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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겸 Feb 13. 2023

[사설] 그들은 정청래·한동훈과 달랐다

230213 중앙일보 - 서승욱의 시시각각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한판 승부를 최근 유튜브에서 접했다. 13대 국회인 1988년 11월 9일, 5공화국 일해재단 청문회장이 무대였다. 42세의 야당 초선 의원과 노련한 73세 기업인의 격돌이었다. 일해재단 등 전두환 청와대가 추진한 각종 기금에 100억원이 넘는 돈을 낸 현대그룹의 정 명예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1988년 국회 5공특위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민주당의 노무현 의원이 강한 어조로 질문하고 있다.[중앙포토]

▶정주영="어쨌든 5공화국은 끝났고, 6공화국이 잘되면 우리도 고통스러운 시대는 다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연세 많은 분에게 다소 불손하게 보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본 위원으로서는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 위원이 질문을 계속하고 있는데 증인이 가로채시는 것은 어쩌면 증인으로서 예의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여집니다."
▶정주영="미안합니다."
▶노무현="다시 질문하겠습니다. 본 위원이 증인과 대등한 관계에서 질문할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영향력에 있어서 본 위원은 증인의 100분의 1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비애를 느끼면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5공 청문회의 노무현과 정주영
격렬하되 품격 있는 치열한 토론
대정부질문 참사와 극적인 대조



노 의원은 '대기업이 돈을 내면 정책이 그들에게만 유리해지고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폈다. 그런 주장을 정 회장이 "6공화국 때는 잘될 것"이란 말로 끊고 들어오자 노 의원이 불쾌해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내가 불손하게 보였는지 모르겠다"며 예의를 갖췄다. "미안합니다"란 정 회장의 빠른 사과도 인상적이다.

당시 회의록을 구해 읽어 보니 노동변호사 출신의 피 끓는 초선 의원과 당대의 거물 경영인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노 의원은 노조 탄압에 항의하다 트럭에 깔린 현대그룹 노동자 문제까지 거론하며 정경유착의 폐해를 파고들었다. 정 회장은 "돈을 내고 받은 실질적인 대가는 없었다. 일방적인 얘기만 듣고 우리 회사의 인기가 떨어지도록 공격한다"고 맞섰다.

둘의 감정은 끓어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격렬했지만 최후의 선은 넘지 않았다. 절제와 존중이 그 선을 지켰다. 노 의원은 "성공한 기업인의 능력과 정열, 경륜에 존경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 사우나하고 골프 친다고 비난받지만 실제로는 노동자 이상으로 열심히 일하는 분도 많다"고 했다. 또 중간중간 "선입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흥분해 죄송하다, 목소리를 낮춰 다시 공손하게 묻겠다"는 말을 섞었다. 정 회장도 마지막 발언에서 "재계도 노 위원님 말씀을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일해재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이 증언대로 향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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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의 숨 막히는 대결이 다시 회자하는 건 너무나 극적으로 대비되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특히 지난주 실시된 국회 대정부질문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수준 차가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문답이 단연 최악이었고, 눈 뜨고 못 볼 장면은 그 외에도 수두룩했다.

장관에게 "참기름, 들기름 안 먹고 아주까리 기름 먹느냐. 왜 이렇게 깐죽대느냐" "대통령이 책봉한 세자가 당신이냐"는 야당 의원들, "묻는 말이 이상하니까 이렇게 말씀(대답)드린다" "저한테 질문하실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의원 질문에 한숨 내쉬는 장관, 양쪽 모두 상대에 대한 예의와 존중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한 장관으로선 국회 출석 때마다 한결같이 질 낮은 질문을 던지는 야당 돌격대들과 함께 엮이는 게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보수 진영 일각에서 폭발적인 찬사를 받는다는 한 장관의 답변 태도나 몸짓·손짓이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사람들 역시 진영을 불문하고 꽤 존재한다.

정청래와 한동훈의 참사엔 자기 지지층에게만 잘보이면 그만이라는 왜곡된 정치 풍토도 일조했을 것이다. 현대사의 두 거인이 펼쳤던 품격과 내공의 승부를 체급이 떨어지는 두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어리석은 일이었을까.  

서승욱 논설위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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