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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Nov 01. 2021

문제 정확하게 읽기



 2006년 보험영업을 시작해서 2012년 손해사정회사에 입사했다. ‘어차피 보험으로 하는 일이니 보험영업이랑 뭐가 다르랴’는 생각에서 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가입설계서를 보던 일이 약관을 보는 일로 바뀐 것뿐이다. 원래 뭐든 잘하든 못하든 열심히는 하는 사람인지라 새로운 일을 배워나갔다. 자다가 일어나서 내가 이 일을 평생 하게 될 것 같다는 설렘에 잠을 못 이룬 밤도 있었다. 그래서 평생 할 일이라면 자격증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수임받은 일을 하면서,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를 돌봐야 하고 살림도 해야 했다. 주중에는 전철이 끊긴 시간에 퇴근하기가 일쑤였고, 주말에는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학원 수강하기를 1년 중 6개월을 3년간 한끝에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었다.



손해사정사는 2차 시험 4과목이 모두 논술이고 한 과목 당 제출해야 하는 분량이 B4 10장으로 시험 당일에 총 B4 40장을 작성해야 한다. 2번째 시험 보던 해에는 내가 2차 준비를 위해 사용한 연습지를 모아봤더니 앞뒤로 사용한 연습지가 내 무릎 높이였다. 90분 안에 10장을 써내야 하다 보니 절대적인 공부량도 필요했지만 공부량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손의 근력도 중요했다. 나는 시험 준비 기간 내내 통증 때문에 마취통증의학과 병원을 다녀서 시험 합격 후 지금까지도 안부를 묻고 지낼 만큼 친해졌다. 그리고 손에 맞는 펜을 사용하면 통증이나 실수를 줄일 수 있을까 해서 수십 가지의 펜을 사서 모두 사용해보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나중에 내가 사용한 방법은 볼펜에 고무장갑의 손바닥 부분의 음영 부분을 잘라 붙여서 그립감을 올려 손에 땀이 나더라도 미끄러지지 않고 글씨를 정확하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때 사용한 것을 아직도 볼펜 심만 바꿔 사용하고 있는데 여전히 그때 붙인 고무장갑의 효용은 뛰어나다. 그렇게 여러 개를 활용했었는데 그중 하나를 보고 나는 최근에 내가 고전하는 문제들의 해결 방법을 만난 듯하다. 나는 3번째 도전의 막바지에 더 이상 무엇을 추가로 입력하거나 쌓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것들의 분발과 활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시험 당시에 사용한 볼펜에는 이 문구가 라벨링되어 있다.



“문제 정확하게 읽기”



인생은 누구에게나 문제투성이다. 그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삶의 지속 방법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정확하게 읽어내야 한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대개의 사람들이 문제를 읽어내려 하지 않고 문제를 마주했을 때의 내 감정에 휩쓸려 문제를 비틀어서 보게 된다.



예를 들어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시행은 보험영업을 하는 데 있어 많은 제약과 불편함을 준다. 그에 대하여 화가 나서 일하기 싫어지는 것은 감정이지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일하기 매우 불편해졌다는 이야기는 하지만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시행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대응을 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었다. 대부분 위축감을 호소했고 불평했다. 그러나 그중에 어떤 분은 금융소비자보호법을 경유계약의 법적 문제화와 전문성의 강화가 더욱 드러나는 기회이기에 어떠한 점을 화법에 녹여내는 기회로 활용하겠다고 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채널 설계사들의 영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때 블로그나 페이스북, 인스타 같은 SNS를 바탕으로 영업을 하던 보험인들의 진가가 드러났고, 대면하는 만남이 감소함에 따라 이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확보된 시간을 온라인 영업의 적응 기회를 삼아 실적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코로나가 아니라 코로나에 대응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였고 문제의 해결은 대응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나는 같은 문제에 대한 답이 달라지는 것은 문제에 대한 태도 이전에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정도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제가 없을 때의 모든 것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수험생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교재를 읽고 공부하는 것이고 보험영업인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상품공부를 하고 고객니즈를 파악하기 위한 제반의 노력과 자기관리를 하는 것이다.



보험업계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코로나를 타고 흐르는 변화의 가속도가 보통의 노력으로는 탑승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20년 이상 영업하며 다진 두텁고 안전한 시장이 있지만 온라인 청약시스템에 적응이 어려워 계약 체결이 어려워졌다. 무조건 일단, 만나기만 하면 자신 있는 청약을 전화나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려니 성공률이 떨어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안전하기 위해 구축해온 것들이 안전한 것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확인시켜주고 있는 코로나 시대인 것이다. 이렇게 시시각각 새로운 문제들은 끊임없이 발현될 것이고 우리들은 그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고 그 주기는 점점 숨가쁘게 짧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더 큰 시장과 더 좋은 상품 더 많은 활동을 하는 것이 영업시장의 주요한 생존전략이었다면 이제는 이전에 만난 적 없던 새로운 문제들에 대한 이해도와 그 문제들이 가진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지 여부가 향후 정글같은 보험영업 시장의 생존 가능성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오늘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우선은 문제를 정확하게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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