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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r 11. 2021

모르면 피해자, 알면 대박!


일전에 아는 분으로부터 어떤 분이 근무현장에서 끔찍한 사고로 즉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으로부터 근로자재해보상(근재보험)을 10원도 받지 못하였고 그에 대하여 소송을 진행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엄포를 들었다는 억울한 사연을 접한 적이 있었다.



사연을 듣는 내내 나도, 큰 회사에서 약한 근로자한테 너무하네 싶어서 화가 났었다. 다음날, 유가족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유가족 역시 너무너무 억울해서 가슴을 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소개자와 유가족, 그리고 내가 통화 전까지 느꼈던 억울함과 분노는 모두 가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가족을 통해 들은 팩트는 이러했다. 남편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산재보상을 받았다. 그리고, 회사로부터 위로금을 받았다. 그러나, 근로자재해보상보험에서는 10원도 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소개자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에서 하나의 팩트가 더 추가되었다. (회사로부터 받은 위로금이 내가 대충 계산해봐도 근재보험에서 받을 수 있는 금액을 100% 가량 초과되었고 그 돈은 잘하면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살수도 있는 금액이었다.)



‘회사로부터 위로금은 받았다.’



위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있다. 바로 근로자재해보상보험의 개념과 산재보험의 관계이다. 바로 지난번 칼럼에서도 언급을 한 바가 있으나 다시 정리를 해보겠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보상하는 산재는 산업현장에 존재하는 위험자체를 보상하기 위해 근로자의 과실여부를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재사고에 대한 고용주의 민사상 책임범위가 매우 크므로 고용주의 민사상 책임액이 산재를 초과하게 되면 그에 대한 고용주(사측)의 책임은 잔존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가입하는 보험이 근로자재해보상보험이다.



만약 보험이 가입되어 있지 않다면 회사는 회사의 자산으로 근로자의 산재초과 손해액을 배상해야 한다. 하지만 가입되어 있다면, 회사는 민사상 책임을 보험사에 보험가입을 통해 전가한 상태이므로 회사는 보험금청구 접수만 해주면 민사상 책임이 종결된다. 마치 우리가 자동차사고 시 보험접수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근재보험이 가입되어 있음에도 피해 근로자에게 배상을 직접 한 경우에는 보험금을 피해 근로자가 아닌 피보험자가 수령한다.



자, 우리 모두 이제 근로자재해보상보험이 무엇인지 이해한 상태에서 유가족 측이 전하는 팩트를 다시 정리해보자.



근로자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회사는 산재처리를 한 후 산재초과보상을 근로자재해보험사를 거치지 않고 회사 측에서 생각하는 위자료 형식으로 선처리를 했다. 회사는 근로자재해보험 청구를 했고 보험사는 이미 회사가 민사책임액을 초과하는 금액을 유가족에게 지급하였으므로 피보험자(사측)의 민사상 책임은 끝났으므로 유가족에게 지급할 금액은 당연히 없었고 오히려 보험사는 피보험자(사측)에게 이미 지급한 위자료보다 적은 금액(법률상 기준 산정금액)을 지급했다. 그 초과 금액에 대하여는 회사가 이미 합의서를 통하여 유가족에게 지급하였으므로 반환 청구를 하지 않고 손해를 본 것이다. 즉, 유가족은 근로자재해보험금으로 받았더라면, 회사로부터 받은 돈의 반도 못 받았을 것이고, 엄청난 이익을 본 것이다. (당시 보험담당자와 통화를 해서 확인한 내용)



아마도 회사는 운전자보험 합의금처럼 합의금을 지급한 금액 그대로 처리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유가족은 근로자재해보험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회사 덕분에 실로 대박이 난 것이다.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훨씬 초과하는 금액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청구할 금액이 없는 것이며 얼마나 이익을 본 것인지 이해한 유가족은 이제야 남편의 죽음이 세상에서 무시당했다는 분노가 해결되었고 오히려 행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와 상담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억울하고 분통해서 밤잠을 이루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동안 변호사도 여러 명을 만나봤지만 모두 ‘받을 수 없어요!’라는 답변 뿐이었다고 한다. 틀린 답변은 아니지만, 조금 더 설명해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이렇듯, 보험금에 대한 분노 중에는 못 받아서가 대부분이겠지만,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들도 있다. 위의 사례처럼 기준대로 처리된 것임에도 본인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서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의 문의를 심심찮게 받는다.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자신이 피해자라는 프레임 위에서 설명을 듣기 때문이다. 위의 경우에 ‘받을 게 없다’로 답한 전문가들이 이해될 때가 많다. 제발, 해결해야 할 문제 앞에 감정을 내려놓고 귀를 열자!



받아야 할 보험금을 몰라서 놓치는 손해를 인지 못 하는 것도 문제지만 없는 피해를 만들어서 억울하게 사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어쩌면 못 받은 보험금을 모르는 사람이 훨씬 행복한 사람일 수 있지 않을까?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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