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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r 09. 2021

‘민식이법’이 무서워요


‘민식이법’과 관련하여 사고 당시 격분하는 대중들을 보며, 감정적으로는 공감이 되나 다른 사안에 비해 처리가 훨씬 어려웠던 어린이 사고 건들의 부모들이 나한테 한꺼번에 와서 하소연을 하는 것 같아서 마음속이 어지러웠었다.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과 무관하게 내 자식이 다쳤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용서하기 어려운 마음으로 분쟁을 대하는 것이 인지상정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나도 부모라서 냉정해야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민식이법이 제정되고 통과되는 과정에서 어지러운 마음을 피하고자 고개를 돌렸건만, 이미 통과된 법안의 내용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형사처벌을 면해주는 법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제1조-목적 : 이 법은 업무상과실(業務上過失) 또는 중대한 과실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관한 형사처벌 등의 특례를 정함으로써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고 국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이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에는 제한속도를 20km 초과하여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운전하다가 어린이의 신체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보험으로 인한 특례적용(형사처벌 면제)을 제외했다. 다시 말하면, 사고가 났어도 제한속도를 20km 이상 초과하는 과실이 없으면 특례적용을 받아서 자동차보험으로 처리하고 형사처벌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내용은 2020년 3월 25일부터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에 신설된 내용 일명 민식이법(제5조의 13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치사상의 가중처벌)으로 인해 적용이 달라졌고 이에 대해 혼돈하는 경우가 많다. 속도규정이나 주정차금지 규정 등을 준수하면 처벌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기사들이 버젓이 올라오고 있다.



민식이법의 원문은 아래와 같고 위에 소개한 교통사고특례법보다 우선 적용된다.



자동차(원동기장치자전거를 포함한다)의 운전자가 ‘도로교통법’ 제12조 제3항에 따른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같은 조 제1항에 따른 조치를 준수하고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하여 어린이(13세 미만인 사람을 말한다. 이하 같다)에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1항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다음 각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1.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 어린이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결론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사고가 나면 무조건 형사처벌이다. 예외사항이 없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공을 따라 뛰어든 아이를 미처 보지 못한 과실이 1%라도 인정되면 나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운전자보험 가입했으니까 괜찮겠지?



형사처벌 이력은 공무원이나 교사 등 공적 신분을 가진 사람에게는 미래가 모두 사라질 수도 있는 엄청난 사건이다. 실례로 이런 일이 있었다.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어서 형사처벌 대상이었다. 그러면 진단서 등을 근거로 형사합의금을 책정하여 가해자가 합의금을 제안하게 되는데, 피해자 측이 가해자가 공무원 신분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진단 내용이 아니라 본인의 공무원 신분에 대한 금액을 합의금으로 책정해와야 합의를 하겠다고 해서 상당한 심적 고통을 호소했었다. 피해자 가족들은 공무원이라는 점을 악용해서 거의 협박에 가까운 압박을 가했고 가해자는 직장을 잃을까 불안한 마음에 비상식적인 금액의 합의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심리상담을 다녀야 할 정도였다. 이쯤 되면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구분이 어렵다. 이런 사례들 때문에 손해사정사들 사이에서는 민식이법이 어린이를 이용한 보험사기가 양산되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다.



어쨌든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하니까 민식이법이 강력하게 시행되어서 스쿨존의 어린이 사고 가해자가 모두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하자. 그 대상자는 가끔 지나치는 차량이 아니라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그리고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현실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학원차량 혹은 제2, 제3의 민식이가 될까 걱정하는 등하교 학부형 차량 중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스쿨존 거주민들일 것이다. 지나가는 차량은 스쿨존을 피해가면 되지만 학교를 목적지로 하는 차량들은 그럴 수 없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이미 민식이법 시행 이후로 스쿨존으로 학원차량이 아예 진입을 하고 있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학교 앞에서 스쿨존 밖으로 도보거리가 늘어난 만큼 늘어난 아이들의 위험과 그로 인해 발생 가능한 사고의 운전자는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물론, 내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가해자들을 만날 때도 있다. 자동차보험 가입사실이 자신의 부주의에 대한 책임을 다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혹은 일부러 사람을 다치게 한 것이 아닐까 싶어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위한 경제활동을 목적으로 도로에 나섰다가 여러 가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이유들로 인해 사고가 났고 그들도 어떤 민식이의 아버지이거나 어머니이다. 사고를 낸 민식이네 가정이 모두 형사처벌 및 그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된다면 사고 낸 집의 민식이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사회가 깊은 고민 없이 피해자 혹은 가해자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우리 사회의 제도와 법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참고로 초등학교 50m 거리에 사는 필자는 민식이법이 심각하게 공포스럽다.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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