 정도 미루자는 전화를 받았다. 이유는 보험을 주제로 하는 내 강의를 목차가 아닌 강의안과 강의자료를 모두 꼼꼼하게 확인한 후에야 모임에서 승인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보험 말고 다른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손해사정사로서 해달라고 한다. 참 이상하다. 대한민국은 99.7%의 가정이 보험에 가입한 보험강국인데 보험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경시한다. 아니 천시한다.



공기업에서 5년째 내 강의를 교육과정에 끼워넣고 있는 교육담당자들이 소개를 하기 망설여진다고 말한다. 강의 반응은 좋지만 ‘보험이라서……’ 주저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기관에서도 담당자들이 강의 내용은 너무 좋았다고 하면서도 ‘보험 팔았다는 이야기 나올까봐’ 강의를 더 이상 확대하는 것을 염려한다. 나도 어쩌다가 정말 좋은 상품을 추천해주고 싶어도 ‘역시’ 소리가 두려워 삼킬 때가 많다.



나는 보험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보험의 이익실현 과정을 고객과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내 전문분야가 보험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경우는 위에 나열한 사례 외에도 많다.



그 이유를 개인적으로 유추해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험에 가입한 과정에 대해서 부정적인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대부분 보험을 ‘잘 모르고’ 가입한다. 그런데 여기서 ‘잘 모르고’ 가입한 이유를 십중팔구 담당 설계사에게서 찾는다. ‘담당 설계사를 믿었는데 잘 모르는 자신을 속였다’라는 것이 그런 사람들의 논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자신이 잘 알려고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다음에도 보험을 ‘잘 모르는’ 자신을 위해 잘해 줄 설계사를 찾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가입한 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품에 맞는 사고가 발생하면 다행인 것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품의 보험사고에 해당하지 않는 사고가 발생하면 ‘속았다’라고 한다. 자신이 알려고 하지 않는 한 위의 과정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냉장고 기능은 잘 몰라도 열심히 배워서 사용하면서, 혹은 그 안의 모터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몰라도 속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보험에 관해서는 A/S가 필요한 상황이 생겨서 새로운 기능이나 단점을 알게 되면 속았다고 말한다. 모든 상품을 소비할 때 그 장단점을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그 장점에 매력을 느껴서 구매하는 것인데 말이다.



아마도 보험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다루는 상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수록 더 잘 알아야 하는데 소비자는 그러니 ‘알아서 해줘야 한다’와 설계사는 ‘제가 어련히 알아서 해드리겠습니까’로 보험을 사고판다. 이제는 정확한 인지과정을 통한 소비와 판매가 이루어진다면 보험이라는 금융상품에 대한 감정이 걷히고 객관적인 시선이 생겨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PB들이 보험에 관해 가장 자주 하는 이야기는 소득의 10%를 보험료가 초과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인데 온 가족 실손보험과 운전자보험만 가입해도 10%를 초과하지 않는 소득수준의 가정은 많지 않다. 보험료는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고 불의의 사고로 인한 경제적 리스크는 사회적 비용의 상승으로 인해 커지고 있다. 가정경제에서 이미 제외할 수 없는 소비항목이 되어 있는 보험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을 경시할까?



이러한 상황이 보험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답답해해야 할 문제인지 반성해야 할 문제인지도 판단이 잘 서지 않지만 보험에 관한 경시로 인해 가장 피해를 입게 되는 주체는 보험소비자라는 것은 명확하다.



당신은 보험이 우스워서 이번 달에도 실손보험료를 지출하고 매년 자동차보험료를 지출하고 있는가? 당신의 지출금액도 우스운가? 제발, 보험에 관계와 정을 입히지 말고, 그 상품과 기능으로 보자. 보험은 금전과 금전이 오고가는 금융거래이고 보험가입은 그 금융거래를 통한 이익실현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당신이 거래하고 있는 내용을 알려 하지 않으면 당신은 영원히 억울할 것이다.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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