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모성애'를 검색하면 이렇게 나온다.
'본능적'이라는 단어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 '모성애'는 사회적으로 마치 선천적이고 아기를 낳는 순간 발현되는, 너무나 본능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일부 엄마들을 '내가 모성애가 부족한 건 아닌지' 고민하게 만들고 마음 무겁게 만든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선천적인 진리 쯤으로 인식되는 '모성애'라는 단어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모두의 성격과 성향이 다르듯 자식과의 관계 또한 개인의 성향이나 자식과의 기질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종종 기성세대의 육아방식에 기준을 두고 '모성애'의 척도를 말하기도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2030 세대의 임신과 출산, 육아를 바라본다면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갭을 좁히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부모가 (엄마가) 무엇이든 손수 하는 것이 익숙한 전통적인 육아방식의 관점에서 90년대생 부모의 육아를 판단한다면 부족함 투성이일테니 말이다.
우리는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 자신에 초점을 두고 살아왔다. 많은 젊은이들이 출산을 망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자식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것이 우리의 엄마들처럼 그리 당연하지 않으며, 그 정도에 대한 기준 또한 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아기는 넘 이쁘지만 육아는 너무 힘들어서 회사로 도망쳐 나왔어요. 그래도 보물 같아요. 처음엔 너무 힘들었는데 점점 나아져요.
아이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나를 희생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게 키울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엄마들이 확실히 전과 비교해 늘어났고, 달라진 세대의 육아이기에 이런 변화가 나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방법은 다르지만 그들 모두 저마다의 책임감과 사랑으로 아이를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변화가 일부 기성세대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건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겨야 한다는 뜻이고, 너무 이르게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것에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우려를 표하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일터로 일찍 복귀했다고 해서, 시판 이유식이나 반찬을 사용한다고 해서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본인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 살았던 친구가 제일 먼저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 일찍 일터로 복귀하기도 했고, 아기엄마 치고 아들 자랑을 많이 하지 않아서 평소엔 친구의 엄마로서의 삶을 잘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재난문자 오발송 사건이 있었을 때 친구에게는 단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저마다의 방식으로 엄마가 되어 가고 있구나 또 한번 생각했다.
북한 미사일을 진짜 발사했으면 난 괜찮은데, 우리 oo이는 어떡하지?
- 당시 친구의 머릿속에 들었던 단 하나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아마 나도 봄이를 낳는다면 주변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선에서 육아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나로서의 삶이 여전히 소중하고, 나를 오롯이 부모로서의 삶에만 국한시킬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부모로서의 삶과 나로서의 삶,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나만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