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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Jun 10. 2021

코로나 자가격리 생존보고②


짐이 가득 차 있는 거실에서 식사를 하고 노트북을 펼 수 있게 되는 데 4일이 걸렸다. 4일 동안 전에 해보지 않던 인터넷으로 장보기가 익숙해졌고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찌개를 끓이는 것도 나름 캠핑 온 거 같고 괜찮았다.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 모두 검사 결과 음성이었고 남편이 다닌 목욕탕에서도 추가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소식과 우리 집 인테리어 공사를 한 사장님은 음성이지만 우리 집 일을 했다는 이유로 자가격리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마저도 허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느낌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철저하게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어 본 적이 없었고 집 안과 집 밖이 아예 차원이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집 공사하는 동안 우리 집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며 찾아왔던 이웃들은 안부 문자 한 번 없었다. 


격리 10일차 남편이 돌아왔다. 나 혼자 공사 중이던 집을 아무리 쓸고 닦아도 소용이 없어서 밤마다 지쳐 쓰러졌었는데, 남편이 큰 짐들을 옮겨주니 움직여 치우는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잘 버텨내었지만, 격리 종료를 4일 남겨두고 감사하고 평온했던 마음에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가격리를 핑계로 미루었던 많은 일들을 자가격리 종료와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 압박으로 다가왔다. 밀린 손해사정서, 직원 얼굴은 며칠 보지도 못했는데 격리 종료와 동시에 급여 정산을 해야 하고, 월세, 관리비 등 처리해야 할 일과 해결해야 할 비용이 생각날 때마다 숨이 막혔다.

드디어 종료 하루 전날. 다시 검사를 받았다. 음성이었던 결과가 격리 기간 동안에 양성이 될 리 없었고 옆에서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어내는 대기 환자들 때문에 오히려 두려워 떨었다. 다음날 아침 음성이라는 문자를 받고 아들과 남편과 손을 꼭 잡고 서로 지그시 안아주었다. 서로가 묵묵히 함께, 별일 아닌 듯이 시간을 보내주어서 고마웠다. 아침 저녁으로 자가격리 앱으로 내 동선을 확인하던 공무원이 전화해서 이제 앱을 지워도 좋다고 했다. 아, 감옥에서 나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아마 비슷하겠지?

출근을 했다. 잎이 돋아나는구나 싶던 가로수들은 푸르게 변했고, 봄꽃은 내가 갇혀 있는 동안 피었고, 졌다. 그동안 차마 격리 중이란 설명을 할 수 없어서 미뤘던 전화를 돌리고, 밀린 사정서를 써야 할 목록을 써내려가고, 의료자문 일정을 잡으니 격리 종료를 앞두고 미친 듯이 떨리던 불안감이 해소되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격리 중에는 말할 수 없었던 격리 중이었다는 말이 격리가 끝나고 나서는 쉽게 나왔다. 아마도 집 안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는 내 마음도 뭔가 움츠러들고 소심해졌었던 거 같다.

우리 가족은 자가격리를 이 시대 가장 핫한 이슈의 한가운데 시간을 보낸 것으로 오랫동안 함께 이야기할 추억이 생겼다고 정의했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이 느껴지고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하고 단둘이 온전히 이렇게 있어 본 게 아들이 3살 때 내가 일을 시작한 이후로 15년 만에 처음이었다. 아무도 우리 사이에 끼어드는 것이 불가능하게 허락된 시간이 2주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감사했다. 남편은 연간 350일 누구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나머지 10일에서 15일 정도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을 빛내어 다른 350일을 채워주는 사람이라고, 결혼의 의미를 묻는 후배들에게 대답하곤 하는데 격리기간 동안 남편은 전화 목소리만으로도 1년치를 다했다. 내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그래서 함께 14일을 함께 지낼 아들이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공사 시작 후 일주일간을 집 근처에 있는 근린시설 화장실을 QR코드 찍어가면서 다니거나 회사에서 해결하느라 온 가족이 고생했었는데 격리 1일 전에 다행히 변기를 부착했다. 만약, 변기 공사를 마치지 못하고 격리가 시작되었더라면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가슴이 쓸어내려지는 감사한 일이다.

14일의 격리기간이 끝나고 돌아올 나의 일터, 회사가 있음에 감사했다. 16년차 일해온 이 보험업계가 14일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건재하고 돌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다. 적당히 무미건조하지 않게 아무도 가족 누구도 아프지 않은 채로 자가격리의 시간을 경험해보게 된 나의 삶이 글이 되어 다른 이의 삶에도 풀어 내려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아! 그리고, 내가 14일을 겪어보니 앞으로 코로나19가 마지막 팬데믹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전염병 생계비용 지원 보험이 출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격리로 인한 손해를 정산해보면서 절실하게 들었다. 

의료보험이 있어도 실손보험이 필요한 것처럼 정부 지원자금이 있어도 새로운 형태의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한 경제적 위험에 대한 대비는 보험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글이 나처럼 자가격리를 경험한 분들에게는 공감이 되기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에게는 호기심 충족과 만약의 경우를 위한 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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