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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r 08. 2021

나는 사람이 보인다

'혼자'의 보험

        사회는 ‘혼자’를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시선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혼밥은 이제 도전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혼밥존’이 생길 만큼 익숙한 모습으로 자리잡았고, 실연당한 남자의 대표적 모습이었던 슬픔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생각되고 있다. 이외에도 혼자 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와 문화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현대 젊은이들에게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회는 ‘혼자’를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시선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혼밥은 이제 도전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혼밥존’이 생길 만큼 익숙한 모습으로 자리잡았고, 실연당한 남자의 대표적 모습이었던 슬픔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생각되고 있다. 이외에도 혼자 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와 문화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현대 젊은이들에게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보험은 위험을 파는 상품이다. 발생 가능한 위험을 소비자에게 인지시킨 후에 위험의 크기만큼 보험료를 받는다. 그 위험의 기본은 죽음이다. 죽음 뒤에 위험을 당할 남겨진 가족의 위험이 가장 크고 위협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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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보험에서는 이렇게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먹고 혼자 쉬고 혼자 놀면서 혼자라서 현재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혼자’들에게 어떤 위험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할 것인가? 어떤 위험을 팔 것인가? 혼자 놀다 혼자 가버릴 그들에게 더 이상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보험은 필요가 없다. 



그래서 주보험이 사망보험금인 상품은 점차 퇴화될 것이다. 내가 이 글의 초안을 써 놓은지 2주만에 국내에서 상품이 ‘사망+암+2대질병+입원비+수술’ 외에 다른 특약이 없었던 생명보험회사에서 주계약이 사망보험금이 아닌 상품을 출시했다. 다른 회사에서는 이미 입원비를 주계약으로 하는 상품 등이 출시되어 더 이상 사망보험금이 다른 보장의 그릇이 되는 형태의 기존틀을 벗어나고 있다. 



그래도 사후보장은 필요하다. 사람은 죽으면 더 이상 먹고 마시고 생활비를 쓰지 않지만 그동안 살면서 본인이 만들어놓은 영역을 정리하는 데는 비용이 들어간다. 장의사만큼은 아니겠지만 직업상 사람이 떠난 후를 나는 자주 본다. 사람이 얼마나 뒷정리를 잘하고 떠나는지가 중요한지를 절실하게 느낀다. 장의사는 장례 후에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 할테니 어쩌면 장의사보다 그 부분은 내가 더 잘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기억도 안 나는 삼촌이 한 달이나 지나 부패한 채로 이웃들에게 발견되어 그 뒷정리를 하던 20대 청년의 한탄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부패한 채로 부검없이 시신이 수습되어 상해사망보험금 지급 조건을 입증할 수 없었다. 만약 돌아가신 삼촌에게 작은 금액이라도 보험금이 지급되었다면 삼촌이 예기치 못하게 떠났지만 조카에 대한 마음은 좀 떳떳하지 않았을까. 



혼자 살던 사람이 병이나 사고를 당해 사망하게 될 경우 마지막까지 돌봐주던 지인이 아니라 몇십년 동안 소식도 끊긴 채 살다가 보험금만 수령해가는 경우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손해사정사들은 자주 듣는 레파토리다. 



위와 같은 일들은 이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보험금의 수익자를 친족으로만 제한하는 것이 혼자 혹은 혼자와 혼자의 동거 등 새로운 가족유형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그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혼족들의 사후 정리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가 유망한 사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험사에서 현재 상조서비스를 함께 팔기도 하듯이 이러한 대행업체와 콜라보로 상품을 만들어서 팔게 될 날도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행히 결혼이라는 걸 해서 만약 지금 죽는다면 빚을 내서라도 나의 사후정리를 해줄 가족들이 있다. 그렇지만 최근 급증하는 이혼율을 생각해볼 때 방심할 수 없다. 특히 황혼이혼과 황혼동거는 가족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족의 형태가 복잡해짐으로 황혼이혼으로 인한 혼자가 아닌 혼자끼리의 동거는 젊은이들의 그것과는 또다른 분쟁과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람은 생긴 게 다르듯이 사는 게 다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정형화된 어떤 틀로 담아내고 규정한다는 것이 어렵다. 단지 가족이 있으니까 사망보험금이 필요하고 가족이 없으면 필요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래서 살만한 게 인생이라는 이 주어진 한번 뿐인 삶의 끝에 이왕이면 남은 사람들 미간을 찌푸리지 않고 떠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당신만이 선택할 수 있는 당신만의 삶 속에서 지혜롭게 선택해 나가야 한다.



나는 잘 살고 싶고 잘 죽고 싶다. 혼자 사는 그대나 혼자 사는 누군가의 주변인이거나 평생 혼자가 안될 거라 자신할 수 없는 나까지 모두 함께 나중에 일어날 일이라고 미루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고민해봐야 할 혼밥, 혼술 시대의 문제일 것이다. 혼… 죽…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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