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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Feb 15. 2021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문가들은 이번 팬데믹이 총칼이 오고가지 않았을 뿐 희생자 수나 사회적 변화의 정도가 전쟁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불안한 시기이면 보험사기가 증가한다. 보험사기는 일부러 보험사고를 내는 경성사기와 이미 일어난 보험사고를 확대하거나 기타 제반 사실을 조작하는 연성사기가 있는데, 최근 연성사기가 증가하고 있다. 이유는 전문적인 보험사기꾼이 아닌 일반 계약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소액의 보험금도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입원비 가입금액이 큰 사람의 경우 의사의 퇴원 권유에도 불구하고 하루라도 더 입원하려고 하는 케이스 등이다.



얼마 전에는 임플란트를 굳이 하지 않고 몇 년 더 사용해도 된다고 했던 치아를 임플란트 시술을 하려 한다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병원비를 빼고나면 고작 200만~300만원 남는 것인데도 당장의 생활비가 힘들어서 치과에 가서 아파서 못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공연히 주변 사람까지 피해 끼치지 말고 순리대로 하라는 나의 충고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는 전화를 받고 마음을 놓았지만 그의 생활고를 내가 해결해줄 수 없으니 편해지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코로나19 감염 걱정에 다쳤는데도 입원치료를 안 받아서 자동차배상 등에서 입원 기간 부재로 인한 휴업손해를 못 받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전화가 온다. 본인이 증상이나 상태가 코로나19의 위험보다는 가벼웠으니 입원하지 않는 걸 선택한 것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고 하니 듣지 않아도 아는 코로나19 이야기를 무한반복한다. 그냥 “보험사 나쁜 **”라고 하면 끝날까도 싶지만 코로나19에 보험사는 책임이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아닌 건, 아닌 건데.



진짜 문제는 휴업손해를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입원 치료 시기와 적절한 검사 시기를 놓쳐서 악화된 몸상태이다. 분명 의사는 입원을 권했을 텐데 코로나19 피하다가 본인 몸 상태는 악화되고, 입원을 하지 않은 관계로 휴업손해뿐 아니라 ‘입원을 할 정도의 상태는 아닌 것’으로 규정되어 다른 부분의 보상(상실수익액 등)도 본인 몸상태에 맞게 주장하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다. 뭐 덕분에 보험사는 손해율 하락으로 올해 상반기 성과급 축제라고 하던데.


이 와중에 설계사들은 고객들의 유지율이 걱정이다. 소득의 불안정이 장기 고정지출인 보험료를 부담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전세계에 찾아온 불행이 보험업계에는 연성보험사기와 보험유지율 하락으로 반영되는 것이다. IMF 때, 서브프라임 때 엄청난 보험유지율의 하락이 있었다. 그 당시 보험사가 고객들의 해약환급금을 지급하느라 타격을 입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어차피 해약환급금은 항상 준비되어 있는 자금이다. 보험회계상 언제든 해약시를 대비하도록 되어 있고 해약환급금의 자원은 여러분의 계속보험료에서 미리 충당해놓는 것이다. 오히려 해약환급금을 내어주면서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고객이 해약을 해서 자금을 융통할 정도의 환급금이 쌓일 만큼 오래 유지된 보험은 대부분 보험사 입장에서는 향후 계속보험료의 유입보다는 보험금지급의 위험이 더 크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어차피 준비된 환급금을 지급하고 유지기간 동안 더 늙고 약해진 위험체를 적법하게 정리하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경기가 회복된 후에는 예전보다 까다로워진 약관으로 예전보다 더 늙은 피보험자에게 더 비싼 보험을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기도 하다.



어렵고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고들 한다. 어렵고 힘들면 몸이 힘들고 몸이 힘들어지면 아프고, 아플 때 보험이 가장 필요한데 사람들은 힘들어지기 시작하면 보험부터 없앤다. 만약 보험료를 줄여서 힘든 게 줄어들고 그래서 편할 수 있다면 그래야겠지만 대개 사람들이 없애려는 보험료는 외식 한 두 번 줄이면 부담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 대부분이다. 외식 줄여서 몸이 아픈 사람은 없지만 몸이 아플 때 보험이 없으면 치료 혹은 진단의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불행은 대부분 건강을 그 대가로 요구한다. 소득의 감소나 집안의 대소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부자는 모아놓은 돈을 쓰면 되지만 부자가 아닌 우리는 몸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일이 배우자의 죽음 또는 이혼이라고 하던데, 고통스러운 이혼의 과정이 끝나고 1년 이내에 암진단을 받은 사람을 나는 실제로 여러 명 봤다. 어떤 분은 파산 직전의 상태에서 빚을 다 갚고 병원에 가보니 간암 진단을 받았다고 하고 남편의 오래된 사업부채에 시달리던 분은 본인의 뇌출혈진단금으로 친정 식구들 빚이나마 조금 갚아야겠다고 하는 분도 만났다. 공통점은 형편이 어려워서 보험을 해약한 지 2~3년 안이 안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험금 지급사유에는 청구서에 적을 수 없는 힘든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보험금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힘든 시간이 이미 있었고 그건 병력과는 다른 것이지만 병력의 과거력이 된다. 그리고 힘든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면 청구서조차도 작성할 기회가 없다.



우리 모두 힘들다. 장사가 안되고, 보너스가 줄었고, 일자리도 불안하다. 지금 이 힘든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보험금 지급사유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런 불황에 돈을 버는 건 주식을 싼 값에 매입한 사람일 수도 있고, 건물을 사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보험사는 조용한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예전에 판매한 실손부터 제약조건이 많지 않았던 각종 진단금까지 정리하고 싶어 보험사가 안달이 난 것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피보험자들이 알아서 만세 부르고 이 게임에서 퇴장할 것이 기대되는 것은 보험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보험은 금융이다. 금융은 타이밍이다. 이 타이밍에 판에서 떠날 것인가? 잘 선택하라.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혼자 오지 않는 불행을 맞이할 방법은 무엇인가? 내가 겁주는 것 같은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제발 겁을 먹었으면 한다. 겁먹어야 할 일 맞다.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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