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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Feb 10. 2021

어린이 사고와 엄마


오늘도 자신의 아이가 놀이센터에서 다쳤다는 아이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이런 전화를 걸어온 엄마들은 대부분 말이 두서가 없다. 대부분 사건의 순서를 나열하면서 필요 이상의 디테일한 설명으로 팩트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질문세례를 퍼붓는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우리 아이가 얼마나 아파했는지 알아요? 그런데, 보험사가 우리 아이의 아픔을 인정하지 않아요. 당신에게는 우리 아이의 아픔이 보험사보다는 크게 느껴지는 거지요?”이다.



말로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지만 나의 말은 듣지 않는다. 본인의 요구대로 방법을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똑같은 질문을 계속한다.



결국, 나는 “원하시는 게 뭔가요?”라고 되묻게 된다. 그럼 또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죠? 손해사정사님!”이라고 다시 물어온다. 나도 엄마이면서 엄마들의 전화를 받기 두려운 이유이다.



엄마들은 아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성을 잃는다. 엄마는 아이의 사고에 법률상 책임이 없더라도 항상 아이가 그 상황에 놓이게 한 자신을 이미 자책하고 있을 것이다.



“왜 거기 데려갔을까?”



“왜 아이를 거기에 맡겼을까?”



“하필이면 왜 그때 내가 화장실을 갔을까?”



아무리 똑똑한 엘리트들도 자신의 아이 문제에서 만큼은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인다. 본인이 가지고 있던 상식과 기준이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는 새롭게 정의된다.



한번은 사고를 당한 엄마의 친구가 나에게 도움을 청해온 적이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에 대한 호소만 할 뿐 문제 해결로 이어질 진전이 없자 옆에서 보다가 지친 것이었다. 그 엄마의 전직은 간호사였다. 응급실에서 피범벅이 된 환자도 다반사로 보고 방금 실려온 환자가 죽는 것도 보는데, 본인 아이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만 며칠째 혼란 속에 있었다.



사고를 당한 아이 엄마들은 긴 하소연이 끝나면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다. “어머니는 어떻게 하고 싶은거냐”고 물으면 다시 나에게 더 세밀한 질문을 해온다.



“수임을 할까요? 합의를 할까요? 병원에 갈까요?”



본인이 결정해야 할 사항을 나에게 넘겨오는 것이다. 이때 나는 절대로 결정해주지 않는다. 본인이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설명해준다. 그 과정에서 다시는 전화통화를 하지 않을 각오를 하고 최대한 차갑게 얘기하지 않으면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어떻게 할까요”를 피할 수 없다. 그러면 대부분 입으로는 고맙다고 말을 하지만 서운함과 화를 꾹 눌러 삼키며 “네, 네”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내가 아무것도 결정해주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이기 때문에 자기 결정에 대한 후회와 두려움 때문에 계속해서 누군가 대신 해주길 바란다. 뭔가 조금이라도 잘못 될 경우에 자책이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결국 본인이 결정하지 않으면 진행될 수 없다. 아무리 남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손해사정사나 변호사에게 얘기해도 결국은 “어머니, 어떻게 하실건가요?”라는 질문을 다시 듣게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최선의 결정을 내려준다 해도 결과에 후회와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다. 아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는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결정의 주체인 본인이 결정에 있어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들을 인지하고 거기에 자식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담아 결정한다면 가장 후회가 적을 것 같아서 나는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



어린이보험을 판매하거나 어린 아이가 있는 고객이 있는 설계사들도 자주 겪는 일일 것이다. 그럴 때 본인은 성심성의껏 얘기를 들어주고 최대한 고민해서 해결안을 제시하였으나 고객의 반응이 본인의 마음에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럴 때는 오늘 나의 칼럼을 참고하기 바란다. 엄마들의 하소연과 결정에 대한 고민, 그리고 결정 이후의 아쉬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함께 할지 무엇이 엄마들을 돕는 것인지 상황과 대상에 따라 심사숙고했으면 한다.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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