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와이잭

인생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프란시스 하>/데이비드 보위 'Modern Love'

by 요지


인생을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뭘까? 문득 ‘헐, 대박’을 뱉다가 이런 질문을 떠올렸다. 아마 엄마, 아빠 같은 필수 단어와 더불어 친한 친구들의 이름,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대답 ‘괜찮네’ 정도가 상위권에 안착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무 살 넘어 가장 많이 쓴 말은 따로 있다. 시기만 놓고 봤을 땐 어쩌면 앞서 말한 순위권 단어보다 월등히 많이.


그건 “인생”이다.


인생이라니. 써놓고 보니 너무 꼰대 같아 낯 뜨겁지만 사실이다. 심지어 이 글도 “인생”으로 시작했으니 부정할 수도 없다. 죽을 뻔했던 5살에도, 질풍노도의 학창 시절에도, 첫사랑과 수능으로 좌절의 결정체였던 고3 때도 “인생”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설령 있었다 해도 그리 심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스무 살 이후부터 모든 고민은 ‘인생’에서부터 시작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난 지금까지 잘 살아온 걸까, 그래서 현재의 나의 인생은 편안한가 등… 처음엔 어른 코스프레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 자연스러움이 그저 노인네 같아 피식 웃음이 난다. “고 3 때는 대학 어디 가지?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이제 뭐해 먹고살지? 뭘 해 먹고살기 시작하면 결혼은, 자식은, 노후는?이라는 고민으로 순식간에 바뀌더라고.” 그렇게 말하던 친한 언니가 생각난다.



ⓒ 구글 이미지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 프란시스(그레타 거윅) 역시 같은 고민을 한다. 언젠가 최고의 무용수가 되겠다는 부푼 꿈도 있고, 함께 고양이를 키우며 살고 싶은 소박하지만 진중한 남자 친구도 있으며, 매일매일 대화를 나누지만 도무지 지루하지 않은 단짝 친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인생은 복잡하고 불안하다. 우직하게 자신의 소신과 믿음을 고수하는 그녀에게 날아온 건 해직통보와 애인과의 이별, 친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뿐. 미래에 대한 다짐은 어느새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의 막연한 뜬구름이 되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삶에 집중하기 바빠 그녀의 인사 한 번을 제 때 받기 어렵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것도 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프란시스는 자신의 삶을 반추해본다. '내 인생, 안녕한가?'라는 물음으로.



ⓒ 네이버 영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음악은 한 없이 발랄하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처럼 날카로운 일렉 기타 소리로 시작해 드럼, 키보드 등 밴드의 기본 요소들이 시원스레 덧입혀지는. 어느새 암울한 프란시스를 앞에 두고 저절로 리듬을 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뒤이어 나오는 보컬의 목소리는 마치 대학 응원단의 응원단장 목소리처럼 약간 서툴지만 숨길 수 없는 열의가 느껴진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데이비드 보위, 80년대 글램 록의 대표주자였다. 기존의 록 장르에 대항하여 나타난 글램 록은 음악보다는 현란한 무대장치나 옷차림 등에 더 치중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노래의 내용이나 <Modern love>라는 심심한 제목보다도 ‘데이비드 보위’의 목소리와 ‘글램 록’이라는 장르가 이 영화와 꽤 닮아있는 것 같았다. 남들은 청춘이라 하고, 정작 청춘들은 빛 좋은 개살구라 부르는 바로 그 모습. 통통 튀는 비트 위에서 실패만 반복하는 프란시스의 모습은 처량하지 않아 오히려 더 안타깝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시답잖은 말은 시대나 국경에 상관없이 통용되고 있나 보다.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흑백 필름 속에서 춤을 추는 프란시스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현실에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도 있다는 걸 이 죽일 놈의 ‘인생’ 속에서 깨닫는다. 그때 포기보다 다른 도끼를 꺼내 드는 프란시스의 모습은 대견스러우면서도 안쓰럽다. 그렇게 영화는 공감하는 순간 씁쓸해진다. 그래, 우리는 모두 프란시스였으니까.



와이잭, Vo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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