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 이아립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버스정류장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으로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짝사랑을 오랫동안 했다. 여러 활동을 같이 하며 친해진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시작을 알 수 없으니 당연히 끝도 몰랐고 그러다 보니 애증과 집착이 섞인, 사랑이라 말하기엔 뭣한 감정으로 꽤 긴 기간 힘들어했다.
각자 대학에 진학하고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연락은 끊겼고 그 덕분인지 많은 부분을 잊고 지냈으나, 기억이란 매우 편린적이라 하나만 지운다고 전부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를테면 흑 역사로 기리기리 남을 사건이라든가 혹은 설레고 슬펐던 날짜, 장소, 선물과 문자메시지 같은 것들. 완벽히 끝내지도, 그렇다고 다시 연락하고 지낼 자신 역시 없던 나는 그 대신 종종 그 아이 집 앞 버스정류장을 경유하는 버스를 타곤 했다. 정류장 하나가 별게 아닌 것 같아도 20분 갈 곳은 30분을 훌쩍 넘겨, 30분이면 갈 곳은 1시간이 다 돼서야 닿았다.
그러니까 그 아이 집을 지나는 건 내게 오랜 시간과 인내심을 요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구처럼 그 버스를 탔던 이유는 ‘우연히’에 대한 유혹이었다. 우연히 버스를 기다리는 그 아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우연히 창 밖으로 그 아이를 보게 되면 어떻게 인사할까, 아니면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타게 된다면, 그럼 “정말 우연이다!” 하며 밝게 웃어야 할까, 아니면 모른 체해야 할까 ─처럼 쓸데없는 고민들.
그러다 이십 대 중반의 시작 무렵, 버스를 타고 같은 정류장을 스치다 그 아이의 운전면허가 생각났다. 아차! 우린 이제 자동차를 몰아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나이가 됐구나. 그러자 우연을 가장하려 뱅글뱅글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있던 나만, 여전히 철없는 18살에 멈춰 있는 것 같아 씁쓸해졌다.
물론 자동차와 버스로 어른과 아이를 나눌 순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현재의 내가 어디쯤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처럼 아이와 어른을 가르는 확실한 지표는 없을까?
그런 내게 영화 <버스, 정류장>의 두 주인공은 색다른 경계를 제시한다.
세상과 인생에 환멸을 느끼고 어떤 인연도 맺지 않은 채 살아가는 32살 재섭(김태우)은 어른이지만 “세상 모든 어른이 싫다”며 가식과 눈치로 가득한 어른의 사회를 무시한다. 반면 소희(김민정)는 17세란 나이답지 않게 우울하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일관한다. 뱃살이 자연스러운 아저씨와 원조교제를 서슴지 않고 거짓에 관대한, 애늙은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소녀다. 둘은 각자의 세계에 지쳐갈 무렵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며 보통 이상의 존재가 되어가는데 그런 두 사람의 상징적 장소가 바로 버스정류장이다.
처음엔 어른 아닌 어른과 아이 아닌 아이가 함께 같은 버스를 기다리는 데에서 나중에는 서로를 기다리는 장소가 된다. 그때쯤이면 더 이상 버스가 오느냐 안 오느냐는 크게 중요치 않다. 단순히 스스로가, 서로가 하나의 정류장이 되는 것이다. 기다림이란 항상 그렇듯 불안과 초조를 저변에 깔고 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믿음과 기대를 불러오는데 그건 버스뿐만 아니라 사람도, 시간도, 나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가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어른이니 아이니 하는 것들이 매우 시답잖은 얘기로 여겨졌다. 결국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으니 말이다.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라는 곡은 영화 후반부,
스스로가 버스 정류장이 되어 상대방을 기다리는 장면에서 삽입됐다.
재섭은 전화를 걸지 못하고, 소희는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모습에 음 간의 높낮이가 크지 않는데도 괜히 울컥하게 만드는 루시드 폴 특유의 감성이 잘 스며들었다. 물론 담담한 이아립의 목소리도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한몫한다. 애타지 않은 두 주인공의 모습과 무덤덤한 두 가수의 목소리는 되레 보는 이의 마음을 한껏 헤집어 놓는다. 루시드 폴은 이 곡 외에도 영화 속 모든 곡을 맡아 작업했다. 본 사람들 대부분은 음악이 신의 한 수라고 말하는데 바로 그만의 음악 스타일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나는 그 후에도 그 아이의 집 앞을 지나가는 버스를 타곤 하지만 이제 큰 의미는 두지 않는다. 어쩌면 연락을 하지 않는 사이 이사를 가 더 이상 그곳은 큰 의미 없는 버스 정류장이 되었을 수도 있고, 정말 내 생각대로 그 아이는 스물 이후에 딱히 버스를 타지 않아 ‘우연히’란 말이 불가능해졌을 수도 있다. 다만 어떤 기다림이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속 퍼붓는 눈도 반드시 그칠 것이라는 믿음의 기다림과 같은. 세상에, 내가 기다림이라니! 이렇게 나는 온전히 내가 되어가나 보다. “어차피 우린 비슷한 인생이잖아” 띄엄띄엄 인생을 살고 싶은 재섭이 읊조리던 대사를 머릿속으로 되네이며.
와이잭, Vol.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