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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Oct 07. 2021

좋은 손해사정사, 나쁜 손해사정사


 


 일전에 나는 한국보험신문 지면을 통해 ‘좋은 손해사정사’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독자들과 공유한 적이 있다. ‘좋다’와 ‘나쁘다’는 감정을 나타내는 형용사인 만큼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악마 같은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이다. 나한테 찾아와 피보험자 혹은 계약자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분노하는 대상인 보험사 관계자들도 누군가에게 세상 따뜻한 가족일 것이다. 그리고 감정은 겪어봐야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좋을지, 안 좋을지 미리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좋은 손해사정사를 만나고 싶지만 그건 말그대로 겪어봐야 아는 일. 적어도 나쁜 손해사정사만이라도 피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다행인 것이다. 사안의 진행과정 중 좋은 손해사정사가 될지는 환자와 손해사정사의 합에 달려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손해사정사로서 ‘나쁜 손해사정사’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나쁜’을 다루는 것은 최근에 찾아온 시각장애인을 만나고 손해사정사로서 불편한 죄책감을 씻고 싶은 나의 이기심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고 전화했다면서 나를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효율적인 상담을 위해 준비해야하는 서류가 마련되면 만나자고 했는데 모든 서류가 갖추어져 있다면서 며칠 뒤 만나자는 나를 재촉해서 통화한 지 한 시간 만에 사무실에 들어선 것은 흰색지팡이였다. 그 뒤로 실례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들어선 분은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분이 나를 급하게 찾아온 사연은 이러했다. 보행 중 역주행하는 차량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한 후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몸의 여러 군데에 신경손상이 남아서 일부 운동능력 소실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입원 중 병원에서 소개시켜준 손해사정사를 만나서 일을 맡겼는데 그 손해사정사는 연락이 안 되고 보험금을 10원도 받은 바가 없는데 손해사정사한테 이미 350만원이라는 돈을 송금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확인하니 송금 내역도 확실했고 환자의 진술도 일관되었다. 보험사 측 담당자랑 통화를 해보니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물었다. “그 손해사정사라는 분 명함이 있으세요? 위임계약서는 작성하셨어요? 돈 송금하실 때 회사 계좌였나요?”




명함을 보니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었고 위임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송금한 계좌는 손해사정사라고 했다는 아무개 개인의 통장이었다. 손해사정사라고 소개받았으니 당연히 손해사정사인 줄 알았고 계약서를 써야 되는 줄 몰랐고 보험금이 곧 나올 것이니 돈을 송금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자격증이 없다는 것에 나는 ‘나쁜’을 논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자격증이 없는데 자격증이 있다고 한 건 나쁘다. 손해사정사의 업무는 환자를 대신하여 보험업법 제188조에 정해진 업무를 진행하는 것인데 그 법에 정해진 업무의 위임계약을 진행하지 않으면 업무가 개시될 수 없다. 위임계약서 없이 법적 효력이 발생할 수 있는 업무를 대신 한 행위는 위법이다.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므로 손해사정업무를 하려면 특정 손해사정법인 또는 손해사정사무소에 소속되어야만 하고 그의 손해사정업무가 가능한 것은 손해사정법인 또는 손해사정사무소의 관리를 받기 때문이다. 자격증이 없는 자가 손해사정업무를 하는 경우에 그에 대한 법률상 책임은 그가 속한 손해사정법인 또는 손해사정사무소의 손해사정사가 부담하게 된다. 그런데, 개인 계좌로 돈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손해사정업무에 대하여 법률상 책임이 있는 손해사정법인 또는 손해사정사무소의 통제 및 관리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그의 행위에 대하여 법률상 책임 및 근거가 전혀 없는 상태라는 것을 말한다.




위 사안은 손해사정사가 아닌 자의 행위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손해사정사인 줄 알았으므로 ‘나쁜 손해사정사’다. 손해사정사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회사를 꼭 와보고 싶어했던 환자의 마음과 전화상으로 다급하고 불안했던 목소리가 이해되었다. 환자는 신경손상으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흰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나를 찾아와서는 제발 손해사정법인에서 위임해서 진행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어쨌든 같은 업계 사람으로서 불안하고 미안한 마음에 얼굴 근육이 마비될 거 같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환자는 내 눈을 보지도 못하는데 그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나쁜 손해사정사’를 걸러낼 최소한의 장치를 알려드리는 것으로 속죄를 하려 한다. ‘나쁜 손해사정사’를 피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보험업법 제188조에 의한 위임계약서 작성’이다.




■보험업법 188조의 법정 손해사정업무


①손해발생 사실의 확인


②보험약관 및 관계법규적용의 적정여부 판단


③손해액 및 보험금 사정


④제1호 내지 제3호의 업무와 관련한 서류의 작성·제출의 대행


⑤제1호 내지 제3호의 업무의 수행과 관련한 보험회사에 대한 의견의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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