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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Sep 02. 2021

당신은 충분히 괜찮아요


“보험설계사 교육과정에 추가되어야 할 내용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금은 나와 깊은 인연이 된 교육콘텐츠 회사 대표님이 나와의 첫 만남에서 이렇게 물었다. 나는 “자신부터 사랑하는 방법이요”라고 답했다.



지난 2006년 입사해서 1차월 교육, 3차월 교육, 6차월 교육, 13차월 교육 같은 본사 정기 교육은 물론 지점에서 하는 교육, 팀 내 스터디, 지점 내 버즈부터 세미나까지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고 배움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배움의 기회는 힘이 닿는 한 뿌리치지 않았다. 가끔은 버거운 비용을 부담해야 했지만 내가 설계사로 일하는 동안 업계에 있던 거의 모든 종류의 교육은 다 받았던 것 같다.



입사 후 첫 1년은 안정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렸지만 고객이 모니터링 전화에서 텔레마케팅으로 가입한 타사 상품과 헷갈려 자필서명을 한 적이 없다고 답한 일로 문제가 되었다. 이후 나는 다시 페이스를 찾지 못한 채 항상 열심히만 하는 사람으로 동료들과 선배들의 안쓰러움과 응원을 받으며 만 6년을 채우고 직업을 바꿨다. 이후 지금 하는 이 일이 천직이라 느껴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닐 때 알게 된 나보임(가명)이라는 녀석을 보면서 나는 부숴버리고 싶은 거울을 보았다.



나보임은 자격증을 따기에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나이였다. 물론, 아예 대학 졸업 전에 자격증을 따서 자회사나 외주업체가 아닌 원수사(보험회사)에 입사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늦어진 것이지만, 업계에서 실무를 하다가 그 나이에 자격증에 도전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나만 봐도 보임이보다 5살 정도가 많았고 학원에서 두드러진 노땅이었다. 나보임은 식사를 하게 되거나 할 때마다 본인의 계획을 계속 말했다. 자격증을 딴 후에 부족한 인맥 때문에 대학원을 다닐 거고 반드시 현재 다니는 외주업체가 아닌 연봉 높은 보험사에 취직할 거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미 너무 늦었다며, 이제 입사해서 연봉이 얼마가 되어야 집을 살 수 있을지를 계산하며 결혼에 대해서까지 고민했었다. 내가 “너 자격증 없어도 장가 가는 데 문제없을 만큼 매력 있어”라고 말하면 말도 안 된다고 했었다.



나보임은 본인의 계획대로 신체손해사정사에 합격하고 원수사에 입사했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모임에서 만날 때마다 그는 새로운 계획을 얘기했다. 무슨, 무슨 자격증을 딸 거고, 마라톤을 해서 뱃살을 뺄 거야. 결혼은 내가 좀 더 이룬 다음에 등등.



“보임아, 너는 멋진 여자 못 만나. 네가 널 사랑하지 않는데 타인이, 그것도 여자가 널 사랑할 수 있을까?”


처음엔 참 열심히, 뜨겁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끊임없는 미션과 성취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아닌 점점 더 심한 갈증과 허탈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일침을 가하고 1년 정도 지난 후 열심히 돈을 모아서 서울에 아파트도 샀다면서 이제는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해서 녀석이 타령을 하던 정말 예쁘고 학벌 좋은 후배를 소개해줬다. 그런데 추운 날 여자를 바람맞히고 연락을 받지 않았다. 다음날 녀석의 변명은 자신에 비해 너무 예쁘고 학벌이 좋아서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야! 자격증 100개를 따면 뭐하냐. 서울에 집이 있으면 뭐하고 뱃살을 빼면 뭐해. 너 같은 새☆는 ☆☆☆☆.”



한참을 진심으로 욕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눈이 오는 창밖을 한참 바라봤다. 방금 예전의 나한테 한 욕을 스스로 되새김질했다. 나는 설계사 시절에 나 자신한테 변명했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어. 오늘은 세무를 배웠어. 오늘은 변액수익률 관리를 배웠어. 나처럼 많이 알고 고객을 위해 준비된 설계사가 어디 있어?”



우리는 가끔 보험에 대해 ‘보’ 자도 모르는 설계사들이 실적이 좋은 경우를 본다. 그러면서 그 고객들은 정말 운이 없다, 사기꾼이다, 길게 못 간다 등등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나도 그랬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고객은 보험청약서를 들고 온 당당한 그들과의 인연을 구매한 것이었다.



자신 스스로가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내가 아무리 유식한 이야기를 떠들어도 그 이야기를 내보내는 내 입술과 얼굴 근육이 불만과 불안을 전달했었다는 것을 나는 몰랐었다. 오랜 시간 돌고 돌아 마주하기 싫은 거울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비싼 드레스를 사 입고 불편한 표정을 지은 나에게 상대가 미소 짓지 않는다고 원망했던 격이었다. 드레스를 입은 나를 내가 사랑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가 입은 드레스가 그 가치를 발현할 수 있었겠는가?



보험회사는, 성공신화들은 어떻게 고객을 감동시킬지 어떻게 더 좋은 서비스를 해야 할지,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내가 그 수많은 교육과 자기계발서를 읽고도 결국 열심히만 하는 사람으로 업계를 떠났던 이유는 그 내용을 실행할 주체인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해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부족한 자신을 탓하고 도피처로 교육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오늘도 당신은 충분히 괜찮아요. 당신이 진심으로 지어내는 미소만 있다면요. 오우! 미소가 훌륭해서 어떤 드레스도 어울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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