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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Jan 18. 2022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문제점은 전혀 없는가


보험시장 변화의 중심에는 실손보험이 있었다. 아들이 기저귀를 떼던 시절부터 시작해 대학생이 되는 동안 보험업계에 있으면서 매년 변화무쌍했던 상품이 실손보험이라는 사실은 보험시장에서 10년 이상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교차판매로 인해 생명보험 소속 설계사들도 실손보험을 적법하게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 실손보험이라는 컨셉트 안에 암진단금과 기타 특약들을 부가해서 판매했다. 소비자들은 이에 대해 실손보험 보험료가 자기 친구는 3만원인데 나는 왜 10만원이 넘냐는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실손보험이라고 알고 있는 상품에 암보험, 상해보험 등의 멀티기능이 부가되었다는 사실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소비자들의 항의와 민원이 많아졌다. 마치 종신보험에 가입했지만 사망보험금은 3000만원뿐이고 암진단금과 2대질병진단금을 합하면 1억원인데도 “죽어야만 돈이 나오는 종신보험에 가입하게 했다”며 화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자 단독실손보험이 출시되면서 실손보험의 손해율을 상품에 같이 부가했던 다른 특약들로 보전해왔던 손해보험사들은 손해율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실손보험의 가입 문턱을 점점 높이거나, 또 가입이 가능하더라도 인수 심사 기준을 어렵게 하거고, 인수 심사 기준을 통과하더라도 부담보계약을 늘리고 있다.



우선 저렴한 단독실손부터 가입하고 여유가 생기면 다른 진단금을 추가로 가입해야지 했던 사람들이 막상 암보험 등을 가입하려고 할 때는 실손보험 지급이력으로 인하여 인수거절이 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하여, 예전엔 고액 계약이나 혈압환자 정도에서만 필요했던 청약 보완업무가 거의 모든 계약에서 필요해진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새로 등장한 상품이 유병자 상품이다.



이런 실손보험은 병원까지도 바꾸어놓았는데, 재활의학과나 정형외과에서는 실손보험 가입환자들의 도수치료 매출이 중요해졌고, 백내장의 인공렌즈삽입술은 어느 안과가 강남 한복판에 커다란 빌딩을 짓는 데 일조를 했다더라 하는 소문도 들린다. 그 결과 도수치료의 처방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했고 3040세대의 백내장 환자가 실손보험금을 지급받는 사례가 늘어나자 60대 부모님의 백내장 수술 보험금을 청구했더니 면책이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공렌즈삽입술은 이제 모두 나쁜 수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병원에는 보험금 청구 기계와 이를 접점으로 보험을 판매하는 영업조직의 상주인력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음 수순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다. 이 제도의 필요성 근거로는 피보험자에게는 청구 시간 소모 및 미청구, 요양기관에게는 종이증빙서류 발급 행정부담 과다, 보험사에는 보험금 지급 행정 부담 과다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제안된 개선안은 보험사 전산망과 연결된 보험중계센터(신설, 법 근거 필요)와 요양기관 전산망과 연결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연결(법 근거 필요)하여 요양기관이 증빙서류를 온라인으로 보험사에 전송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소비자에게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입장이다. 우선 청구 시간 소모 및 미청구가 소비자에게 불리하다고 하는데, 보험이라는 금융상품에서 그 정도 노력을 해야 보험금이라는 수익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왜 문제라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보험도 금융상품이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익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요양기관의 종이증빙서류 발급이 부담된다면 전자문서나 파일로 발급하는 방법이 있다. 서류를 발급해서 제출하고 있는 현실에서도 자기가 무슨 내용의 서류를 발급했는지조차 모르는 소비자가 더 많은 현실인데, 그게 자동으로 보험사에 제출된다면 보험금 지급 심사 절차 및 과정에 있어서 더욱 불리한 입장을 가지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행정 부담 과다가 문제라는 것도 어차피 보험사는 보험금 조사에 소용되는 비용은 모두 위험보험료로 환산되는 기형적인 보험회계 방식 때문에 모두 다음 회계연도의 순수보험료 인상에 반영되고, 순수보험료는 다시 부가보험료의 인상 근거가 되므로 보험사는 현재의 체제가 손해가 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30만원짜리 보험금에 50만원의 비용을 써서 면책을 해도 조사비용 50만원이 보험사의 손해율에 기여하여 소비자는 30만원의 보험금을 못 받았지만 보험사는 50만원을 손해봤다며 손해율이 높다고 보험료 인상 기준을 완화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의 지급 행정 부담 과다는 종이 서류를 통한 청구가 아니라 조사비용을 보험사가 아닌 소비자가 부담하는 회계 방식 때문에 소액의 실손보험금 청구에도 과하게 현장조사를 하는 보험사의 업무방식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우려되는 것은 병원에서 바로 보험사와 전산이 연결되는 구조가 되면 병원의 비급여 처방에 제약이 발생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현재, 의료계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기 언급한 부작용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병원에서 자동차보험 환자를 두고 심평원과 자동차보험사의 지불보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처럼 병원이 환자가 아닌 보험사의 심사 기준을 우려하여 치료가 위축될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당장은 청구서 안 써도 돼서 ‘편해졌다. 설계사한테 부탁할 필요 없어졌다’고 좋아할 수 있지만 다음 단계는 병원에 대한 보험사의 영향력 발생과 보험금에 있어서 설계사와의 접점이 줄어드는 것은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는 보험금에 대한 정보의 차단 효과가 발생할 것이고 보험금 심사의 근거가 되는 진단내용 등에 대한 불인지로 인하여 더욱더 큰 정보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일부 개인과 의료인들의 얕은 당장의 작은 욕심 때문에 비급여시장 전체를 보험사의 손에 주는 빌미가 되어버리고 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근시일 내에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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