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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Oct 19. 2021

옛날 이야기


올해로 보험업계 입문 15년차다. 핸드폰에 있는 연락처는 보험업계 사람들로 가득하고 지겹다. 그러나 “지겹다” 하지만 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소위 ‘공장 돌아가는 이야기’할 때가 가장 신나고 공감되는 것은 이젠 내 피가 보험약관으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의심하게 만든다. 오랜 인연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예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마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좋았는데 하듯이 이야기하는 옛날 보험업계 이야기를 하게 된다. 오늘은 아직 보험업계 초년생인 사람들에게는 “그런 게 있었어?”를, 연차가 오래된 사람들에게는 “그땐 그랬었지.”로 느껴질 이제는 추억이 된 보험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옛날에는 수기청약서를 사용했었다. 매주 줄 서서 지점장님한테 청약서를 받으면서 내 이름과 청약서번호를 기록했었고 청약서를 분실하면 그 일련번호를 지점에 알려야 했다. 그러면 분실청약서를 신문인가에 공지를 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모든 내용이 비어있는 청약서에는 일련번호만 인쇄되어 있고 빈칸에 고객이 가입할 상품과 특약 내용을 설계사가 수기로 적어넣었었다. 그렇게 작성한 청약서를 지점에 제출하면 BOS(Business of Secretary)가 스캔하고 전산에 입력을 하면 초회보험료가 출금이 되어 청약이 이루어졌었다. 요즘은 아이패드를 가지고 가서 온라인으로 그 자리에서 설계와 청약 및 출금까지 처리되는 것에 비하면 생경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옛날에는 생명보험사에서는 생명보험만, 손해보험사에서는 손해보험만 팔 수 있었다. 내 기억으로 2007년도에 교차판매제도가 생기면서 한 명의 설계사가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모두 취급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에는 내 고객에게 실손이 필요하면 손해보험에 소속되어 있는 설계사를 소개해주기도 했었다. 나도 그렇게 소개한 계약이 아직 유지 중인 지인들이 있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의 교차판매로 손해보험사의 매출은 급성장을 했고 실손보험이 필수보험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설계사들의 소득 면에서도 교차수당의 지분이 상당해지고 있다. 요즘 생명보험 원수사 지점장님들의 최고 난제가 정성 들여서 리크루팅을 하면 그 인원이 생명보험 지점의 책상에 앉아서 지점 프린터로 손해보험설계서가 끊임없이 출력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그 시절 대형 GA의 등장 자체가 큰 이슈였고 모두들 한 회사의 상품으로 가족 부양은 기본이고 지금의 설계사들 모습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풍성했었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팔 수 있는 상품의 종류는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옛날에는 60세 만기가 최장 보험기간이었다.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예전에 내가 증권분석을 하려고 보험증권을 받아보면 60세 만기 상품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왜 이렇게 짧게 가입하셨어요?” 하고 물으면 “그게 가장 긴 거였다”고. 2003년에 가입했던 우리 친정아버지 보험은 70세 만기였다. 종신보험은 가입이 어려웠고 정기보험으로는 그게 가장 길었다. 아버지는 만기를 당연히 넘기고 생존해 계시고 이번에 실버보험을 몇 개 선별해서 가입했다. 아버지가 미리 좋은 보험을 잘 가입해두지 않은 게 아쉬웠지만, 일찍 준비했더라도 아버지 젊은 시절에는 어차피 만기가 짧았고 종신보험이라는 상품 자체가 없었으니 보험기간이 종료된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정기보험의 만기가 지금에 비해 짧았던 이유는 당시 통계청 집계상 평균수명이 현재보다 훨씬 짧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100세 시대를 말하지만 지금도 평균수명은 85세를 넘지 못한다. 그래서 생명보험사의 정기보험이 보통 80세 만기인 것이다.



옛날에는 입원비에 가입한도가 없었다. 지금은 전 보험사를 통합해서 입원비의 가입한도에 제약이 있다. 그래서 아무리 보험료를 많이 내더라도 입원비의 가입 한도 이상을 가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옛날에는 입원비나 수술비 등 여러 보험사에 동시에 얼마든지 가입할 수 있었다. 전산이 보험사끼리 연결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고 일당 몇 만원 지급되는 입원비가 보험사 손해율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보험업계에 어떤 분이 혜성처럼 나타나서 대리점에서 여러 보험사에 입원비를 최대한 가입시켜 일당 입원비를 20~30만원으로 설계를 하기 시작했다. 보험료는 암진단금 등 비교적 부담이 큰 특약들을 해약시켜서 모든 보장을 입원비로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 피보험자들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그들은 감기든 염좌든 입원만 하면 하루에 몇 십 만원이 생겼다. 당연히 단 하루라도 더 입원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보험사기에 준하는 입원환자들이 그 혜성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에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는 곧 지역 병원들의 매출을 올리기 위한 입원환자 유치 및 입원기간 연장으로 이어졌다. 그때가 15년도 넘었고 일반 암진단금이 500만원~1000만원 할 때인데 염좌 입원비가 300만원씩 지급되니 보험사에 비상등이 켜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암튼 그분 덕에 입원비의 전체 보험사 합산 한도가 생겨났다. 갑자기 궁금해지네. 그분은 아직 보험업계에 계실까?



내가 팔아 본 것 중 가장 많은 입원비가 일당 15만원이었는데 지금은 전사 합산해도 10만원 내외를 넘기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물가는 엄청나게 올랐는데 피보험자의 입원기간 중 휴업손해를 보전하는 용도인 입원비의 한도는 그에 역행하고 있다.



요즘 애들은 듣기 싫어하고 지루해하는 옛날 이야기. 더하라면 더하겠지만 지면의 부족함과 지루함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만, 옛날 사람의 옛날 이야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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