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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Nov 16. 2021

나는 주도권을 원한다


나는 바질을 집에서 키워 바질페스토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마늘은 육쪽마늘을 까고 빻아서 먹는다. 참깨랑 들깨도 직접 돌을 골라 볶아서 먹고 감자탕을 끓이게 될 경우 시래기를 삶아 껍질을 까는 것부터 시작한다. 콩국수도 콩에서 돌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한다. 남는 광목천이 아까워서 손바느질로 행주를 만들고, 매실 베갯잇이 적당하지 않아 헌 옷으로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이렇게 살면서 손해사정법인을 운영하고 칼럼도 쓰고 책도 준비하고 강의도 한다. 고백하건대 힘들다.



아이가 3살 되던 해부터 사회에 나와 이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이젠 정말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결국 만세를 부르고 지난달부터 가끔 가사 도우미의 힘을 빌리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우미가 욕실을 청소하는 동안 나는 요리를 하고, 그가 설거지하는 동안 나는 개어놓은 빨래를 정리한다. 달라진 점은 토요일이면 주중에 밀린 집안일을 밤 10시 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저녁 6시 정도에 끝내고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난 도우미가 여섯 분이다. 그런데 모두 나한테 공통적으로 “집에 사람들 없을 때 불러요. 그럼 싹 해놔요.”



나는 반복되는 이들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왜 이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때 일하고 싶을까? 청소기 사용법, 빨래 개는 법, 세탁물 분류법을 나한테 다 물어보고 하는데, 아무도 없는 게 왜 좋을까? 심지어 내가 있는데도, 세탁물을 양말하고 속옷을 섞어서 돌린 분도 있었고, 내가 욕실 청소하면서 변기를 닦아 달라고 했더니 세면대는 손도 안 댄 분도 있었고, 버리면 안 되는 물건을 버려서 내가 들고 들어온 적도 있었다. 내 생각에는 내가 없었으면 이보다 더 엉망이었을 것 같은데.



그러다가 최근에 방문한 도우미분은 집이 비었을 때 부르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다른 분보다 길게 하였다. 어느 집 애기 엄마는 본인이 해주는 반찬을 좋아하고, 어느 집은 본인이 빨래를 개서 안에 정리까지 다해줘서 좋아하고. 그 긴 이야기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릇 자리 바뀌는 것이 싫어 딱 설거지까지만 부탁했고, 세탁물은 개는 것까지만 부탁했다. 우리집 옷장을 남이 들여다보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 체취가 묻은 속옷 남의 손타는 거 싫어서 세탁기는 내가 돌린다. 내 화장대를 다른 여성이 만지는 거 싫어서 화장대 청소는 돌려보낸 후 내가 한다. 깐마늘을 고집할 정도의 깐깐한 안주인이 옆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으니 대충 일을 할 수도 없고 일을 제대로 한다 한들 본전이다. 이 분들은 본인의 일터에서 본인이 주도권을 가지고 싶은 것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아! 주도권. 내가 하는 많은 역할 중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역할 중 대체 시 가장 문제가 적을 거 같은 역할을 도우미에게 나누어 준 것이었다. 그런데 가장 쉽게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한 일에서도 주도권이 요구된다는 사실이 나를 소름 돋게 하고 동시에 깊은 고민에 빠지게 했다. 그들은 나에게서 주도권을 원한다.



나는 내 일에서 얼마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가. 내 인생에서 주도권을 가진 주체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매일 아침 계획을 세우지만 예고 없이 울리는 전화기가 시키는 대로 사는 거 같다. 전화가 주는 일을 하다 보면 계획했던 일은 야근으로 넘어가고, 야근은 아들이 “엄마 배고파요”하면 취소되기도 한다. 오늘은 산책을 반드시 하겠노라 결심하지만 블로그를 보고 다짜고짜 사무실로 찾아온 황당한 환자를 돌려보내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나를 쉴 새 없이 다그치고 지친 나의 상태를 통해 하루 열심히 살았나보다 위안 삼지만 결국 오늘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의 목록은 줄어들지 않았다.



내가 보험설계사를 할 때는 매월 힘들게 만든 DM을 400명에게 우편발송하고 3년 넘게 큰 상가에 돌입 방문을 다녔고, 상품을 컨설팅하는데 있어서 나의 사사로운 수당의 크고 작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매월 어렵게 보내는 DM이었지만 내 글을 어디서 다운받아오는 건지 알았다고들 하고, 3년 넘게 돌입방문을 다니며 사람들과 친해졌지만 그냥 그들의 고민상담사가 되어 있었고, 욕심 없이 상품을 권했지만 내가 양심에 찔려 권하지 않았던 상품을 권한 설계사의 고객이 되었다.



보험설계사 이수현도, 손해사정사 이수현도 주도권을 잃었던 것을 반성한다. 보험설계사 이수현은 DM에 대해, 내 노력의 가치를 누릴 자격이 있는 고객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다. 나는 보험설계사고 그 사람은 고객이기 때문에 내 글을 그냥 읽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돌입방문을 다니면서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좋은 시장을 만들어야 했다. 내 진심을 몰라주는 사람들의 돌아섬에 서운하고 화가 나는 내 감정을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끝까지 진심 없는 친절한 표정을 짓지 말았어야 했다. 내 진심이 소중하게 전해질 누군가를 위해서 내 감정을 돌봐야 했다. 내가 제일 중요했다. 내가 살아야 내 고객이 있는 것이니까. 고객을 위해서 나를 잊지 말았어야 했다.



이 글을 쓰는 나 뿐인가? 사회적 역할 때문에 자신의 감정과 에너지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내어준 채 살아가는 사람이. 혹시 또 다른 보험설계사 이수현이 이 글을 읽는다면 꼭 기억해줬으면 한다. 너는 네 삶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네가 설계사로서 살아있을 때 너의 고객이다.” 필자가 부족하여 손해사정사 이수현한테는 아직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이만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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