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현 Feb 19. 2021

당신의 '존 메이'는 누구인가요?

지난주 ‘혼죽’(혼자 죽음)에 대한 글을 쓰고 통계청 자료를 찾아봤다. 1인 가정의 비율이 내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높았다. 2018년 기준 29.3%에 달했다. 지역에 따라 30%를 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통계자료를 분석하다가 발견한 흐름은 결혼을 시작하는 30대에 감소하기 시작하고 이혼이 발생하는 40대 중반부터 늘어나서 65세부터 급격히 감소한다. 나는 65세부터 급감하는 이유를 병으로 인한 요양기간이 시작되거나 황혼재혼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국 영화 ‘스틸 라이프’를 봤다. 이 영화는 고독사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공무원 존 메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존 메이는 고독사한 사람의 집에 가서 고인이 남긴 흔적들을 추적해서 고인의 장례식에 와야 할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고인의 종교 등을 고려해 장례식의 절차를 정하고 고인의 취향을 고려한 장송곡을 고르고 고인의 집에 남겨진 사진이나 취미활동의 흔적들을 분석해서 고인을 위한 추도문을 작성한다. 고독사했다는 것만으로도 예상되듯이 그가 추도문을 써야 하는 고인의 마지막 근처는 아름다운 경우가 거의 없다. 그가 쓴 추도문은 부패된 시체로 인하여 냄새나고 비위생적인 고인의 집을 조사하고, 결코 묻는 것만 답하지 않는 고인의 주변인들을 취재하여 고인의 아름다운 시절 혹은 쓸모 있었던 시절을 찾아낸 결과물이다.



이 과정을 영화에서는 잔잔하게 물 흘러가듯이 보여줬지만, 고독사한 현장을 치우기 전에 방문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인터넷에서 고독사를 검색해서 관련 이미지 몇개만 확인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스틸 라이프’는 2014년 제작된 영화인데 배경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나라는 현재 무명이거나 가족관계등록부 등에 기재된 가족이 인도를 거부하는 시신의 경우 무연고시신으로 처리하는데, 수습한 시신을 화장하여 공립묘지에 가매장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시신이 발견된 현장처리는 사설 특수청소업체들이 전문적으로 처리한다. 역시, 고인을 위한 추도문을 작성하는 공무원은 영화에서나 존재하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도 런던 케닝턴 구청 소속인 그는 일을 종결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장례식에 비용을 많이 쓴다는 이유로 22년이나 일하던 곳에서 해고 통보를 받는다. 자신의 후임이 화장된 유골가루 여러 개를 한 구덩이에 붓는 걸 본 주인공의 회색눈동자는 흔들린다.



영화 속 존 메이는 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묻지 않는다. 묵묵히 고인의 사진들과 편지 등을 통해 고인이 어떻게 살았는지와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따라간다. 죽음 앞에서 죽음 자체가 아니라 나의 삶이 반추되어지는 것. 그것은 누구나 받고 싶은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당연히 혼자 살다가 사망한다고 해서 고독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혼자가 아님에도 존 메이가 고인들의 죽음이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내 인생에 존 메이는 누구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죽음을 직면하고 나의 삶 속의 아름다움과 쓸모를 찾아내 줄 사람. 그리고 손해사정사인 나부터가 사망보험금을 다룰 때 고인의 사인(死因)이 아닌 삶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었던가.



나도 누군가에게 존 메이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니 존 메이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올까봐 겁이 나기도 한다. 영국에는 존 메이가 존재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존 메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손해사정사 9년차가 되는 동안 존 메이처럼 망인의 가족을 찾아 보험금을 주기 위해 한달간 생업을 접고 고군분투하고 병으로 죽어갈 때는 연락도 없더니 사망 후 보험금 내놓으라고 찾아온 뻔뻔한 아버지에게 분노하는 한국의 존 메이들을 나는 여러 번 만났었다. 바로 보험설계사들이다. 당신의 담당 설계사를 귀하게 여겨야 할 이유다. 물론, 무턱대고 실적에 눈이 먼 가짜 존 메이들은 경계해야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당신에게 존메이가 되어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존재가 그들이니 상품 하나를 가입하더라도 나의 존 메이를 찾는다는 마음으로 신중하고 소중한 마음이었으면 한다. 당신의 삶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존 메이들은 고인의 삶을 알았기에 생업을 접고 유가족을 찾아다닐 수 있었고, 뻔뻔한 유가족에게 화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존 메이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혹은 존 메이가 되어주는 것에 대해서 절대로 피하지 말고 반드시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29.3%의 1인 가정은 쉽게 만날 수 있고 존 메이를 혼자든 아니든 원하니까.


다시 한번 물어보겠다. 당신의 존 메이는 누구인가?







이수현 손해사정사

작가의 이전글 보험료가 싼 보험과 비싼 보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