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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Sep 14. 2021

그리움이고 싶다



나는 신체손해사정사다.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많이 접하는 서류는 의무기록이다. 의무기록의 열람을 위임받으면 제일 먼저 치료 경과 및 현 상태를 정리한다. 그 문서의 맨 마지막 내용은 대부분 장해 상태이거나 요양병원이거나 사망이다.



직업상 사망이라는 단어가 포함한 여러 가지 법률상 의미와 사회적 의미를 몸으로 깊이 느끼게 된다. 누군가의 사망에 관여하는 직업군을 사람들은 흔히 의사나 장의사를 떠올리지만 의사는 사망시점까지, 장의사는 사망 후 길어야 5일장까지가 관여하는 기간이라는 것을 봤을 때 모든 사망에 출현하지는 않지만 손해사정사처럼 타인의 죽음 속에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손해사정사는 사망 후 유가족이 보험금을 청구한 뒤 부지급되었을 때 고민하다가 만나게 된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어 관련 서류를 받고 망인의 보험사고 시점부터 사망 시점까지의 거의 모든 공적 기록을 확인하고 분석한다. 그리고 그 작업은 모든 업무가 종결될 때까지 몇 개월여간 지속된다.



오늘은 사망한 분의 사망 전 진단받은 내용에 대한 소견서를 받아야 해서 어제 다시 그 분의 6개월여의 입원 기간의 치료 이력을 모두 다시 확인했다. 그러면 다시 내 안에서 그 분의 드라마가 그려진다.



쿵! 하고 넘어지는 모습. 툭 털고 일어나 집에 돌아갔지만 지속된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았는데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그 쿵! 한 번이 머리를 열어야 하는 중한 수술이 되었고 회복하지 못하고 점점 악화되다가 결국은 사망에 이르렀다.



그 드라마를 가슴에 안고 유가족과 의사를 만났다. 유가족은 대기 모니터에 망인의 함자가 뜨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나는 그 순간이 정말 싫다. 같이 울 수 없다. 같이 울면 안 된다. 나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또박또박 의사에게 소견이 필요한 이유와 질문의 의도를 설명한다. 환자의 치료가 가장 중요했던 의사가 의학적 사고를 놓고 법리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보험사의 궁금증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의사 입장에서 유의미하지 않은 질문에 답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소견을 받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1분 정도의 시간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중요한 시간이 지나고, 다행히 소견서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유가족은 망인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눈물이 터진다. 눈물 속에서 수납을 하고 겨우겨우 챙겨 병원문을 나서는데 입원기간 중 함께 산책을 하던 곳을 발견하시고는 그때까지만 해도 흠~흠~ 하며 삼키던 울음을 엉~엉~ 하고 놓아버리신다. 나는 말없이 어깨를 부벼드린다.


울고 계신 분과 나는 망인의 죽음을 이유로 만난 지 8개월이 되어간다. 서류를 준비하고 의료자문을 받고 여러 군데의 보험사를 순차적으로 진행하다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다. 앞으로도 3개월은 더 이분과 망인의 죽음을 이유로 이어질 것 같다. 그분은 슬프고 나는 담담하게 오늘처럼 그렇게 말이다.



그런데 모든 유가족의 모습이 앞에서 묘사한 것 같지 않다. 평생 마음 고생시키더니 죽어서도 깔끔하지 못해서 이렇게 고생을 시킨다고 원망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망인의 사고 내용부터 사망사고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갖은 욕을 섞어서 하시는 분도 있다.



손해사정사로서 가장 씁쓸한 경우는 보험금만 관심 있어 하는 분들이다. 차라리 망인을 욕하는 분들은 망인으로부터 사랑을 원했거나, 사랑했기에 상처받았거나, 적어도 망인의 삶에 관심이라도 있었던 분이다.


망인이 살아 생전 본인에게 주었던 고통과 어리석음에 대해 나열하며 나에게 정서적 공감을 강요하는 분들보다 나랑 연락이 되거나 얼굴을 보기만 하면 보험금이 어떻게 될 것 같은지만 집요하게 이야기하는 분들이 반응하기 더 힘들다.



심지어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고 보험증권을 펼쳐놓고 청구 가능한 보험금을 내가 찾아낼 때마다 박수를 치며 좋아했던 유가족도 있었다.



오늘, 촉촉이 젖은 눈으로 뒤돌아가시던 모습을 보면서,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리움이고 싶다.”



원망이 아니라, 상처가 아니라, 그리움일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와 함께 보낸 오늘이 그리움으로 남을 수 있는 날이 될 수 있을까?



참 감사한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 나와 닿은 인연들에 그리움일 수 있도록 열심히 잘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축하해주세요. 영재랑 혜지랑 결혼합니다.”



9월에 하게 될 따님 결혼식까지만이라도 살고 싶다고 하셨던 말기암 환자에게서 SNS 청첩장이 날아왔다. 너무나도 궁금했지만 혹여 나의 관심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무서워 연락하지 못했던 나는 안도감과 반가움에 병원에서부터 참았던 눈물이 주책맞게 터졌다.



그냥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마음껏 그리워해 보자. 빈자리가 생기기 전에. 코로나 때문에 민폐가 아니라면 꼭 축의금 들고 축하해드리러 다녀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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