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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Jan 07. 2021

종피보험자의 배신



예전에 구매하지 않으면 가족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가장이 되는 것 같은 가책을 느끼게 하는 상품광고가 있었다. 보험광고였다. 실제로 과거에는 가족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보험을 설계하면서 가족의 형태처럼 가장을 중심으로 다른 가족의 보장을 특약의 형태로 부가하는 상품들이 많았다.



베테랑 보험인들이라면 가장을 주피보험자로 하고 배우자에겐 종피보험자의 지위를 부여한 상품들을 기억할 것이다. 다른 상품으로 별도 설계할 경우 주계약을 따로 설계해야하니 같은 사망보험금을 제외하고는 보장이 비슷한데도 보험료가 저렴해지기 때문에 이 같은 형태로 설계했다. 설계사 입장에서 판매하기 좋았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보험료 부담이 적었기에 ‘가장이 아닌데도 굳이 보험을 가입해야 하나’하고 망설이던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가족구성원의 보장을 확보하는데 용이했다.



그런데 이같이 설계된 보험상품의 경우 가족사랑을 매개로 만들어진 주피보험자와 종피보험자의 관계가 깨어지면 보험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경우 남편은 주피보험자, 아내는 종피보험자, 계약자는 아내인 계약이 많다. 피보험자로서의 지위는 비록 종피보험자이지만 보험계약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주도한 가족구성원으로 아내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보험상품은 계약자의 기본의무인 보험료 납입도 아내가 생활비를 아껴가면서 책임지게 된다. 만약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당연히 이 보험은 뜨거운 감자가 된다. 보험료는 내가 고생해서 냈는데 원금은 못찾을 것이고 당장 이혼을 하게 되면 보험을 새로 가입할 경제적 여유는 없어 그냥 유지하게 된다. 마음 한켠에서는 미워서 이혼하는 남편에게 사고가 생기면 보험금은 내 몫이지 싶어 위로를 하면서. 이런 속성 때문에 주피보험자인 남편은 알지도 못하는 보험이 가족사랑이 깨어진 후에도 계속해서 유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납입해온 덕을 볼 날이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아내는 몸이 아픈데 보험이라도 지켜온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결과는 면책.



“귀하는 주피보험자 전 남편과 이혼과 동시에 종피보험자 지위를 상실하였으므로 종피보험자 지위 상실 이후 진단받은 유방암에 대하여 당사는 보험금 지급책임이 없고 기납입보험료를 반환하여 드리겠습니다.”



보험회사로부터 이같은 통지를 받는다면? 현재 많은 종피보험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으나 약관에 명시가 돼있으며 배우자특약의 종피보험자가 배우자 관계가 아닌 사람이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인정되는 않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신혼부부 및 새로 보장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월납 보험료 조금 아끼자고 종피보험자 관계로 보험을 가입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그럴 리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사람일은 모른다. 필자가 기우인지 그들의 자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참고로, 그런 조언을 하는 필자도 현재 종피보험자 신분이다.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더 코멘트하자면 혼인관계 종료된 배우자가 종피보험자 지위를 상실하고 주피보험자가 재혼을 하면 재혼한 배우자가 배우자특약의 종피보험자로 교체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연극이나 드라마가 그렇듯 보험도 조연보다는 주연을 더 존중하는 것 같다. 보험에서도 모두가 되도록 자기 보장의 주인공이 되기를 강력히 권한다.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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