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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Feb 09. 2021

누구나 정서적 상속인은 있다

지난번 칼럼에서 정의 내린 ‘정서적 상속인’에 대해 보험영업을 하는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정서적 상속인’과 ‘법정 상속인’의 괴리는 보험영업이 더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도 많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종신보험이 요즘 왜 예전같이 팔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결혼을 전제로 하던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깨어지면서 내가 사망보험금을 남길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형태와는 별개로 누구에게나 아끼는 사람은 따로 있고 사랑하는 존재나 고마운 누군가는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정서적 상속인이 존재한다면 사망보험금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반드시 결혼한 사람만, 자녀가 있는 사람만 사망보험금이 필요하다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깨진다. 그러니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결혼생활이 종료된 사람이라도 정서적 상속인에게 닿을 수 있다면 사망보험금을 준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여자분은 결혼 전에 종신보험을 가입하면서 조카를 상속인으로 지정했었다. 당시 미혼이므로 만약 사망하게 된다면 법정 상속인은 부모님이지만 실질적으로 자신이 그런 일이 생긴다면 뒤처리를 해줄 사람은 본인의 언니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길 원한다고 했었다. 몇 년 후 결혼을 해서 수익자 변경을 남편으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 물었더니, 아직 얼마 살지 않은 남편이 본인의 사망보험금을 받는 것이 심정적으로 용납이 안 되고 역시 아직까지는 언니가 사후 처리를 하길 바란다면서 변경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나고 만 1년이 지나자 수익자를 아이로 변경했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나자 지분을 등분해서 두 아이에게 지정해주었다. 이 과정에서 둘에게 나누어주려고 보니 금액이 부실하게 느껴진다고 사망보장을 증액했다. 아이가 성년이 된 후에 본인이 사망하면 금리 때문에 큰 돈은 아니겠지만 각자 엄마 생각하면서 여행을 다녀올 정도 금액은 남겨주고 싶다고 했다. 물론, 미성년 동안은 친권자인 남편이 실질적 수령자가 되겠지만. 그래도, 남편이 본인 몫으로 받은 것과 아이 것을 대신 수령하는 것은 전혀 남편 입장에서 그 보험금에 대한 입장이나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위 사례는 전형적으로 정서적 상속인의 변동에 따라 적극적으로 수익자를 변경한 것이다. 보험에 있어 수익자 변경은 주식에 있어서 시장변동에 따라 삼성전자를 매수할지, 현대차를 매수할지와 같은 것이다. 내가 낸 보험료의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인 것이다.



결혼 전은 혼자 사는 자신을 가장 많이 돕는 형제를 위한 수익자 지정을 하고, 결혼했지만 정서적 공유가 아직 안 된 남편을 지정하는 것은 미루었다. 당연히 배우자로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내가 만난 다른 사례에서 1년 연애 후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암으로 사망한 어느 여성의 주변인들이 남편이 2억원이라는 사망보험금을 수령한 것에 대해 정서적 동의를 하지 못하고 잘못한 것 하나 없는 그 배우자를 마치 나쁜 사람처럼 말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녀는 정해진 것이 아닌, 자신의 정서적 상속인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충실하게 지정하고 반영했다.



보험의 수익자를 변경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니, 수익자가 어떻게 지정되어 있는지에 대한 생각 자체를 사람들은 잘 안한다. 그리고 이게 결국 보험을 완성시켜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소위, 머리가 아파오기 때문이다.



보험 가입 과정에서 상속인이 아닌 수익자를 지정하게 될 경우 생기는 서류 준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싶은 설계사는 많지 않다. 고객의 마음이 서류준비 과정에서 변할까봐 상속인으로 하면 가장 좋다고 말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상속인이 피보험자의 상황의 변동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속인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정말 받아야 할 사람이 못받는다고 안타까워 나에게 전화를 하는 사람도 설계사다.



종신보험이라는 상품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고객에게 정서적 상속인을 먼저 찾아주는 것은 어떨까? 미혼이든, 기혼이든, 이혼이든, 황혼이든 누구에게나 정서적 상속인은 있다. 그 정서적 상속인이 수익자의 범위에 들어올지는 어쩌면 그 이후 문제가 아닐까?



그리고 이미 가입한 보험의 수익자가 현재의 정서적 상속인과 같은지를 검토하여 주는 것은 신규 고객뿐 아니라 이관 고객이나 기계약자와의 만남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서적 상속인의 변동에 따른 사망시 수익자의 변경’이야말로 온라인시장과 홈쇼핑 등의 비대면 채널을 이길 대면 설계사들 고유의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려울수록 ‘Back to the basic’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망보험금은 왜 필요한 것인지, 왜 가입해야 하는지, 사망 이후 그 보험금은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말이다. 그렇다면, 종신보험을 팔면서 금리를 얘기하거나 연금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이 글을 읽고나면 당신이 만나는 사람의 정서적 상속인이 누구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했으면 한다.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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